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즐거움 20선]<12>유럽의 걷고 싶은 길

  • 입력 2009년 8월 12일 02시 50분


◇유럽의 걷고 싶은 길/김남희 지음/미래인

《걸을 때 세계와 나 사이의 거리는 좁아진다. 걷는 동안 나는 세계의 관찰자가 아니라 세상의 일부가 된다. 풍경 속으로 들어가 풍경이 된다. 걸을 때 내 몸은 진화한다. 걷다 보면 발이 절로 나아가는 순간이 온다. 내 의지로 몸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몸이 나를 이끌고 간다…몸과 마음, 육체와 영혼이 하나가 되어 조화롭다.》

공항서 마주칠 첫 남자와 결혼하리

저자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걸어서 세계를 여행하며 책을 써왔다. 책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으로 혼자 떠나기를 두려워하는 싱글 여행족(族)에게 용기를 준 데 이어 ‘유럽의 걷고 싶은 길’을 통해서는 여행을 통해 겨우 배운 나를 긍정하고 타인을 긍정하고 현재를 긍정하는 법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저자는 2007년 한 해 잠시 떠돌이 생활을 멈추고 스페인에 머물렀다. 스페인어 공부가 목적이었지만 공부만 하다보니 금세 발가락이 간질간질했다. 결국 다시 짐을 꾸려 석 달간 유럽 여행을 떠났다. 이 책에는 그가 이탈리아의 토스카나와 돌로미테, 프랑스의 샤모니와 몽생미셸, 아일랜드의 위클로 웨이 등 유럽의 유명 도보 여행지를 걸은 기록이 담겨 있다.

부푼 마음에 여행을 떠났지만 대부분 가족끼리 여행하는 유럽에서 나 홀로 여행자가 겪는 외로움은 컸다. 그는 ‘인도와 네팔에서, 중동에서, 아프리카에서 나는 늘 혼자 여행하는 아시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는 했는데, 이곳에서는 누구도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라고 썼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아일랜드의 위클로 웨이를 걷는 중에는 ‘돌아가는 길에 공항에서 마주치는 첫 번째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선언이라도 하고 싶었다’고 한다.

타고난 ‘길치’인 탓에 수시로 길을 잃었다. 스페인의 카필레리야에 가기 위해 수십 번 길을 물었지만 막상 도착한 곳은 카필레리야가 아니라 카필레이라였다. 그에게 차를 태워주겠다는 운전자도 있었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걷기 여행’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가 계속 여행을 떠나는 것은 여행지의 경이로운 풍경, 맛있는 현지 음식, 여행지에서 마주치는 뜻밖의 벗들 때문이다.

저자는 이탈리아의 돌로미테 산자락을 트레킹하며 산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트레치메를 봤을 때의 경이로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트레치메의 저녁 얼굴을 만나기 위해 테라스로 나갔다. 듣던 대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해가 저무는 기울기에 따라 바위의 색깔이 점차 변해간다. 점점 더 붉게 달아올라 마침내는 장미꽃 봉오리로 피어난다.’

스페인의 안달루시아의 숙소에서는 정원에서 갓 딴 야채로 만든 신선한 음식을 대접받았다. 레몬 후추 소금 드레싱을 뿌리고 고수를 얹은 샐러드, 마늘과 매운 고추를 얹어 구운 가지와 토마토 요리,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를 넣어 볶아 해바라기 씨를 뿌린 밥, 레몬 소스를 넣어 볶은 오징어, 수박 요구르트와 과일 셔벗, 이 지역에서 만든 와인이 저녁 한 끼였다. 정원에서 저녁을 먹은 뒤 촛불을 켜놓고 집 주인 부부와 이야기를 나눴다. 저자는 이를 ‘마법 같은 시간’으로 표현했다.

홀로 걷는 여행은 외롭지만 그의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스코틀랜드 웨스트 하일랜드 웨이를 걸은 뒤 그는 이렇게 적었다.

‘끊임없이 길을 잃고, 반복적으로 위축되고, 자주 외로움에 흔들리면서도 계속 걷는 나. 마침내는 공포에 덜미를 잡히는 신세까지 됐지만 그래도 내일이면 다시 길 위에 설 것을 믿는다.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걷고 또 걷는 나. 어제의 나에 비해 얼마나 강해졌는지.’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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