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한인들, 美사회 책임있는 일원 되려면 선거 적극 참여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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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표적 지한파 정치인 제리 코널리 하원의원

미국의 대표적 지한파 정치인 중 한 명인 제리 코널리 민주당 연방하원의원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한국인들이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뜨거운 열정 덕택이다. 하지만 지나친 교육열은 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미국의 대표적 지한파 정치인 중 한 명인 제리 코널리 민주당 연방하원의원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한국인들이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뜨거운 열정 덕택이다. 하지만 지나친 교육열은 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제리 코널리 의원 집무실 탁자에 놓인 태극기 국기함. 앞쪽의 권투 글러브는 한 지인이 “투쟁적으로 열심히 의정 활동하라”며 선물했다고 한다.
제리 코널리 의원 집무실 탁자에 놓인 태극기 국기함. 앞쪽의 권투 글러브는 한 지인이 “투쟁적으로 열심히 의정 활동하라”며 선물했다고 한다.
《 워싱턴에서 만나는 미국인들 중 한국을 좀 안다는 사람들은 대개 어눌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인사말 외에 정작 한국에 대해선 잘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워싱턴 정가에서 대표적인 지한파 중 한 명으로 꼽히는 4선의 제리 코널리 연방하원의원(민주·버지니아 11지구)은 조금 달랐다. 그는 한국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만나자마자 집무실 책상 뒤 한쪽에 있는 상자를 열어 보였다. 한글로 ‘국기함’이라고 적힌 상자엔 태극기가 가지런히 접혀 담겨 있었다. “몇 년 전 한국에서 방문한 국회의원이 선물로 준 거다. 내가 한국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알겠지?”라며 웃었다. 워싱턴에서 한국은 주요 관심사다. 지한파를 자처하는 의원들이 넘쳐나는 것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과 한국인이 그만큼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 미국의 오피니언 리더는 한국과 한국인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해서 코널리 의원을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달 25일 워싱턴 내 의사당 인근 레이번 오피스 빌딩 집무실에서 50분 동안 진행됐다. 1월에 새 의회(114차)가 시작된 만큼 그는 30분 단위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

열정적인 한인들, 투표율은 낮아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4선 고지에 오른 것을 축하한다. 지역구 내 한인들의 지원이 컸다고 들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버지니아 주에 사는 한인(약 7만1000명) 절반가량이 내 지역구에 살고 있는데 한인 지도자들이 지지 선언도 해주고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중간선거라서 그런지 투표율이 36%로 높지 않았다. 한인들도 비슷했다. 물론 당선됐으니 별 상관 없지만…(웃음).”

―한인 투표율이 낮다니 잘 이해가 안 된다. 한인 사회가 정치에 그리 관심이 많은데….


“나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한인들은 대단히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친다. 삶 자체가 정치적이다. 퇴근하면 대개 집으로 직행하는 미국 사람들이 보면 깜짝 놀라는 게 무슨 저녁 모임들이 그리 많은지…. 출신 학교, 종교, 군대는 물론이고 고향 지역까지 구분해 모임이 있더라. 선거가 있던 지난해 1년간 내가 참석한 한인 관련 모임만 1000개가 넘는다.(코널리 의원의 지역구는 페어팩스 카운티, 프린스 윌리엄 카운티로 한인들이 많이 사는 애넌데일, 페어팩스, 센터빌, 타이슨스 코너 등의 지역이 포함됐다.)

이런 능력이 아무래도 짧은 시간 내에 한국인들이 미국에 정착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을 거다. 그런데 이런 열정적인 한인들이 선거 때 생각보다 투표소로 많이 나오지 않아 그 이유를 찾고 있다.”

―한국인들의 특징을 열정에서 찾았다. 2009년부터 7년째 의정 활동을 하면서 만난 그 열정은 또 어디서 발견했나.

“교육열, 교육에 대한 태도다. 미국에 건너온 한인 1세대들이 세탁소, 슈퍼마켓 운영하면서 자식들 대학 보내 변호사 의사 과학자 만든 건 이미 뉴스가 아니고, 나는 교육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한국인과 한국을 이해하고 있다.”

―그게 무슨 뜻인가.

“한국인들의 교육은 보다 정확히 말하면 교육을 통한 성공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선 나머지 가족들은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는 게 한인들의 생각이다. 물론 경이로운 성과를 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다.

미국에선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 등 군 사관학교에 가려면 지역구 의원의 지명 절차가 필요하다. ‘제복 입은 직업(men in uniform)’에 대한 미국 사회의 엄격한 기준 때문이다. 지난해 내 지역구에서 심사를 거쳐 37명이 내 지명을 받아 사관학교에 입학했는데 이 중 25%인 9명이 한국인이었다. 그것도 11명이 지원해서 9명이 입학했으니 무려 82%가 성공한 거다! 내 지역구 내 한인 인구가 전체의 10%가 채 안 되는데 이게 말이 되나(웃음). 또 얼마 전엔 지역구 내 한 고교 우등생 목록을 보니까 상당수 성(last name)이 김(Kim) 이(Lee) 박(Park) 정(Chung)이더라.”


교육 넘어 다원적인 삶 추구 필요


―칭찬할 일이네. 아메리칸 드림의 연장선상에서.

“엄청난 성과와 동시에 아쉬운 점은, 특히 한국 어머니들을 보면 ‘공부 잘해라’가 아니라 ‘공부 못해서 우리 가족 창피하게 만들지 마라’는 정서가 강하다는 것이다. 내가 한국을 20여 차례 방문하며 지나친 교육열로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멀리 갈 것도 없이 여기 한인 청소년들이 그렇다. 미국인 입장에서 이해는 되면서도 좀 걱정스러운 측면이 있다. 한국이 이룬 기적적인 압축 성장의 신화가 교육열에 투영돼 있겠지만 보다 다원적인 삶을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 확실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

미국 국회의원의 날카로운 지적에 한국에 대기업은 많지만 애플, 구글 같은 혁신적 기업 모델이 아직 나오지 않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절감했다. 한국 밖에서 한국이 더 잘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교육 이야기를 더 이어갔다.

―그런 ‘교육 프레임 분석’을 한국의 다른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나.

“한인들의 교육열을 확장해서 보면 어떤 제도(institution)에 대한 무조건적 믿음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한다. 아시아와 미국은 서로 전통이 달라서 그렇겠지만. 예를 들어 지역구 내 한인 사업가들은 무슨 문제가 있으면 국회의원인 나에게 해결해 달라고 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나도 최선을 다해 해결하려 노력하고 자주 성과를 낸다. 하지만 제도가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줄 수는 없다. 그래서 나도 종종 ‘이것 보세요(Look), 내가 못하는 것도 있고 잘 모르는 것도 있어요’라고 양해를 구하기도 한다(웃음). 시민들은 제도를 최대한 활용해야겠지만 결국은 제 영역에서 책임지고 헤쳐 가야 하는 것 아니겠나. 물론 나처럼 공공분야에 있는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시민들을 지원해야겠지만 말이다.”

그의 말을 들으니 대형 사건이 터지면 일단 국가와 정부 탓을 하느라 정작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고 시정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화제를 한국과 관련 있는 국제 이슈로 돌려 봤다. 그는 미 연방하원 외교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베, 진정성 있는 ‘위안부’ 사과해야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놓고 한일 관계가 2차대전 후 최악이다. 워싱턴에선 ‘일본도 잘못했지만, 한국도 이제 그만 문제 삼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문제는 미국인 입장에선 참으로 쉽지 않다. 미국 입장에선 한국도 중요하지만 동아시아 전략적 요충지로서 일본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선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이 잘못했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올해 종전 70주년을 맞아 진정성 있는 사과(sincere apology)와 역사에 대한 진솔한 인식(candid acknowledgement of history)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거다.

딱 1년 전에 일본에 가서 아베 총리 등을 만난 적이 있는데 한 관계자가 나에게 ‘한국 사람들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좀 성숙해져야 한다. 우린 이미 돈(배상금)도 주고 할 거 다 했다’고 말하더라. 그래서 내가 ‘한일 관계가 이 지경까지 된 것은 일본의 바로 그런 태도 때문이다. 이 문제마저 무슨 매춘부와 흥정하듯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흥분한 적이 있다.

―아베 총리가 4월경 워싱턴을 방문해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을 추진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진전된 의견 표명 없이 워싱턴 한복판에서 연설하면 안 된다는 여론도 있다.

“한국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과거사 문제에서 진전을 이뤄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이게 워싱턴 방문의 전제 조건이 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나.”


美, 한국 신경쓰느라 北美교착 못풀어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관계가 답답하다는 지적이 많은데….

“(외교위에 있는) 나는 오죽하겠나.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북-미 관계에 진전이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한국을 신경 쓰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 많은 의원들은 북한이 어떻게 나오든지 간에 필요하면 미국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 같은) 독재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결국 힘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북한이 핵실험 등 어떤 짓을 할지 모르고 이는 고스란히 한반도의 긴장감 고조로 이어진다. 그러니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인들의 정치부터 교육 문제, 대북 문제까지 이야기하다 보니 예정됐던 인터뷰 시간(30분)을 훌쩍 넘겼다. 한인 인구가 많은 코널리 의원의 지역구에서는 한국 영화 ‘국제시장’이 절찬리에 상영 중이다. “이 영화를 봤느냐”는 질문을 꺼내려 하자 집무실 밖에서 그를 기다리는 손님들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는 인터뷰를 마무리해야겠다며 갑자기 기자에게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뭐냐”고 물었다.

―불고기를 가장 좋아한다.


“그러냐? 나는 소주가 가장 좋다. 한국을 솔직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깨끗하고 화끈하고. 마실 땐 좋은데 다음 날 아침 머리가 깨질 듯 아픈 게 문제지만(웃음). 언제 나랑 삼겹살(pork belly)에 소주나 한잔 하자.”

미국에서 미국인에게 맥주도 아니고 “소주 한잔 하자”는 한국식 인사를 받은 건 처음이었다. 기자는 코널리 의원에게 “원하면 한국식 폭탄주 문화를 알려주겠다”는 인사와 함께 다음 만남을 기약한 뒤 헤어졌다.

< 제리 코널리 의원은 >

▽1950년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출생
▽1971년 일리노이 주 메리놀칼리지 졸업
▽1979년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 졸업
▽1980∼89년 상원 외교위원회 연구위원 및 전문위원
▽1990∼97년 비영리 연구기관 ‘SRI 인터내셔널’ 워싱턴지사 부사장
▽1995∼2008년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카운티 감독위원회 위원 및 위원장
▽2009년∼현재 버지니아 주 11선거구 연방하원의원

인터뷰=이승헌 워싱턴 특파원 ddr@donga.com
#제리 코널리#지한파#하원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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