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송보경/식품관리 예산 확보부터

  • 입력 2000년 8월 29일 18시 44분


이번 납꽃게 사건은 이전의 다른 부정불량식품 사건과 구분돼야 한다. 중국인이건, 한국인이건 납을 고의로 식품에 넣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과거에는 납을 단순히 독성 중금속 물질로 주의했지만 최근 공포의 환경호르몬 물질로 알려졌다. 환경호르몬 물질은 인간의 내분비계에 작용해 우리 자신은 물론 후손에게도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환경호르몬은 미량으로도 인체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미량이라고 주장하는 다이옥신이 함유된 벨기에산 돼지고기의 판매를 소비자들은 두려워하는 것이다.

꽃게에 금속탐지기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소비자로서 궁금증이 생긴다. 도대체 누가 납을 넣었을까? 중국의 수출업자일까, 한국의 수입업자일까? 어떤 조건의 수입이기에 고의로 납을 넣은 부정 불량 수산물을 중국으로 반송하지 못하는 것인가? 과연 이번에는 정부의 식품안전대책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대통령은 최근 “식품 환경 교통사범 등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반공익적이고 반인륜적인 행위는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고 장관회의에서 강조했다.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의 소비자라면 수십년간 목격한 아주 익숙한 장면이다. 과거에도 부정식품이 적발됐다고 떠들썩하게 보도되면 어김없이 대통령이 관계장관회의에서 철저한 대책 마련을특별지시했다는 보도가 뒤따랐다. 대통령의 특별지시가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한다.

납꽃게 사건은 이미 예견된 사건이었다. 지금처럼 허술한 관리체계로는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일이다. 부정불량식품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를 허술한 정부의 관리체계에서 찾아 이를 고칠 때 식품안전성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다.

첫째, 시장개방과 자율화라는 명목으로 식품관련 규제가 계속 완화됐다. 한국의 소비자는 시장개방과 자율화를 거부하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다만 식품관련 규제가 완화되면 이에 걸맞은 식품안전 감시 평가 시스템이 마련돼야 하는데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수입농수산물의 경우 현장 평가제도, 기업이 제공하는 식품기준에 대한 객관적 평가, 민간의 식품안전검사와 소비자에 대한 정보제공 등이 자율화 이전에 반드시 갖췄어야 하는 장치들이다. 이런 장치의 미흡 때문에 납꽃게 사건은 예견된 사고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식품 안전이 다른 어떤 정책보다 우선 순위를 확보해야 한다. 대통령의 지적처럼 식품 안전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우선 순위에 있어야 다른 정책과 충돌할 때에 뒤로 밀리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수출시장 확보 등에 급급해 수입식품의 안전성 문제가 뒤로 밀리는 때가 있다. 정책 우선 순위에 놓여야 예산도 확보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셋째, 대통령의 지시가 현실 속에서 실제로 작동되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농수산물 검역소에 대한 예산 지원이 약속됐지만 사건 몇 달 후 예산 배분 과정에서는 정부의 예산 절감원칙에 묶여 실현되기 어렵다면 대통령의 지시는 요란한 빈말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공무원이 대통령의 뜻을 거역하려는 의사가 전혀 없는데도 규정에 묶여 그 뜻을 실현할 수 없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 된다.

넷째, 이중가격이 있는 시장이라면 부정의 가능성은 상존한다. 복어, 홍어 등이 국산과 수입산의 가격차가 크다면 소비자에게도 부담이지만 업자들을 부정으로 유혹할 수 있다. 시중에 이중가격이 있고, 감시 평가 기능이 미약하고, 형벌이 가볍다면 납꽃게와 비슷한 사건은 언제나 재발할 수 있다.

납꽃게처럼 고의성이 있는 식품위해사범은 다시는 시장에도, 사회에도 진출할 수 없도록 엄격하고 단호하게 처벌해야 할 것이다.

안전한 식품 공급이 이번 정부의 업적이 되려면 해답은 간단하다. 식품안전을 감시하는 시스템을 과감하게 바꾸고 작동시켜라. 예산을 늘려라. 그리고 이를 말로만 하지 말고 실천에 옮겨라.

송보경(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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