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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2월 27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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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볼 수 없는 1급 시각장애인이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특채된다. 내년 3월부터 시 장애인복지과에 근무하게 될 신창현(申昌鉉·43) 박사가 주인공.
국내에서 1급 시각장애인이 교수로 임용된 적은 있지만 공무원이 되는 것은 신 박사가 처음이다. 그는 7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계약직 다급으로 임용되며 장애인 정책 입안을 담당하게 된다.
선천성 녹내장으로 태어날 때부터 어떤 물체도 식별할 수 없는 ‘전맹(全盲)’이었던 신 박사는 서울 맹학교와 단국대 특수교육학과를 거쳐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특수교육학 박사를 받은 입지전적 인물. 현재 단국대 강남대 한세대 한신대 등에 출강하고 있다. “예전부터 장애인들을 위한 정책을 직접 수립하고 싶었습니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내용을 실제 적용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죠. 그러던 중 우연히 서울시로부터 공무원이 될 의향이 없느냐는 제안을 받게 됐습니다.” 그에게 같이 일해 보자고 제안한 사람은 문영모(文永模) 서울시 장애인복지과장.
신 박사와 문 과장이 만난 사연은 드라마틱하다. 생면부지의 두 사람은 올 10월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우연히 만났다. 얘기를 나누던 중 신 박사의 해박한 지식과 차분한 성격에 반한 문 과장이 “공무원이 될 의사가 없느냐”고 물은 것. 신 박사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문 과장을 만난 것이 운명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하고 그 경험을 학문에 접목시키라는 뜻 같아요. 공무원으로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는 시 장애인복지과에 신설될 ‘장애인정책 연구팀’을 이끌게 된다. 직접 장애인들을 상담하면서 장애인 복지정책 수립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2년 계약이지만 성과에 따라 연장할 수 있다.
그가 매긴 서울시 장애인행정 점수는 70점. 장애인 유도 신호등이나 안내시스템 등 시설은 미국보다 좋은 면도 있지만 운영 노하우나 관리는 상당히 뒤떨어져 있다는 것. 그는 “보도 턱이 높고 도로의 동선(動線)이 복잡해 좋은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공무원으로 있는 동안 장애인에게 편리한 도로나 건물이 건설될 수 있도록 서울의 교통, 건축분야 입법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그는 공무원 임용이 확정되자마자 미국 뉴욕에 있는 아내에게 제일 먼저 알렸다. “아내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전 경험을 쌓는 것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축하의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신 박사가 78년 대입시험을 준비하던 고교 3학년 때 처음 만난 아내 윤경숙씨(尹京淑·41)는 당시 시각장애 수험생에게 교과서와 참고서를 읽어주던 자원봉사자였다. 윤씨는 신 박사의 성실함에 매료됐고, 6년간의 연애 끝에 84년에 결혼했다. 윤씨는 미국 유학생활 중 현지 학교에 들어간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다.
<송진흡기자>jinh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