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놀이와 예술’]<13>불꽃놀이

  • 입력 2004년 9월 13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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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종이로 만든 호수위의 불꽃일본의 ‘길 위의 화가’ 야마시타 기요시의 ‘스와호의 하나비’. 색종이를 하나하나 오려 붙여서 호수 위 불꽃놀이 장면을 재구성했다. -사진제공 진중권
색종이로 만든 호수위의 불꽃
일본의 ‘길 위의 화가’ 야마시타 기요시의 ‘스와호의 하나비’. 색종이를 하나하나 오려 붙여서 호수 위 불꽃놀이 장면을 재구성했다. -사진제공 진중권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 처음 갖게 된 기억이 있다. 내게 그것은 김포공항 위의 밤하늘에 터지던 불꽃놀이의 영상이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무슨 계기로 불꽃놀이를 했을까? 기록을 뒤져보니 당시에 미국의 린든 존슨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다. 내가 본 꽃불은 그를 위한 것이었을 게다. 1966년 가을에 본 영상이 아직도 남아 있으니, 네 살 꼬마의 눈에 불로 만든 꽃이 퍽 인상적이었나 보다.

불꽃놀이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당연히 화약을 발명한 문명에서 시작되었을 게다. 서양에 ‘연금술’이 있다면, 중국에는 연단술(煉丹術)이 있었다. 서양의 화학이 금을 만드는 꿈에서 태어났듯이, 중국의 화약은 불로장생의 환약을 만들려는 꿈에서 탄생했다. 불놀이는 7세기 수 양제 시절부터 있었으나, 본격적인 불꽃놀이가 시작된 것은 화약 제조술이 발전하는 13세기에 이르러서라고 한다.

우리 조상도 불꽃놀이를 했을까? 화통도감을 설치해 화약을 독자적으로 제조한 것이 1377년, 찾아보니 그때를 전후하여 고려의 궁정에서는 화산희(火山戱)라는 이름의 불꽃놀이가 행해졌다. 화약무기가 발달했던 조선 태종 때에는 불꽃놀이가 성행하여 아예 연례행사가 되기도 했다. 세종 때에는 화약의 발달이 외려 중국을 능가하여,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불꽃놀이가 금지되기도 했단다.

● 동서양의 불꽃놀이

물고기와 불꽃이 만나면…
49세에 세상을 떠난 야마시타 기요시는 불꽃놀이에 대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도미와 하나비’도 그중의 하나다.

유럽 사람들도 설날에 불꽃놀이를 한다. 12월 31일이면 가족이나 친구끼리 모여앉아 자정 10초 전부터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열! 아홉! 여덟!…셋! 둘! 하나!” 카운트가 끝나고 마침내 새해가 시작되면, 축하의 샴페인을 터뜨리고 거리로 쏟아져 나가 일제히 폭죽을 쏘아대기 시작한다. 하늘에는 화려한 불꽃, 거리에는 자욱한 연기. 유럽의 새해는 이렇게 전쟁터 같은 어수선함으로 시작한다.

중국의 불꽃놀이는 13세기 말쯤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유입되고, 15세기경에는 유럽의 거의 모든 곳에 전파된다. 유럽의 왕궁에서 불꽃놀이는 중요한 행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 그러고 보니 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1749)가 떠오른다. 이 곡은 영국과 프랑스의 화약(和約)을 기념하는 불꽃놀이 축제를 위해 써졌는데, 이 곡이 초연되던 날, 화약이 미리 터져 불이 나는 바람에 정작 불꽃놀이는 없었다고 한다.

‘불꽃놀이’ 하면 일본의 ‘하나비(花火)’를 빠뜨릴 수 없다. 일본의 하나비는 영국에서 건너온 것이다. 1613년 영국 왕 제임스 1세의 사신이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앞에서 불꽃놀이를 시연한 적이 있는데, 이 일을 계기로 일본에서도 본격적으로 불꽃놀이를 하게 된다. 서양의 폭죽이 길쭉한 원통형이라면, 일본의 것은 둥근 구형이다. ‘다마(玉)’라 부르는 일본식 폭죽에는 직경이 1m가 넘는 것도 있다고 한다.

● 영화 하나비와 불꽃놀이의 예술세계

사인펜을 찍어서…
영화 ‘하나비’에 등장하는 사인펜 점묘화에 영향을 준 야마시타 기요시의 ‘시로야마에서 본 사쿠라지마’. 사인펜을 찍어서 그린 이 작품 속 사쿠라지마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가미카제 자살특공대가 출동하면서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가는 섬으로 유명하다.

‘하나비’(1997)라는 영화가 있다. 기타노 다케시(北野武) 감독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에 최초로 개봉된 일본영화라고 한다. 이 영화를 보면 일본인들이 왜 하나비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딸을 잃고 아내마저 잃게 된 한 형사가 은행을 털어 주위를 깔끔하게 챙기고, 빚 독촉을 하는 야쿠자를 멋지게 살해한 후, 아내와 더불어 우아하게 자살한다는 얘기다. 폭력과 자결의 미학이 섬뜩하도록 아름다운데, 여기서 ‘하나비’는 존재의 궁지에서 미학적 해결을 찾는 일본식 유미주의의 상징이 된다.

꽃불은 황홀하다. 세상의 그 어떤 색깔도 꽃불의 빛깔에 비할 수 없다. 꽃불은 허무하다.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다움도 이렇게 짧을 수 없다. 짧은 순간의 황홀함, 이 농축된 강렬함이 꽃불의 매력이다. 하늘에는 황홀하게 스러지는 ‘하나비’가 있고, 땅위에는 일제히 피었다가 일제히 져버리는 ‘사쿠라’가 있고, 인간들 틈에는 제 몸을 불살라 짧은 삶을 살다 가는 사무라이가 있다. 하나비, 사쿠라, 사무라이는 일본식 존재미학의 정점이다.

위험한 아름다움이라고 할까? 하나비 속에서 ‘위험함’과 ‘아름다움’은 하나가 된다. 꽃불은 전쟁과 똑같은 냄새를 풍긴다. 꽃불은 축제의 놀이일 수도 있지만, 전쟁의 무기일 수도 있다. 가령 여름밤의 하늘을 수놓은 축제의 꽃불과, 대공포의 연화(煙花)를 헤치며 벚꽃처럼 떨어지는 가미카제는 서로 닮았다. 도덕적 판단을 접고, 순수 미학적으로만 보라. 놀이와 전쟁, 솔직히 어느 쪽이 더 강렬한 감동을 주는가?

● 불꽃놀이의 화가 야마시타 기요시(山下淸)

직경 1m짜리 폭죽이 터지면…
야마시타 기요시의 ‘산샤쿠다마’. 직경 1m짜리 폭죽이 수십m 높이 공중에서 터지는 불꽃놀이의 장관을 담았다.

영화 ‘하나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주인공의 동료로 하반신 불구가 된 호리베 형사가 사인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었다. 사인펜으로 무슨 그림을 그리나 했는데, 웬걸, 결과는 놀라웠다. 색색의 사인펜으로 화폭에 무수한 점을 찍어 점묘(點描)를 한 것이다.

이렇게 완성한 그림은 마치 프랑스의 신(新)인상파 화가 조르주 쇠라의 작품처럼 보인다. 기발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감독은 이 아이디어를 대체 어디서 얻었을까?

규슈(九州)의 휴양지에서 우연히 들른 전시회에서 그 해답을 얻었다. 사인펜 점묘는 “일본의 고흐”라 불리는 야마시타 기요시가 개발한 기법이다. 마침 국내의 어느 위성방송에서 ‘길 위의 화가’라는 제목으로 그에 관한 드라마를 내보내는 모양이다. 고흐가 정신착란에 시달렸다면, 기요시는 지능이 떨어지는 저능아였다. 이 천재적 저능아는 1940년 돌연 ‘길 위의 화가’가 돼 장장 16년간 전국을 방랑하며 살았다. 머물다가 떠날 때면 꼭 그림을 그려 남겨두었다고 한다.

그의 대표작은 역시 하나비 그림이다. 1968년 지인의 초청으로 나가노(長野) 현의 어느 별장에 체류하던 그는 거기서 불꽃놀이를 구경하고 많은 작품을 남겼다. 전시회에 걸린 하나비 그림 중의 하나에는 ‘산샤쿠다마(花火三尺玉)’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삼척(三尺)이면 대충 1m. 직경 1m짜리 거대한 다마가 수십m의 상공으로 치솟아올라 작열하는 장관이 이 천덕꾸러기에게 깊은 인상을 준 모양이다.

도쿄(東京)로 돌아와 살던 그는 3년 후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다. 이번에는 돌아올 수 없는 방랑을 떠나며,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올해의 하나비는 어디로 갈까나….”

진중권 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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