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처럼 때론 앙숙처럼… 트럼프 ‘롤러코스터 스킨십’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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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G20 정상회의 뒷얘기
다양한 정상들의 다자회의 변수는


6일(현지 시간) 독일 함부르크의 한 호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묵고 있는 이곳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들어섰다. 7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양자회담을 하기 위해서다.

메르켈은 잠시 트럼프를 쳐다보더니 웃으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짐짓 놀란 표정의 트럼프가 손을 맞잡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두 정상이 ‘묵직한 악수(hefty handshake)’를 나눴다고 전했다.

두 정상은 사실 악수와 관련해 ‘악연’이 있다. 3월 워싱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메르켈이 기자들의 요청에 따라 악수를 청했으나 트럼프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자리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큰 화제가 됐다. ‘외교 결례’라는 꼬리표도 따라다녔다. 폭스뉴스는 두 정상이 나눈 6일의 묵직한 악수에 대해 “트럼프의 속내는 알 수 없으나 G20이라는, 다자외교라는 공간이 준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G20 회의와 같은 다자회의는 한 정상의 외교력은 물론이고 ‘케미스트리(chemistry·궁합)’로 표현되는 정상들 사이의 정치적 스킨십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무대다. 양자회담은 세부적으로 의제가 정해져 있고 상대가 한 명이라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지만, 다자회의는 다양한 스타일의 정상이 한꺼번에 만나는 무대라 그만큼 돌발 변수가 많다.

○ 모디와는 포옹, 시진핑과는 어색한 악수?


이번 G20 회의에서 트럼프가 좋은 궁합을 선보일 후보는 여럿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말 백악관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모두 자국 내 제조업 육성과 보호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끌어내겠다는 성향이 강하다. 동시에 인도는 트럼프 행정부의 외국인 전문직 비자 제한 움직임과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결정 등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당시 회담 전망에 대해 우려가 많았지만 두 정상은 첫 대면부터 자연스럽게 악수를 교환했고, 공동성명 뒤 기자회견을 마무리하면서 포옹으로 작별 인사를 나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G20 정상 가운데 트럼프의 최고 절친이다. 아베는 트럼프가 지난해 11월 미 대선에서 승리하자 미국 뉴욕으로 날아가 트럼프와 만난 첫 해외 정상이다. 아베는 맨해튼 트럼프타워에서 트럼프, 큰딸 이방카, 사위 재러드 쿠슈너 등을 두루 만난 뒤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임을 확신한다”고 트럼프에게 힘을 실어줬고, 트럼프도 “위대한 우정을 시작하게 돼 즐겁다”고 화답했다.

이미 2월 워싱턴과 5월 이탈리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 두 차례 정상회담을 한 트럼프와 아베는 함부르크에서도 8일 오후 정상회담을 한다. 미국 측이 함부르크 G20 회의 기간에 정상회담을 하기 어렵다고 통보했으나 일본이 노력해 시간을 잡은 것이다. 2월 워싱턴 정상회담 당시 “일본을 최우선으로 할 것이다. (양국 간에) 의제가 없어도 회담을 하자”고 한 트럼프가 약속을 지킨 셈이 됐다.

취임 초 트럼프와 가장 케미가 좋았던 정상은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다. 메이는 트럼프가 대통령 취임 후 가장 먼저 만났던 정상이다. 도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친분을 꿈꿨으나 이 역시 오래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트럼프가 싫어하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절친’임에도 트럼프와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트뤼도는 미국을 방문하던 3월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를 초청해 뉴욕에서 같이 뮤지컬을 관람하는 등 좋은 관계를 쌓으려 손을 내밀었고, 트럼프는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캐나다 건국기념일이었던 이달 1일 트위터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며 트뤼도를 ‘내 새로운 친구’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트럼프는 4월 미국에서 열린 마러라고 정상회담 이후 3개월 만인 8일 함부르크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재회한다. 이들의 궁합은 이번 G20 회의의 최대 관심거리 중 하나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을 계기로 두 정상의 관계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위기설이 나돌았던 4월, 트럼프는 시진핑과 4시간 넘게 북핵 해법을 진지하게 논의한 뒤 “시 주석의 노력에 감사를 표한다”는 반응을 내놨다. 문제는 그 후였다. 북한이 추가 미사일 도발에 이어 ICBM까지 발사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갈수록 시 주석의 북핵 압박 약속에 실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러라고 회담이 두 사람의 친교 가능성을 타진한 첫 만남이었다면 이번 함부르크 회담에선 두 정상이 ‘외교적 가면’을 벗어던지고 정치적 민낯을 드러낼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의 대북 압박 외에는 뾰족한 대북 압박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결국 협력 쪽으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보호무역주의를 외치는 사이 시 주석이 올해 1월 다보스포럼에서부터 세계 글로벌 자유무역주의의 선봉에 서겠다고 나선 점도 갈등 요소다.

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첫 대면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전통적인 외교 관례를 거부하는 두 스트롱맨의 만남인 데다 트럼프가 러시아의 대선 개입 스캔들로 특검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두 정상의 머릿속도 복잡할 듯하다.

트럼프 취임 전만 해도 온통 푸틴과의 브로맨스가 전 세계에 미칠 영향이 화두였다. 그러나 이후 싸늘하게 식어갔다. 당장이라도 풀어줄 것 같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경제 제재는 아직 풀리지 않았고, 시리아 문제도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트럼프에 대한 기대를 접는 분위기다. 트럼프로서는 “러시아 덕에 대통령 됐다”는 공격의 빌미를 막기 위해서도 제재를 풀기 어렵다.

○ 트럼프와 ‘기싸움 악수’를 할 정상은 누구

이번 G20 회의에서는 트럼프와 불편한 정상이 대거 참석한다.

회담 전 의외의 악수를 나눴지만 메르켈은 여전히 트럼프와 불편한 사이다. 메르켈은 G20 회의 개막 이틀 전인 5일에도 “미국 정부는 세계화가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낸다고 보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를 겨냥했다.

트럼프의 핵심 공약인 ‘국경 장벽’의 직격탄을 맞을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도 메르켈 못지않게 트럼프와 어색한 사이다. 트럼프의 트위터 독설 한 방에 예정됐던 정상회담이 전격 취소된 적도 있다. 두 사람은 7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맬컴 턴불 호주 총리도 어색하기로는 둘째라면 서러운 관계다. 턴불은 1월 말 트럼프와의 통화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했던 약속이라며 호주에 체류 중인 난민을 미국이 받아줄 것을 부탁했다. 트럼프는 “지금껏 (해외 정상과 가졌던) 전화 통화 중 최악”이라고 받아치며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미국의 동아시아태평양 전략상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호주와 삐걱거린다는 비판이 일자 공화당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턴불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무마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워싱턴=이승헌 ddr@donga.com / 파리=동정민 특파원 / 한기재 기자
#트럼프#롤러코스터 스킨십#g20 정상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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