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동아일보가 처음한 일]

  • 입력 2000년 3월 24일 19시 33분


[창간특집-동아일보가 처음한 일]

동아일보의 80년 역사는 한국 언론사와 문화사에 수많은 ‘최초’의 기록을 남긴 역사였다. 창간 이래 동아일보는 최초의 해외 상주특파원 파견과 지방판 제작 등을 통해 선도적 언론매체로서의 사명을 다해왔고, 민족의 문화공기(公器)로서 ‘브 나로드(민중 속으로)’ 운동으로 대표되는 일제하의 수많은 계몽운동, 문화 체육사업에서 두루 ‘No.1’의 기록을 남겼다. 동아일보가 현대사에 남긴 ‘최초의 기록’을 들여다본다.

▼계몽·시민참여 운동▼

‘입어라, 조선사람이 짠 것을/먹어라, 조선사람이 만든 것을/쓰라, 조선사람이 지은 것을.’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가 발행한 선전전단의 내용. 물산장려운동은 3·1운동 직후부터 평양 등 일부 지역에서 전개돼 왔으나 전국적 규모로 확대되지는 못했다. 본지는 그해 벽두부터 연 4일간 물산장려에 대한 사설을 게재하는 한편 특집기사를 통해 연일 물산장려운동의 전국규모 조직화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다.

1월9일 본지의 지원하에 조선물산장려회 총회가 열리자 본지는 지면을 통해 활동상을 소상히 소개하는 한편 일경의 탄압상을 대대적으로 고발했다. 언론사가 주도한 최초의 시민 계몽운동이었다.

동아일보는 이어 1931년부터 34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브 나로드 운동’을 주최, 전국 구석구석에서 민중의 열렬한 지지 속에 계몽운동을 펼쳤다. 최초의 전국규모 민중대상 계몽 교육사업이었다. 19세기 러시아에서 전개된 ‘브 나로드’ 운동을 모델로 전개된

이 운동은 학생층의 폭넓은 참여 속에 문맹퇴치와 한글 보급, 위생지식 보급에 목적을 둔 일대 민중운동으로 전국민의 열화와 같은 호응을 받았다. 참가자의 활약상은 심훈의 장편소설 ‘상록수’로 형상화됐으며, 이 활동은 오늘날까지 지식층 농촌봉사활동의 모델이 되고 있다.

동아일보가 선도한 시민참여운동의 전통은 94년 ’그린스카우트’ 운동의 출범으로 새 전기를 맞았다. 300여개의 단체와 100만여명의 환경파수꾼이 참여한 그린스카우트 운동은 환경보전의 자각과 오염 감시활동의 실천을 일구어낸 첫 전국규모 시민참여 환경운동으로 기록되고 있다.

▼문화사업▼

동아일보는 일제하 민족의 정치역량이 탄압받는 현실에서 문화적 역량을 키우는 것만이 자주독립을 앞당기는 일이라고 판단, 수많은 문화행사를 기획 주최했다.

1925년 1월 동아일보는 국내 최초의 신춘문예 공모를 시작했다. 신춘문예 제도는 오늘날 각 언론사에서 작가 시인을 비롯한 문화계 신인의 등용문으로 활용하고 있다. 유구한 전통에 빛나는 동아일보 신춘문예는 오늘날에도 매년 3000명이 넘는 응모자와 1만여편이 넘는 응모작을 기록하며 최대규모와 최고권위를 자랑하는 신춘문예 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회 신춘문예 입선자 중 아동문학 분야의 윤석중이 한국 문단의 중추로 자리잡았으며, 그 뒤 서정주 김동리로 대표되는 수많은 문단의 거성들이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배출됐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콘서트도 동아일보가 주최했다. 1920년 5월 서울YMCA에서 열린 소프라노 야나기 가네코의 독창회가 그 첫 출발. 출연자는 1924년 광화문이 헐리게 되자 본지에 ‘아! 광화문’이라는 글을 기고, 한국문화 보호를 소리높여 호소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부인이었다.

공연사업에 대한 동아일보의 지원은 1985년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첫 방한 연주, 1988년 구소련 악단의 첫 방한 행사인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모스크바 필하모닉 교향악단의 방한은 같은 해 세계 최고권위의 볼쇼이 발레단 내한공연과 함께 한-소 해빙무드를 조성, 결국 한-소수교에까지 이르게 한 문화적 일대사건으로 평가된다.

1956년 동아일보는 국내 첫 프로기전(棋戰)인 국수전을 출범시켰다. 국수전은 43년의 역사를 거치며 조남철 조훈현 서봉수 이창호 루이웨이나이(芮乃偉) 등을 잇따라 국수로 배출, 최고권위의 국내 기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체육-탐사사업▼

1920년 동아일보사는 최초의 전국규모 한국인 체육단체인 조선체육회 설립을 주도했다. 그해 4월부터 지면을 통해 민족 체육단체 설립의 필요성을 거듭 역설했고, 6월 동회의 창립준비위원회가 열렸을 때 90여명의 발기인 중 동아일보 인사 10여명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조선체육회 설립으로 시작된 본지의 체육행사 참여는 오늘날 동아국제마라톤을 비롯한 활발한 체육사업으로 이어지게 된다.

1923년 6월30일, 본사 주최로 경성제일고등여학교에서 제1회 전조선여자정구대회가 열렸다. 우리나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체육대회는 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이 대회는 1939년까지 17회에 걸쳐 열려 여성의 사회적 자각과 권익향상에 크게 기여했고, 해방후 재개되어 본사 주최 연례사업 중 최장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29년에는 본사 주최로 국내 최초의 수영대회가 열렸다. 9월 서울 낙산 아래 풀장에서 거행된 수영대회는 관중이 인산인해로 운집한 가운데 8개 부문으로 진행되며 성황을 이루었다.

본사는 각종 탐사사업에도 남다른 기록을 남겼다. 1980년 8월11일 본사가 창간60주년 기념사업으로 추진한 조오련 선수의 대한해협 수영 횡단이 세계 최초로 성공, 한국남아의 기개를 과시했다. 이에 앞서 8월6일에는 요트 ‘파랑새호’가 본지의 후원으로 75일만에 태평양 횡단에 첫 성공, 청소년들에게 해양국가 한국의 꿈을 키우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일본이 가진 94일의 횡단기록을 19일이나 단축한 쾌거였다.

1995년 동아일보는 또하나의 기록을 작성했다. 본사의 사하라탐사대가 6개월의 대장정 끝에 7000km를 걸어 6월5일 사하라사막 횡단에 성공한 것. 사하라사막 도보횡단은 세계 탐험사상 아무도 꿈꾸지 못했던 최초의 사건이었으며 세계 주요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취재영역 확대▼

동아일보는 언론의 본령인 취재 보도에도 창간 직후부터 단연 앞서나갔다.

1924년 4월 본보는 창간 4주년을 맞아 한국 신문사상 처음으로 중앙판 삼남판 서북판을 분리, 지방독자에게 차별화된 뉴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모든 중앙 언론사가 뒤따르고 있는 지방판 제작의 선구적 형태였다.

이에 앞서 1921년 동아일보는 세계적 규모의 언론관계 회의에 처음 대표를 파견했다. 21년 10월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제2차 만국기자대회에 동아일보는 김동성기자를 대표로 파견, 나라 없는 시대에 ‘한국(Korea) 대표’로서 회의에 참여하게 했다. 김기자는 같은해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태평양군축회의에도 참석, 국제회의에서 처음으로 한민족의 자결권을 역설했다.

해외에 첫 상주특파원을 파견한 것도 동아일보였다. 1923년 4월 본사는 장덕수를 미국특파원에, 김형원을 도쿄특파원에, 유광렬을 상하이특파원에 임명해 상비적인 해외취재망을 최초로 갖추게 된다. 해방후에도 1965년 진철수특파원을 워싱턴에 파견, 상주특파원체제를 국내 최초로 갖추었다.

1968년에는 ‘동아핸드북’을 전사원에 배포, 언론계 최초로 기사작성의 포괄적인 요령을 명문화했다. ‘동아핸드북’은 매스컴 관련 법규와 신문윤리요강까지 포함된 치밀한 실무지침서로서 타사 기자들도 돌려보는 등 높은 호응을 얻었다.

▼앞선 독자서비스▼

1966년 9월 본사는 한국 신문사상 처음으로 마이크로필름 시설을 갖추고 반세기에 걸친 동아일보 보관지를 필름에 담았다.

이에 앞서 1958년 6월에는 1920년 창간호부터 1928년까지 40권에 이르는 축쇄판을 간행 배포하기도 했다. 이로써 본지는 신문의 영구보존과 함께 독자의 정보수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게 됐다.

1970년에는 동아일보 기사색인집 제1권이 발간됐다. 아시아지역에서 처음으로 출간된 기사색인집이었다.

1920년부터 22년까지의 기사를 주제별로 분류해 쉽게 찾을 수 있게 한 이 색인집을 위해 연 5300명의 인력과 11만여장의 검색카드가 사용됐다.

1962년 6월1일 신설된 심의제도 역시 한국 신문사상 최초의 시도로 기록된다.

미국의 대신문이 갖고 있는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한 심의제도는 책임있는 지면제작을 촉구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제작진이 아닌 전문가들이 매일 제작된 지면을 객관적으로 심의, 평가보고를 내는 방식을 취해 지면의 품질 및 정확성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창간 80년을 맞아 동아일보가 추진중인 신문박물관 건립은 한국 언론사 최초이자 획기적인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서울 광화문 동아미디어센터 3, 4층에 들어서는 신문박물관은 한성순보 독립신문 등 초창기 신문부터 현재 남아있는 모든 신문의 창간호 종간호 기념호 등과 신문 취재 편집 인쇄 등에 관련된 물품, 각종 영상 및 도서자료 등을 전시해 한국 언론에 대한 산 교육장 및 정보센터로서의 기능을 하게 된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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