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래정/現代사태 원인은 '황제경영'

  • 입력 2000년 5월 28일 19시 50분


증시가 숨을 죽이고 있다. 현대사태가 어떤 태풍을 몰고 올지 모두가 불안하다. 자금시장은 이미 동면(冬眠)에 들어갔고 금리가 치솟을 것을 예상한 자금 운용자들은 현금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 장관급 인사 7명이 한데 모여 현대측 결단을 촉구한 지 수시간만에 정몽헌 현대회장이 훌쩍 일본으로 떠났다. 측근들은 "이번 사태와 무관치 않은 출장"이라지만 시장에선 "현대가 장기전을 구상하고 있는 것 같다"며 주초 자금대란을 우려했다. 현대 구조조정본부엔 "건설의 일시적 유동성위기와 지배구조 개선이 무슨 관련이 있느냐"며 정부측 강공을 원망하는 분위기가 짙게 깔려있다.

현대 주장대로 지금 '대우전철'을 운운하는 것은 섣부른 것일지 모른다. 22%에 불과한 단기차입금(3월말 기준), 자동차 상선 반도체사업 등이 보여주는 탄탄한 현대의 영업력과 영업적자에 허덕였던 대우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런데 시장은 왜 이처럼 탄탄한 현대의 미래를 깎아내릴까. 막연히 자금시장의 '협조게임'이 무너진 탓일까.

99년 초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과 정몽구회장간 자동차 산업개발 지분이 정리된 뒤 두 주력사의 최고경영진은 단번에 교체됐다. 자동차 전문가가 한순간에 건설개발 전문가로 변신하게 된 셈이다. 올 3월 '왕자의 난'에선 측근 경영인들 상당수가 편가름을 했다.

한 주력사 사장은 최근 "왜 돈 안되는 대북사업을 벌이느냐"라는 질문에 "왕회장이 정하면 우리는 한다"고 말했다. 오너에 대한 충성심이 가장 중시되는 게 현대의 경영문화임을 알 수 있는 사례다.

전직 대우사장인 A씨는 "김우중 회장은 30년 동안 딱 한번 판단착오를 했다. 그러나 그 한번 실수에 모든 것이 날아갔다"고 말했다. 정부와 채권단, 국내외 투자자들이 현대의 지배구조를 염려하는 것은 '대우의 교훈'이 이처럼 남아있기 때문이다.

박래정<금융부>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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