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경제, 해법은 있다]전문가 긴급제언①

  • 입력 2000년 11월 5일 19시 54분


《한국경제가 또 다시 크게 흔들리면서 ‘제2의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 및 기업의 구조조정에 따른 후유증 탓에 사회 전반에 불안감도 확산일로에 있다. 고유가와 반도체 가격 급락, 미국 경제의 경착륙 조짐 등 대외 여건도 나빠지고 있다. 경제위기를 돌파할 묘안은 없을까.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로 해법을 찾는다. 첫 회로 박영철(朴英哲) 고려대교수 겸 외환은행 이사회 의장과의 인터뷰를 정리한다.》

▼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미네소타주립 대 경제학박사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1972년 이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1987년)

△한국금융연구원 원장(1992∼1998년)

△(현)한국외환은행 이사회 의장, 고려대교수

“정신만 바짝 차리면 현재의 위기는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 무엇보다 시장원리에 따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철저히 해야 한다. 다만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구조조정은 이번으로 끝내야 한다. 정부가 개입의 한계를 분명히 해 시장불신의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

박영철교수는 정부 기업 가계 등 경제 주체들이 근거 없는 낙관론에 사로잡혀서도 안 되지만 장래를 지나치게 비관하거나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다고 강조했다. 막연히 ‘경제가 불안하다’며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제2의 외환위기’가 닥칠 만큼 상황이 심각한지.

“경제가 어렵긴 하지만 ‘환란 재발’ 운운은 기우이다. 미국경제 둔화와 고유가, 일본경제의 장기 침체 등이 겹칠 경우 한국이 타격을 받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동남아와 같은 이머징 마켓(신흥시장)의 불안이 곧바로 한국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가는 연결고리는 상당부분 차단됐다. 앞으로 1∼2년간 경기가 부진할 수는 있지만 이를 최악의 위기로 연결짓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한국경제가 어렵게 된 원인은….

“부실기업과 금융기관을 대거 퇴출시킨 98년의 1차 구조조정은 그런 대로 잘 됐다. 문제는 경기가 급속히 회복된 99년부터 생겼다. 경기가 좋아지니까 당국이 자신감을 얻었고 금융기관과 기업도 장래를 낙관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탈출 전략이 부실근원을 없애는 것에서 성장을 통해 치유하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금융기관이 굳이 부실업체를 가려낼 필요가 없어졌고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게을리 했다. 부실 해소를 소홀히 한 것이 경제불안을 가중시킨 원인이다.”

―너무 일찍 허리띠를 느슨하게 풀었다는 지적인데….

“올 하반기 들어 경기가 둔화되고 내년 전망이 불투명해지니까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경제의 한계를 새삼 인식했다. 주가 하락으로 기업의 부채비율이 높아졌고 내수 위축으로 수익 구조가 나빠졌다. 반면 상당수의 부실기업들이 정리되지 않는 바람에 금융기관의 부담은 커졌다. ‘한국은 어렵다’는 심리가 퍼질 수밖에 없었다.”

―정부와 시장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는….

“시장은 나쁜 소식을 접하면 문제를 확대해 받아들인다. 당국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겠지만 과잉반응도 시장의 특성인 이상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 오히려 정부가 과도한 개입으로 시장기능을 저해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정부가 수십년간 의존해온 ‘한국형 주식회사’식의 정책운영 틀을 차제에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정부가 의사 결정을 주도하고 금융기관과 대기업이 따르는 방식이 60, 70년대에는 그럭저럭 통했지만 글로벌 디지털시대에는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기 십상이다.”

―외국 투자가들의 시선이 싸늘해져 걱정이다.

“국제 금융계에는 한국 경제에 대해 두 가지 시각이 있다. 한국의 특성을 감안해 과도한 개혁요구를 자제하자는 측과 개혁속도가 너무 늦다며 불만인 사람들로 나뉘어 있다. 문제는 우리 사정을 이해하는 쪽은 학계 위주여서 돈이 없고, 압력을 가하는 사람들은 돈이 많다는 점이다. 어느 쪽에 더 신경을 써야 하겠는가. 대답은 자명하다.”

―구조조정을 하다 보면 연쇄도산과 대량실업이 불가피할 텐데 과연 그 진통을 감내할 수 있을지.

“구조조정은 우리 모두가 살길이다. 일단 공적자금 40조원으로 2차 구조조정을 하되 기왕 할 바에는 더 이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말이 안 나오게 배수진을 치고 확실히 해야 한다. 이번에도 실패해 3차 개혁으로 내몰리는 사태가 생기면 정부와 기업이 시장에 끌려가는 악순환 구조가 굳어질 것이다.”

―노조의 반발이 클 텐데 설득이 쉽겠는가.

“모두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직후의 초심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을 가다듬어야 한다. 구조조정이 성공하려면 고통분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와 함께 노사문제 해결이 필수적이다. 정부가 ‘지금 고생하면 나중엔 더 좋아지고 직장도 다시 생긴다’는 믿음과 희망을 줘야 한다.”

<정리〓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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