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성 작가 “팩트 바탕한 스토리로 일본군위안부 고통 세계에 알릴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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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佛 앙굴렘 만화축제에 위안부 소재 만화 출품 김광성 작가

김광성 씨는 6월 일본군위안부 문제 만화를 그릴 작가로 선정됐을 당시 “위안부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기 전이고 위안부 문제 관련 지식도 부족하다. 말 한마디가 그분들께 누가 될까 조심스럽다”며 정식 인터뷰를 고사했었다. 그의 말에선 위안부 문제를 세계에 알릴 중책을 맡은 사람의 책임감이 느껴졌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김광성 씨는 6월 일본군위안부 문제 만화를 그릴 작가로 선정됐을 당시 “위안부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기 전이고 위안부 문제 관련 지식도 부족하다. 말 한마디가 그분들께 누가 될까 조심스럽다”며 정식 인터뷰를 고사했었다. 그의 말에선 위안부 문제를 세계에 알릴 중책을 맡은 사람의 책임감이 느껴졌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 내년 1월 세계 최대 만화 축제인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 ‘앙굴렘, 일본군위안부 특별전’(가칭)이 열리고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우리 만화가 출품된다. 전 세계 기자 800여 명, 작가 1600여 명, 관람객 25만 명 앞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한을 알리고 사과를 거부하는 일본을 고발하는 ‘역사적 증인’ 역할을 할 만화다. 필리프 라보 앙굴렘 시장도 지난달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역사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일이다. 만화로 위안부 문제를 알린다면 많은 서양인이 알게 될 것이다”라며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

11일 인천 서구 가좌동의 한 아파트 작업실에서 한국 만화가들을 대표해 위안부 만화를 그리고 있는 김광성 씨(59)를 만났다. 그는 “내가 그린 만화가 여러 언어로 번역돼 세계인에게 위안부 문제를 알린다고 하니 어깨가 무겁다. 그들이 만화를 읽고 할머니들의 고통에 공감하도록 열심히 그리겠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는 5월 위안부 문제를 여성에 대한 성폭력 범죄, 인류 인권 침해 행위로 보고 위안부를 다룬 만화로 국제사회에 알리기로 결정했다. 여성부의 제의를 받은 한국만화연합은 여러 명의 작가 후보를 두고 고심 끝에 김 씨를 뽑았다. 김 씨가 한국인 가미카제 특공대를 그린 ‘순간에 지다’(2003년)로 제13회 대한민국만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당시 시대 상황을 담은 만화를 많이 그려 왔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한국만화스토리작가협회 부회장이자 ‘오늘은 마요일’(1996)과 ‘총수’(2009)의 스토리를 쓴 정기영 작가가 맡았다.

만화 속 주인공 하금순 할머니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 만화는 100쪽 분량으로 제작돼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 출품된다. 김광성 씨 제공
만화 속 주인공 하금순 할머니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 만화는 100쪽 분량으로 제작돼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 출품된다. 김광성 씨 제공
만화 주인공은 열여섯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가 평생 상처를 가슴 속에만 품어 온 하금순 할머니(가상 인물)다. 할머니가 우연히 주한 일본대사관을 지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참가한 동료를 만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김 씨는 화선지 위에 붓펜으로 선을 그린 다음 수채물감으로 칠하는 방식으로 만화를 그리고 있다. 만화라지만 한 장 한 장이 한국화 맛을 살린 ‘작품’이다. 김 씨는 “켄트지 위에 같은 방식으로 그려 봤는데, 붓으로 매란국죽 치는 맛을 살리는 화선지가 더 낫더라. 외국인들에게 위안부 문제와 함께 붓으로 그리는 동양 만화도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10월 완성을 앞두고 그는 하루 14시간씩 작업하고 있다. 그의 작업실은 그림 도구만 없다면 역사가의 서재를 떠올리게 했다. 작업실 책상과 책장에는 할머니의 구술을 담은 책부터 일제강점기를 다룬 학술연구서적까지 그의 손때를 탄 책이 가득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관련 책은 모조리 다 사서 읽다시피 했다. 팩트(사실)에 바탕을 둔 만화를 그리는 일이 몸에 배어 있다”고 했다. 구술자료를 읽으며 분노와 아픔에 떨기도 했다. “작가는 주인공 마음과 동화되는데 할머니들이 입에 담지 못할 상처를 당한 이야기를 읽으며 끔찍했고 아팠습니다. 그래도 말초적으로 자극하지 않고 담담하게 표현할 겁니다.”

김 씨는 수요시위에 참가하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관계자, 위안부 소녀상을 제작한 김운성 씨도 만났지만 아직 할머니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위안부 문제를 다룬 작가나 감독들이 작품을 끝내고선 매정하게 연락을 끊어 할머니들의 섭섭함이 크다는 얘기를 들었다. 게다가 자신이 남자라는 점도 작용했다. 김 씨는 “할머니들도 제 만화를 읽을 텐데, 그분들을 위로하는 내용도 담았다. 이 만화가 할머니들에게 든든한 힘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안산=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위안부#앙굴렘 만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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