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 연쇄살인]대낮에 버젓이…살인을 위한 살인

  • 입력 2004년 7월 18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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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부유층과 여성에 대해 막연한 적개심을 갖고 있던 연쇄살인범 유영철씨는 지난해 9월 출소 직후부터 마구잡이로 범행 대상을 고른 뒤 잔혹하게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또 살인용 둔기를 직접 제작하고 지능적으로 살인을 저질러 경찰 수사를 11개월 이상 따돌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

▼일주일 간격 살인… 2주새 4명 피해도▼

유씨는 경찰에서 교도소 수감 중이던 2002년 5월경 일방적으로 이혼을 당했을 때 아내를 살해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출소 직후 “11세짜리 아들 때문에 도저히 죽일 수 없다”며 살해 결심을 포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부터 신세 한탄을 하던 유씨는 일단 부유층을 범행 대상으로 골랐다. 부유층 주택을 선택한 뒤 주로 인적이 드문 낮시간에 침입했다. 집 안에 누가 사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또 범행현장 주변에 널려 있던 현금도 그냥 지나쳐 ‘살인을 위한 살인’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첫 범행은 출소 13일 만인 지난해 9월 24일 오전. 유씨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단독주택의 높이 1.2m 담을 뛰어넘은 뒤 안방에 있던 모대학 명예교수 노부부를 잔혹하게 살해했다. 20여일이 지난 10월에는 일주일 간격으로 종로구 구기동과 강남구 삼성동의 단독주택에서 살인행각을 이어 갔다. 또 11월 18일 종로구 혜화동에서 파출부 등 2명을 살해했다.

유씨는 3월 중순부터 출장마사지사나 전화방 도우미들을 범행대상으로 삼으면서 처음 대면했을 때는 무척 친절하게 대해 주며 환심을 샀다. 그러나 이후 “업주를 거치지 말고 직접 만나면 서로 좋은 일 아니냐”며 마사지사를 집으로 유인해 살해했다.

보증금 400만원과 월세 35만원짜리 오피스텔에서 살던 유씨는 생활비와 마사지 비용 등을 마련하기 위해 경찰 신분증을 직접 위조한 뒤 이를 이용해 불법비디오 복제업자나 윤락업주를 협박해 돈을 뜯어낸 것으로 밝혀졌다.

▼실종 마사지사 업소주인 제보로 덜미▼

지난해 말 부유층 주택 연쇄살인사건 현장에서 동일한 신발 흔적이 발견되면서 경찰은 처음으로 동일범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때부터 경찰은 이 신발을 구입한 사람을 찾기 위해 경찰 261명을 투입하고 신용카드 사용명세 등을 철저히 조사했다. 신발 구입자 가운데 전과자가 있을 경우 범인이 의외로 쉽게 밝혀질 수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

그러나 유씨는 이 신발을 현금으로 구입해 경찰이 헛걸음만 하게 만들었다. 경찰은 이 밖에도 시내버스 36회선, 지하철 폐쇄회로TV, 전화통화 기록 34만회선을 뒤졌지만 용의자조차 찾지 못했다.

기나긴 살인 행각의 꼬리가 잡힌 것은 이달 초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보도방에서 7월 1, 3, 9, 13일 등 불과 2주일 사이에 출장마사지사 4명이 한꺼번에 사라지면서부터.

이를 수상하게 여긴 업주가 경찰에 신고했고 유씨가 14일 이 업소로 또다시 출장마사지사를 부르자 경찰은 유씨를 집 근처인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으로 유인해 15일 오전 4시30분경 노고산동 노상에서 검거했다.

▼4개월간 행적 묘연… 추가 범행 의혹▼

유씨는 검거 직후 22건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했다가 이후 횡설수설하는 등 수사팀을 속였다. 그러나 유씨는 도주했다가 12시간 만에 다시 잡히면서 태도가 급변했다.

경찰 관계자는 “유씨가 다시 붙잡히자 자포자기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씨는 신사동 노교수 부부 살해현장에 들렀을 때 동행한 경찰에게 “초동수사를 제대로 했다면 나를 금방 잡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훈계까지 했다. 유씨는 “안방에 흉기를 놓고 온 사실을 뒤늦게 알고 되돌아가 혼신의 힘을 다해 방문을 차는 바람에 다리털이 바닥에 떨어졌을 텐데 못 찾았느냐”고 묻기도 했다.

유씨는 또 경찰이 살인사건을 하나씩 해결해 내자 웃으면서 “내 말에 신빙성이 있지 않느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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