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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2월 7일 20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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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사동 고향마을. 이 마을에 사할린 동포들이 산다. 그들은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자신들을 도와주고 있는 사람을 '홍길동'이라 부른다.
고향마을에 사는 사할린 동포는 일제에 의해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됐던 '압송 1세대'다. 뼈라도 고향에 묻겠다고 찾아온 이들에게 고국은 너무 낯설고 외롭다.
노환이 깊어도 보살펴 줄 사람이 없다. 시청 직원과 자원봉사자가 그들을 매일 대형버스에 태워 병원으로 후송하는 게 고작이다. 그들의 아랫대는 귀환이 불가능하다. 암환자라 해도 피붙이 없이, 간병인 없이 혼자 투병해야 한다.
지난 6월 익명의 후원자가 그야말로 홍길동처럼 나타났다. "사할린 동포를 돕는 데 써달라"며 안산시에 800만원을 내놓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것으로 그친 게 아니다. 지금까지 모두 9차례에 걸쳐 성금 4천70만원과 위문품을 전달했다. 이 덕분에 고향마을 4백89가구가 김장을 할 수 있었고 병마에 시달리던 노인들의 치료비도 해결됐다.
홍길동은 여전히 묘연하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사할린 동포들에게 조국을 조국이라 부르게 해준 홍길동.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다는 사람들을 당신은 영영 부끄럽게 할 작정이군요.
안병률/동아닷컴기자mok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