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차범석訪北記/동포들 환호성 '감동의 작품'

  • 입력 2000년 6월 16일 18시 50분


똑같은 아침이지만 내게는 오늘(16일) 아침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짧지만, 충격으로 가득 찼던 방북 길을 더듬고 있다. 내 머리에는 북한의 동백기름이 그대로 남아 있다. 15일 모란봉 숲속에 있는 숙소인 주암산 초대소를 떠나기 전 바른 그 동백기름이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면서 평소와 달리 머리를 감지 않기로 작정했다.

평양과는 먼, 남쪽 끝 목포가 내 고향이다. 1939년 광주서중(현재 광주일고) 시절 가족여행으로 금강산을 찾은 게 칠십 평생 내가 밟았던 북한 땅에 대한 유일한 기억이다. 꼭 61년 만에 다시 찾은 북녘 땅은 쉽사리 잊을 수 없는 무대였다. 이보다 강렬하고 감동적인 ‘작품’이 있을까.

우리를 환영하는 인파 중 동원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진심이 아니라면 어찌 그리 열렬하게 맞을 수 있겠는가. 우는 그곳의 동포를 보면서 통일을 원하기는 이쪽이나 그쪽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방북 길에서 ‘통일문학전집’의 공동간행, 연극과 무용 등 공연과 관련된 남북의 인적 교류 등을 제안했다. 현장에서 곧 그렇게 하자는 약속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만남을 지켜보고 2박3일간 그곳 사람들을 만나면서 ‘긍정적인 검토’라는 말이 결코 인사치레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북한의 공연은 주체사상에 바탕을 둔 것으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우리 것을 내세웠다. 작곡이건 안무가 됐건 내 것에 바탕을 둔 공연이어서 관객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포스트 모던이니 뭐니하며 다양한 이론을 내세우고 있는 우리 연극과 춤이 오히려 관객과 감동을 나누는 데 인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방북에서 배우 전두영과 연희전문 동창인 바이올리니스트 이계영 등 옛 친구를 만나고 싶었다. 이씨는 연락이 되지 않았고 전씨는 이미 작고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내가 너무 늦게 갔나.

아마도 이미 늦은 것도 있을 터이고 지금 가능한 것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턱대고 서두르기보다는 55년 간 분단으로 생긴 차이를 인정하면서 무릎을 맞대는 것이다. 사람이, 작품이 오가다 보면 통일은 감상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퀴퀴한 냄새가 난다며 주변에서 싫은 내색을 하기 전에는 내 머리의 동백기름을 계속 남겨둘 생각이다.

차범석(예술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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