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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동아일보를 통해 본 대한민국 근현대사]<16>한국 현대문학 토대 닦은 신춘문예

입력 2010-10-25 03:00업데이트 2010-11-2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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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김동리-정비석-서정주 문단의 세 거목 동반 등단 《창간과 함께 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의 3대 사시를 내걸었던 동아일보의 90년은 민족 문화역량 제고와 육성을 위한 노력의 90년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부터 신춘문예로 대표되는 각종 문예공모로 민족문예 부흥과 인재 발굴을 함께 꾀했으며 광복 후에는 동아음악콩쿠르와 동아무용콩쿠르, 동아연극상 등을 창설해 문화계 전 분야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1984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1988년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 첫 내한공연 등 세계 정상급 예술단체의 방한도 이 같은 노력의 일환이었다.》

“엇더케 하여 나가는지는 장차 사실로써 보여들이려 하거니와 위선 아래의 규뎡(규정)으로 일반 신진작가의 작품을 모집하오니 우리의 시험을 도와주시려는 유지는 만히 투고하여 이 세가지 란으로 하여금 금상첨화의 꼿밧을 이루게 하여 주시읍.”

동아일보 1925년 1월 2일자 2면에 난 신춘문예 공모 사고다. 동아일보의 신춘문예 사업을 주도한 인물은 1924년 취임한 홍명희 주필 겸 편집국장이었다. 후일 역사소설 ‘임꺽정’으로 한국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주인공이다. 신문인으로서 그는 문예작품과 신예 문인의 발굴에 힘을 쏟았으며 ‘현상공모’와 ‘신춘문예 작품 모집’은 이를 위한 역점 사업이었다.

‘현상공모’는 1924년 12월 17일 고전 ‘춘향전’을 현대소설로 개작하는 작품을 공모한다는 내용으로 1등 500원, 2등 200원, 3등 각 100원(3명)의 상금을 내걸었다. 이어서 공고가 난 ‘신춘문예’는 문예계, 부인계, 소년계로 부문을 나누었다. 문예계는 단편소설과 신시(新詩)의 두 항목으로 소설 상금은 1등 50원, 2등 각 25원(2명), 3등 각 10원(5명)이었고, 신시는 1등 10원, 2등 각 5원(2명)이었다. 부인계에서는 가정소설을, 소년계에서는 동화극, 가극, 동요를 모집했다. 3월 2일자에 발표된 당선자 가운데 윤석중(동화극 부문 가작)이 있었다. ‘고추 먹고 맴맴’ ‘낮에 나온 반달’ 등의 동시로 유명한 아동문학가가 그렇게 탄생했다. 동아일보보다 3년 뒤인 1928년부터 조선일보도 신춘문예 공모를 시작했다.

1933년에는 시 부문에 응모한 황순원의 ‘우리의 새 날을 피바다에 떠서’가 가작으로 뽑혔다. 문단활동 초기에 시인으로 활약했던 황순원은 1940년대 이후 소설에 집중했고, ‘독 짓는 늙은이’ ‘목넘이 마을의 개’ 등의 작품을 통해 서정적 아름다움을 갖춘 한국 현대소설의 전범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36년에는 김동리의 단편소설 ‘산화’가 당선작, 정비석의 ‘졸곡제’가 가작으로 선정됐고, 서정주가 ‘벽’으로 시 부문에 당선됐다. 문단의 세 거목이 동아일보를 통해 동시에 문단에 나오게 된 것이다. ‘무녀도’ ‘사반의 십자가’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동리와 ‘귀촉도’ ‘질마재 신화’ 등의 시인 서정주는 토착적이고 민속적인 소재를 현대적 문예 미학으로 수용해 한국문학의 한 획을 그은 문인들로 평가받는다.

일제강점기에는 신춘문예 외에 시시때때로 이어진 단기 현상공모도 문단을 풍요롭게 했다. 1935년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는 동아일보의 농촌계몽운동인 ‘브나로드’ 운동을 소재로 한 심훈의 ‘상록수’가 당선됐다. 이 소설은 같은 해 9월부터 5개월간 동아일보에 연재되며 농촌계몽운동의 열기를 고조시켰다.





동아일보 신춘문예는 광복 이후에도 이어지면서 우리 문단에 역량 있는 신인을 내보내는 중요한 통로로 자리 잡았다. 정진규 오탁번 송기원 남진우 안도현 씨 등이 시로 등단했으며, 현기영 한수산 조성기 함정임 조경란 씨 등 한국 문단의 스타들이 단편소설로 문단에 나왔다.

“그의 오랜 벗이었던 가난과 무명의 시절이 이제 그를 떠나게 될는지는 그의 정진 여하에 달렸지만 우선은 축배를 건네고 볼 차례다.” 동아일보 1979년 1월 1일자 지면에 실린 이문열 씨(62)의 인터뷰 내용이다. 그는 중편 ‘새하곡’으로 그해 처음 만들어진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의 당선자가 됐다. ‘사람의 아들’ ‘황제를 위하여’ ‘금시조’ ‘영웅시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숱한 화제작을 쏟아냄으로써 그의 이름은 한국문학사의 한 장(章)을 차지하게 됐다.

29세에 세상을 떠난 뒤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으로 오래도록 사랑받아온 시인 기형도는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안개’가 당선돼 등단했고, 시인 소설가로 활동한 장정일 씨는 1987년 희곡으로 등단해 다양한 활동 중에도 꾸준히 희곡집을 내면서 희곡에 대한 애정을 보이고 있다.

제1회 동아일보 신춘문예 공고가 나간 뒤 응모된 원고들. 1925년 3월 2일자 지면에 당선자 발표와 함께 투고된 원고 사진이 실렸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제1회 동아일보 신춘문예 공고가 나간 뒤 응모된 원고들. 1925년 3월 2일자 지면에 당선자 발표와 함께 투고된 원고 사진이 실렸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95년 중편 부문에선 은희경 전경린 씨가 동시에 당선돼 한국문학은 재기 많은 여성 작가 둘을 한꺼번에 안았다. 등단 당시 은희경 씨는 36세, 전경린 씨는 33세로 늦은 나이였지만, “아무 인맥도 없는 사람이 무턱대고 할 수 있던”(은희경 씨) 신춘문예라는 제도로 인해 소설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신랄한 시선과 섬세한 문체의 은희경 씨, 여성의 내밀한 심리와 욕망을 잘 드러낸 전경린 씨는 1990년대 이후 잇달아 등장한 여성작가들 중에서도 활약상이 두드러진다.

2000년대 들어서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온 젊은 작가들의 활약이 우뚝하다. 소설가 천운영 윤성희 박주영 김언수 씨 등 주목받는 30대 작가들이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이다.

신춘문예뿐 아니라 1968년부터 시작된 월간지 ‘여성동아’의 장편공모도 역량 있는 여성작가의 등용문 역할을 해왔다. 평범한 주부였던 박완서 씨가 1970년 여성동아 장편공모를 통해 불혹의 나이에 작가로 등단했다. 화가 박수근을 모델로 삼은 소설 ‘나목’이 당선작이었다. 박완서 씨는 이후 ‘엄마의 말뚝’ ‘저문 날의 삽화’ ‘너무도 쓸쓸한 당신’ 등을 통해 6·25전쟁 뒤의 비극과 물질중심주의 풍조 등을 작품화하면서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 잡았다. 여성동아는 이 밖에도 이남희 우애령 송은일 씨 등의 여성 소설가를 발굴해 우리 문단의 작가층을 두껍게 했다.

1980년 동아일보가 창간 60주년을 기념해 실시한 장편소설 공모전도 우리 문단의 기념비적 작품을 배출했다. 당선작은 33세의 여고 국어교사였던 작가 최명희가 응모한 장편소설 ‘혼불’이었다. 당시 제1부가 당선된 ‘혼불’은 1988∼1995년 신동아에 2∼5부가 연재되면서 국내 월간지 최장 연재물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 인촌기념강좌… 세계의 석학-정치인, 지구촌 과제 심도있는 성찰 ▼
인촌상… 24회 걸쳐 한국사회 밝힌 지성 99명의 업적 기려


1992년 9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왼쪽)가 인촌 기념 강좌를 위해 방한해 김상만 당시 동아일보 명예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1992년 9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왼쪽)가 인촌 기념 강좌를 위해 방한해 김상만 당시 동아일보 명예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경성방직과 고려대를 설립한 민족 지도자 인촌 김성수. 그의 업적과 뜻을 기려 1987년 인촌기념강좌와 인촌상이 창설됐다.

인촌기념강좌는 인촌기념회와 고려대가 국내외 저명인사 및 석학을 초빙해 한국을 비롯한 지구촌의 과제를 깊이 있게 성찰하고자 창설했다. 2010년 23회가 열린 이 강좌는 지금까지 영국 총리를 지낸 에드워드 히스와 마거릿 대처, 미국 카터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박사,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 등이 연사로 나서 세계의 현황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했다. 국제 분쟁, 이데올로기의 대립, 세계 평화, 한반도의 통일과 미래 등 광범위한 이슈가 이 강좌에서 다뤄졌고 국내 학계와 지식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1987년 10월 12일, 14일 고려대 강당에서 열린 제1회 강좌에서는 미국 하버드대 교수이자 하버드대 존 페어뱅크 연구소 소장인 로드릭 맥파커 교수가 ‘세계 정치와 중공의 등장’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맥파커 교수는 이 강연에서 “현재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개혁정책은 외부세계의 지원을 많이 받아야 성공할 수 있다”며 “앞으로 중공의 영향력이 동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전역에 더욱 멀리 미칠 것이며 이 같은 중공의 개방정책은 결국 성공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늘날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떠오른 중공의 위상을 정확히 예측한 것이었다.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대처 전 영국 총리는 1992년 제6회 인촌기념강좌에서 이틀에 걸쳐 ‘21세기와 산업민주주의의 미래’ 및 ‘아시아의 경제 정치 전망-일본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강연에서 그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이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각할 것이며, 자유무역만이 최상의 국제협력”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혜안은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이 가장 빠른 회복력을 보이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새천년을 앞둔 1999년 나카소네 전 일본 총리는 제15회 인촌기념강좌에서 ‘20세기와 21세기의 분수령에 서서’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20세기는 과학 발전의 빛나는 세기인 동시에 숱한 전쟁으로 1억 명 이상이 죽어간 비참한 세기였다”며 “21세기는 특히 평화를 위한 국제연대에 세계 각국이 동참하는 세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3월 열린 제23회 인촌기념강좌에서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핵 보유 북한과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북핵 문제의 해결 방안에 대해 “북한이 원하는 것은 주변국이 아닌 미국과의 대화다. 북한은 미국과 직접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촌상은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가 ‘자립강국(自立强國)’과 ‘공선사후(公先私後)’의 신조를 실천했던 인촌 선생의 유지를 잇기 위해 1987년 8월 제정했다. 이에 따라 경방육영회에서 1973년부터 매년 시상했던 인촌문화상은 인촌상에 흡수됐다.

해마다 인촌 선생의 탄생일인 10월 11일에 시상식을 열고 있으며 올해까지 24회에 걸쳐 99명의 수상자를 냈다. 제1회 수상자로는 월간 ‘씨알의 소리’ 주간을 지낸 함석헌 옹, 재단법인 꽃동네, 황순원 소설가, 이호왕 고려대 의대 교수 등이 선정됐다. 박경리 소설가, 피천득 시인,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 서남표 KAIST 총장 등도 역대 인촌상 수상자다.

인촌상 운영위원회(위원장 조완규)는 교육, 언론출판, 산업기술, 인문사회문학, 자연과학, 공공봉사 등 6개 부문에서 외부 심사위원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수상자를 가리고 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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