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박희태 의장 돈봉투 총괄책임… 의장지위 고려 불구속 기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22일 03시 00분


■ 현직 입법부 수장 첫 사법처리… 김효재-조정만 수석도


2008년 7·3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당대회 당시 고승덕 의원실에 300만 원이 든 돈봉투 전달을 지시한 총괄책임자, 즉 이 사건의 ‘몸통’은 당 대표 후보였던 박희태 국회의장으로 검찰 수사 결과 확인됐다. 검찰은 당시 박 의장 캠프 상황실장이었던 김효재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돈봉투 전달과 관련한 구체적인 기획과 지시를 했던 것으로 파악했다.

○ 현직 국회의장 처음 기소


검찰 관계자는 21일 “박 의장이 전당대회 직전 개설했던 대출(마이너스) 통장이 고 의원실에 전달됐던 돈봉투 속 300만 원의 출처로 확인됐다”며 “돈봉투 살포로 유일하게 덕을 본 박 의장이 이번 사건의 총괄책임자”라고 밝혔다. 또 “박 의장의 혐의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거들이 충분해 공소 유지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검찰은 박 의장이 3부 요인이자 의장직 사퇴 의사를 밝힌 점 등을 고려해 불구속 기소를 결정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는 이날 박 의장과 김 전 수석, 캠프 재정 책임자였던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을 정당법 위반 혐의 공범으로 불구속 기소하는 내용을 담은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로써 지난달 6일 시작된 수사가 46일 만에 마무리됐다. 현직 국회의장의 기소는 헌정 사상 처음이다. 1997년 한보사건 당시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날 검찰은 박 의장의 비서였던 고명진 씨를 기소 유예했다. 돈봉투를 전달한 캠프 관계자 곽모 씨와 이봉건 국회의장 정무수석비서관은 불입건 처리했다.

○ 1억5000만 원의 용처 의혹은 남아


검찰은 박 의장이 개설했던 대출 통장에서 캠프 직원이 전당대회 이틀 전인 2008년 7월 1일 1억 원, 2일 5000만 원을 각각 인출한 사실을 밝혀냈다. 고 의원의 진술대로 돈다발을 묶는 데 사용했다는 하나은행 띠지가 있었다는 자료도 확보했다. 그러나 박 의장은 19일 검찰 공관 방문 조사에서 “돈은 모두 전당대회 당일 이벤트(축하행사) 비용 등에 썼다”고 관련 혐의를 부인했다. 돈봉투 전달자로 지목된 곽 씨도 “고 의원에게 돈봉투를 전달한 기억이 없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참고인 진술과 정황 증거 등으로 박 의장이 돈봉투 사건을 직접 주도했다는 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안병용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구속 기소)이 구의원들에게 2000만 원을 돌리라고 지시한 혐의는 박 의장과 김 전 수석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구의원 중 한 명인 김모 씨가 “안 위원장과 돈봉투를 받는 자리에 김 전 수석이 있었다”고 진술했지만 이후 진술이 바뀐 것으로 확인됐다.

○ 수사 미진에 형평성 논란도

돈봉투 사건의 실무자인 안 위원장이 구속 기소된 것에 비해 검찰이 ‘윗선’이라고 밝힌 박 의장과 김 전 수석을 불구속 기소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검찰은 “돈봉투 살포가 적극적인 매표 행위도 아니었고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이유로 구속까지 하는 것은 지나칠 수 있다는 의견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의장이 1억5000만 원을 조성했다는 것을 밝혀내고도 고 의원 이외의 다른 의원에게 돈봉투를 전달한 의혹에 대해선 밝혀내지 못해 일각에서는 “수사가 미진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돈봉투가 다른 의원실에 뿌려졌을 정황 증거와 진술이 나왔음에도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찰 일각에선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박 의장 주변에 대한 계좌추적을 좀 더 강도 높게 계속할 수 있었다면 박 의장의 자백 등 다른 결과를 얻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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