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칼럼]지방 주도 의료정책 설계가 지역 의료 붕괴 막을 해법

  • 동아일보

이영성 충북 공공보건의료지원단장(충북대 의대 교수)

이영성 충북 공공보건의료지원단장(충북대 의대 교수)
이영성 충북 공공보건의료지원단장(충북대 의대 교수)
최근 한 지방 도시에서는 응급실이 야간 운영을 중단했고, 소아청소년과는 더 이상 신규 환자를 받지 않는다. 분만실마저 없어 임신부는 한 시간 이상 떨어진 도시로 이동해야 한다.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을지’부터 걱정해야 하는 지역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역 의료는 생활 기반 서비스 기능을 빠르게 잃고 있다.

지역 의료 붕괴는 단순히 병원이나 의사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중앙정부가 정책을 설계하고 지방은 집행만 하는 구조, 책임과 권한이 일치하지 않는 재정 시스템이 오랜 시간 누적되며 만들어진 결과다. 이제는 ‘무엇을 더 지원할 것인가’를 넘어 ‘누가 결정하고, 누가 책임질 것인가’를 근본적으로 다시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가졌다. 그러나 지역 공공의료 정책은 여전히 중앙정부 주도의 통제와 관리 논리에 머물러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의료 현실과 주민 수요를 가장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앙이 설계한 사업을 집행하는 역할에 그친다. 지방을 단순한 수행기관이 아니라 지역 공공의료의 실질적 책임 주체로 인정해야 할 시점이다.

중앙정부의 역할은 분명하다. 전국 어디서나 적용 가능한 기준을 만들고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며, 정책 성과를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반면 그 재원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는 지역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지방정부가 결정해야 한다. 중앙이 세부 사업 단위까지 설계하는 현재 방식으로는 지역별 인구 구조와 의료 수요의 차이를 반영하기 어렵다.

현장에서 지역 공공의료 정책을 다루다 보면 더 많은 지침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지역이 스스로 판단하고 조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한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권한 이양에는 책임이 따른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장치가 바로 ‘가치 기반 성과 평가’다. 예산을 얼마나 썼는지가 아니라, 그 결과 주민의 건강 지표와 의료 접근성이 실제로 개선됐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성과가 입증된 지역엔 자율성을 더 부여하고, 그렇지 못하면 정책 개선을 유도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재정 운용 방식이다. 보건의료 예산 외에도 지방소멸대응기금, 벽오지 지원금, 취약지 개선 사업 등 다양한 재원이 존재하지만 부처 간 칸막이로 인해 분절적으로 쓰이고 있다. 지역 단위에서 이러한 재원을 통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확대해야 정책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의료취약지에는 추가 지원보다 규제 완화가 먼저다. 대도시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새로운 시도는 가로막고 있다. 과감하게 의료취약지 규제프리존을 만들어 근무 형태를 유연화하고, 의료기관 간 협력 진료, 이동 진료와 같은 모빌리티 의료를 통해 의료 공백을 해결해 보자. 지역 의료가 완전히 붕괴하기 전에, 이제는 그 전환을 실행해야 할 때다.

#지역 의료#지방 의료 붕괴#중앙정부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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