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이 빚은 이산의 아픔, 망각 속에서 소환하다

조종엽 기자 입력 2019-12-16 03:00수정 2019-12-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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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내셔널 북한’ 학술대회
1950년대 동유럽 유학생-고아 등 북한의 인적교류 이면사 조명
1960년 북한인 유학생 홍옥근 씨(오른쪽)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지만 1년 만에 생이별한 동독 출신의 레나테 홍 씨. 2008년 7월 25일 평양에서 남편과 극적인 상봉을 했다. 동아일보DB
1952년 10월 37명이 동베를린에 도착한 것을 시작으로 1956년까지 357명의 북한 대학생이 동독에 유학했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1959년 40명을 북한으로 조기 소환했고, 동유럽의 모든 유학생에게 일시적으로 북한에 돌아와 정치사상 교육을 받도록 만든다. 이런 와중에 학생 11명이 서베를린을 통해 서독으로 탈출하는 사건도 벌어진다.

이념과 민족의 시각을 넘어, 남북한의 공식 역사 서술에서 생략됐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명하는 국제 학술회의가 열린다.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연구소(소장 임지현)는 16, 17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김대건관에서 학술회의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 북한: 잊혀진 기억과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개최한다.

학술회의의 한 주제는 분단과 관련된 ‘디아스포라(Diaspora·이산)’다. 이유재 독일 튀빙겐대 교수는 ‘반제국주의 영웅들: 동독에 간 북한 전쟁고아와 유학생’ 발표문에서 1950년대 북한이 ‘사회주의 형제국가’들과 인적으로 교류하면서 벌어진 일상적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발표문에 따르면 1950년대 북한 정부는 전쟁고아 2만4000여 명, 유학생 5000여 명, 노동자 7800여 명을 이들 국가에 여러 목적을 가지고 보냈다. 북한은 동독에 파견한 전쟁고아가 교육을 마치고 귀환한 뒤 ‘퇴폐적 유럽 생활’과 ‘노동자 계급에 반하는 사상’에 물들어 있는 것을 보고 유학생도 소환하기 시작했다. 유학생이 동독인과 연인이 됐거나 결혼한 경우에도 예외는 없었다. 이 교수는 “대부분의 동독 여성은 북한인 남편이나 남자친구를 따라 북한에 갈 수가 없었다”며 “현실은 참혹하게도 이들을 이산가족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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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북한의 초기 아파트 문화를 근대적 욕망의 시각에서 조명한 안드레 슈미드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의 발표를 비롯해 ‘북한의 패럴랙스 건축’(김지형 하와이대 교수), ‘이동하는 북한 여성의 원거리 모성’(김성경 북한대학원대 교수), ‘영국 거주 북한 이주민의 고국 정치’(이수정 덕성여대 교수) 등의 발표가 이어진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트랜스내셔널 북한#디아스포라#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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