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교통사고 생존 女스님 亡者위한 '29년만의 보은'

  • 입력 2000년 3월 24일 20시 52분


‘살아남은 자의 아름다운 보은(報恩).’

버스추락사고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한 여스님이 24일 망자(亡者)들의 원혼을 달래려는 뜻으로 동국대에 2000만원을 기증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대전 중구 석교동의 작은 암자인 금강사의 비구니 일성(一晟·69·사진)스님.

50년 18세때 출가한 일성스님은 71년 5월 경기 가평군 청평호수에 방생기도를 가던 중 버스가 청평호에 추락, 함께 탔던 승객 77명이 숨지는 사고에서 다른 승객 2명과 함께 가까스로 살아났다. 스님은 사고 뒤 당시 10만원을 모아 숨진 이들의 49재를 손수 지냈고, 매년 기일 때마다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빌어왔다.

“마음은 여전히 편치 않았습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나만 살아남았으니 두터운 업보가 쉬 사라질 리 없겠지요.”

그러던중 지난달 동국대생 7명이 강원도 미시령에서 버스사고로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30년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스님은 “사고 당시 입었던 가사(袈裟) 장삼을 간직하고 틈틈이 꺼내보며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할 일이 있을 것으로 믿으며 한푼두푼 돈을 모았다”며 “숨진 학생들의 영혼이 깃든 동국대에서 불교종합병원을 짓는다는 소식을 듣고 숨진 영혼들을 달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돈을 기탁하게 됐다”고 밝혔다. 스님은 “사고에서 살아난 것만으로 충분히 부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이니 내가 모은 돈은 다른 이들을 위해 쓰는 게 당연하다”며 겸손해 했다.

<선대인기자>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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