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인터뷰]"정치자금 조사 시민단체 참여해야"

입력 2001-01-09 18:24수정 2009-09-2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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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를 9일 여의도 당사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의원 꿔주기’와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 사건’ 등으로 여야 극한 대치가 계속되고 있는 탓인지 그의 표정이 밝지는 않았다.

그는 ‘원칙이 있는 대응’을 강조했다. 여권이 일련의 사태를 통해 야당을 압박하고, 궁극적으로는 정계 개편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고 하고 있지만 원칙에 따라 대처해 나가겠다는 얘기였다. 이총재는 “손해를 보더라도 외로운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총재는 그러나 정국 해법의 열쇠로 인식되고 있는 자민련 교섭단체 구성을 위한 국회법 개정 재고(再考)에 대해서는 “이제는 더 이상 고려할 사안이 아니다”고 못을 박았다. 대치정국에 대한 그의 입장과 해소 방안을 들어 보았다.》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사건’에 대해 야당탄압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안기부 예산이 특정 정당의 총선 자금으로 유용된 것만은 엄벌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생각과 향후 대응을 말씀해주시지요.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대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정말 정치권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서 진실을 밝히자는 것이 아니라, 법을 행사한다는 이름으로 야당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시민단체를 포함해 새기구를 만들어 정치지도자들의 정치자금문제를 (총체적으로)조사한다면 기꺼이 참여할 용의가 있습니다. 차제에 모두가 발가벗고 문제를 털고 갈수 있으면 좋지만 아마 그럴경우 김대중(金大中)대통령부터 싫어할것입니다. 야당의원의 도덕성을 훼손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면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또 이를 빌미 삼아 정계개편의 방편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의혹이 많이 일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DJ 비자금부터 수사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여권의 ‘3대 비자금 의혹’에 대해 특별검사제 도입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이 파악하고 있는 DJ 비자금의 실체는 무엇이고, 그와 관련된 자료를 갖고 계십니까.

“제가 그런 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것보다 그런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정치보복 차원이 아닌 제대로 된 정치정화 차원에서 국민 앞에 모두가 고백하는 모양이 돼야 합니다. 검찰은 벌써 몇 년 전부터 냄새를 풍기면서 여권이 곤경에 빠져있을 때 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 문제는 특검제에 의해서 규명되어야 합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정권퇴진 투쟁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옵니다. 만약 한나라당의 요구를 여권이 외면할 경우 정말 정권퇴진 투쟁까지 하실 생각이십니까.

“아직 정권퇴진까지는…. 그 단계를 생각할 계제는 아닙니다.”

―여권에서는 이총재께서 15대 총선 당시 선대위의장이었기 때문에 안기부 돈의 유입을 알고 있었을 거라고 주장합니다만….

“제가 해명할 필요도 없이 자명한 문제입니다. 선대위의장은 여권측에서도 맡아본 사람이 있을 텐데 본인들이 한 번 생각해보면 알 것 아닙니까.”

▼'의원 꿔주기'에 대해 ▼

―‘의원 꿔주기’를 처음 알았을 때 심정이 어땠습니까.

“경제가 워낙 어려워지고 있어 영수회담을 하게 되면 우선 경제를 살리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쪽에 역점을 두자고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영수회담을) 목전에 두고 ‘의원 꿔주기’사태가 발생해 사실 기가 찼습니다. 도대체 이 시점에 이렇게 하는 대통령의 뜻이 뭔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DJP공조로 한나라당에 대결선언을 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더욱이 이런 일련의 사태에 대해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하는 대통령의 얘기를 듣고 더 기가 막혔습니다.”

―제1당으로서 이니셔티브를 쥐고 막힌 정국의 활로를 열 의향은 없습니까. 예컨대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인정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과감히 처리해줄 용의는 없습니까.

“김대통령이 국회법을 개정해주면 세 의원을 되돌려올 수 있다고 했는데 정말 이해가 안 갑니다. 국회의원이 장기판의 ‘졸’입니까. 지난 대통령 임기 동안에 DJP공조로 많은 국정혼란과 혼선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DJP공조의 틀을 더욱 다지겠다는 ‘자민련 교섭단체’를 만들어주는 것은 앞으로도 국정농단과 혼선을 우리 스스로 조장해주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해줄 수 없습니다.”

―8일 있었던 DJP회동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DJP 공조복원이 과연 정국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두 분이 만나는 것 자체를 두고 왈가왈부하지는 않겠습니다. 문제는 DJP공조가 대선 때는 김대통령이 승리함으로써 국민의 인정을 받았다 치더라도 지난 총선에선 국민의 신임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제 DJP공조에 대해서는 국민의 동의 내지 공감의 바탕이 없다고 봅니다.”

―이번 여야대치 상황을 놓고 대권경쟁을 앞둔 ‘3김(金) 1이(李)’의 각축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또 3김 1이 구도 하에서는 3김의 동의 없이는 누구든 차기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다소 성급한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그런 얘기나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는지 모르지만(웃음), 저는 그런 얘기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차기 대선 구도는 얘기할 시기도 아니고…. 상황은 또 바뀔 것입니다. 과거 ‘지역분할의 방정식’에 염증을 내는 많은 국민의 마음에 직접 호소하는 정치를 해나가겠습니다.”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에 관한 질문인데….

“(손을 내저으며)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 개헌론이 떠돌고 있는데 ▼

―새해 들어 부쩍 개헌론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여권은 정계개편이나 개헌론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비치고 있습니다.

“지금 제기되고 있는 정 부통령제나 중임제와 같은 부분개헌론은 그 자체로서 주장할 논거는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개헌이 안되고 있기 때문에 정치가 잘못되고 국정혼란이 온 것은 아닙니다. 여권의 부분개헌론은 큰 틀의 정계개편을 의도하고 나온 것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함부로 고쳐서는 안 될 헌법을 손대어 정략적 목표를 이루겠다는 것이어서 발상 자체가 반(反)헌법적이고 반(反)민주적인 것입니다. 우리 당에도 개헌에 관한 의견을 갖고 있는 분들이 계시지만 그 분들도 음모적인 정계개편 논의에 말려드는 것은 원치 않고 있습니다.”

―현행 헌법으로 차기 대선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정 부통령제는 지역통합과 지역화합의 방편이 될 수도 있겠죠. 그러나 현행 헌법에서도 총리를 바지저고리로 만들지 않으면, 부통령이라는 시위소찬(尸位素餐)의 자리보다는 총리직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4년 중임제도 일리가 있지만, 우리 정치현실에서 현직 대통령이 재임을 위해 4년 내내 선거운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8년 동안 재임하게 되는데, 우리 정치현실에서 정권교체는 어려워질 것입니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몇몇 언론매체의 지지도 조사결과 이총재와 민주당의 한 특정인사의 지지도 차이가 극히 근소했습니다. 당사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웃음) 저는 2등 안 된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총풍(銃風)’이다 ‘세풍(稅風)’이다 ‘안풍(安風)’이다 해서 덮어씌우고 하는데 지지도가 올라가겠어요. 지금의 지지도는 국민이 관망하는 자세로 신중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앞으로 제가 열심히 하면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혹시 전략이랄까 대여(對與)투쟁방법이랄까 이런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까.

“강경투쟁을 오래하면 국민이 싫증을 내서 지지도에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지 여부에 관계없이 정의로운 목표를 위해서 원칙을 관철하고 강행해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국민을 불안케 한다는 비판을 들으면서도 외로운 결단을 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 경제가 어려운데 ▼

―경제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영수회담에서 김대통령의 현실인식에 실망했다고 하신 것도 경제문제에 대한 인식차이였던 것 같습니다만….

“우선 금융구조조정이, 그리고 기업구조조정이 제대로 돼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공적자금으로 투입된 109조원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한 것도 구조조정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단기간의 시한을 정해놓고 그 안에 구조조정을 끝내겠다고 하는데, 이것은 역설적으로 제대로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작년 11월에 김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그런 얘기를 했는데 이번에 또 만나보니까 여전히 같은 얘기를 해서 너무나 실망했습니다.”

―정부가 공언하는 대로 올해 하반기에는 경제가 상승 기조를 나타낼 것이라고 보십니까.

“저는 그렇게 낙관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정부가 상반기에 예산의 상당부분을 집행해서 경기부양책을 쓴다고 하는데 지금까지의 구조조정 방향을 고치지 않는 한 저는 금년 하반기에 오히려 어려워질 것으로 봅니다.”

▼ 대북정책에 대한 입장은 ▼

―20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부시정권과 현 정부의 대북정책간의 부조화(不調和) 가능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부시정부의 대북정책은 상호주의를 강조하는 쪽이어서 아무래도 김대통령의 햇볕정책과는 좀 어긋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미국의 대북정책과 김대통령의 대북정책간에 순조롭지 못한 여러가지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김대통령이 이제 대북정책에 대해 한번쯤 되돌아보고 반성할 점은 반성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의 대북정책이 예컨대 군사적 긴장완화와 같은, 북한을 실질적으로 변화하게 하는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가장 궁금하고 핵심적인 것은 지금의 첨예한 여야 대치 상태를 어떻게 푸느냐 하는 것입니다. 김대통령을 다시 만날 의향은 없습니까.

“또 만나고 나면 ‘(대통령에게) 예의 없고 금도를 잃었다’고 할텐데요(웃음). 이유야 어떻든 국민에게 걱정을 끼쳐드려 진심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막힌 정국을 풀고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뭐든지 하겠습니다. 현재로서는 어떤 걸 하겠다고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제1당 총재로서 국민을 보고 하는 정치를 할 것입니다. 지금 (여권이) 이렇게 해놓고 뭘 만나겠습니까.”

<송인수·김정훈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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