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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놀이와 예술]<14>거울 반사 이용한 만화경

입력 2004-09-20 18:23업데이트 2009-10-0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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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이 빚은 불꽃놀이?
최근 제작되는 만화경 속 풍경. 30년 전부터 모양과 색채가 환상적인 작품들이 만들어지면서 ‘만화경 르네상스’가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 진중권씨
내 만화경(萬華鏡)은 조잡했다. 거울 세 장을 삼각기둥이 되도록 맞붙이고, 그 안에 조그맣게 오린 색종이 조각들을 집어넣은 것이었다. 60도-60도-60도의 ‘쓰리 미러 시스템(three mirror system)’이었으니, 정삼각형이 세 방향으로 무한히 퍼지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오래 전이라 그 영상이 머리에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대학 다닐 때던가? 러시아의 화가 칸딘스키의 작품을 처음 보고 만화경 속의 색종이를 떠올렸던 기억은 난다.

일본의 어느 도시에서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만화경을 보았다. 일부러 짬을 내 찾아간 만화경박물관은 폐교된 산골 초등학교만큼이나 누추했다. 그 허름한 건물의 방 한 칸에 세계의 곳곳에서 모은 만화경들이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었다. 모양도, 색채도, 종류도 갖가지였다. 별 기대 없이 만화경을 들여다보고는 환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와우! 만화경의 내부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어린 시절에 보던 만화경과는 수준이 달랐다.

최근 30여 년간 만화경의 기술에 엄청난 발전이 있었다. 덕분에 만화경이 과거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워졌다. 최근에 다시 만화경 르네상스가 일어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행여 만화경을 애들 장난감 정도로 우습게 여긴다면, 오산이다. 요즘 나온 만화경 구멍에 직접 눈을 대보면, 아마 그 화려한 아름다움에 다들 놀랄 것이다. 만화경을 서양에서는 ‘칼레이도스코프’라 부른다. “아름다운 볼거리”라는 뜻이다. 이 아름다움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 19세기 과학의 딸, 만화경

현미경같은 만화경
사토 모토히로가 제작한 만화경 ‘바다의 꽃’(유리). 그는 센다이미술관에서 우연히 만화경을 보고 아예 만화경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 아름다움은 거울의 반사를 이용해 만드는 ‘대칭(symmetry)’의 효과에서 온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물의 아름다움은 대칭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매끄럽게 다듬은 석회암의 석판을 여러 각도로 세워놓고 그 안에 춤추는 무희를 들여보내 실물 만화경을 즐겼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는 “만 송이의 꽃이 피어나는 통”이라는 뜻의 ‘완후아통(萬花筒)’이라는 물건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를 만화경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보는 만화경은 데이비드 브루스터 경(卿)이 19세기에 만든 것이다. 편광에 관한 ‘브루스터의 법칙’으로 유명한 이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는 조명기구를 개선하고, 입체경을 개량하는 등 광학기기의 개발에도 관심이 많았다. 만화경의 원리를 밝힌 그의 논문 ‘만화경론’(1819년)이 발표되자, 이 물건은 삽시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세상에 나온 지 3년 후에는 이미 지구 건너편의 일본 땅에서도 제작되고 있었다.

원래 브루스터는 거울의 반사를 수학적, 광학적 관점에서 탐구하려는 학문적 동기에서 만화경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딱딱한 수학이나 광학보다는 만화경이 연출하는 화려한 미적 효과에 더 마음이 끌렸다. 덕분에 오늘날 만화경은 아예 놀이도구가 돼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현미경이나 망원경과는 정 반대의 길을 걸은 셈이다. 다른 광학기구들은 본디 장난감으로 제작됐다가 후에 과학적 도구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 수학적 몽환의 대칭미

만화경은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하나는 차가운 과학의 얼굴이다. 만화경은 철(鐵)의 필연성을 따른다. 그 속의 문양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수학적으로 증식되고, 기하학적으로 산포된다. 다른 하나는 포근한 동화의 얼굴이다. 만화경은 집시의 요술구슬이다.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로 데려간 구멍처럼 그것은 보는 이를 순식간에 환상의 세계로 데려간다. 엄격한 수학적 질서가 만들어내는 몽환적 효과. 이 패러독스가 바로 만화경의 매력이다.

만화경의 예술은 기술의 산물이다. 만화경에서 예술과 기술의 구별은 사라진다. 그것의 아름다움은 ‘대칭’에 있으나, 그 ‘대칭’을 만드는 게 예술가의 손이 아니라 마주보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화경을 만들기 위해 꼭 거울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칭’은 수학적 현상이므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도 얼마든지 연출할 수 있다. 모니터 위에 실현된 대칭구조. 이 디지털 만화경도 아날로그 못지않게 환상적이다.

현대예술에 ‘옵티컬 아트(optical art)’라는 흐름이 있다. 형태와 색채의 장력(張力)을 이용해 관찰자의 눈에 반응을 유발하는 예술인데, 혀가 게으른 이들은 이를 줄여 ‘옵아트’라 부른다. 옵아트는 보는 이를 착시에 빠뜨리거나 그에게 현기증을 일으킨다. 이 시각적 도발을 위해 옵아트의 화가들은 단순한 형태를 사방으로 복제해 끝없이 퍼져가는 프랙털(임의의 한 부분이 전체 형태와 닮은 도형)의 대칭구조를 만들어 나간다. 그런데 이 방식, 어디서 본 듯하지 않은가?

● 착시의 확대 재생산, 옵아트

옵아트는 만화경을 닮았다. 만화경은 몇 개의 거울을, 몇 도의 각도로 배치하느냐에 따라 무늬가 달라진다. 옵아트에도 다양한 문양이 있다. 옵아트의 대표자로 통하는 헝가리 출신 빅토르 바사레이의 작품①을 보자. 앞으로 볼록하게 튀어나온 듯한 착각을 준다. 이는 ‘테이퍼드 미러(tapered mirror)’ 만화경의 효과다. 삼각의 거울기둥을 앞에서 뒤로 갈수록 점점 가늘어지게 하면, 만화경의 내부에는 저 작품처럼 앞으로 볼록 튀어나온 형상의 환영이 생긴다.

그의 다른 작품②는 ‘투 미러 시스템’의 효과를 구현하고 있다. 두 개의 거울을 45도 각도로 붙여 놓은 만화경의 내부는 저렇게 보인다. 작품③은 리처드 아누스키비치의 ‘발광’으로 ‘스리 미러 시스템’를 연출하고 있다. 이는 45-90-45도로 맞붙은 쓰리 미러 만화경 내부와 같다. 한편, 이스라엘 미술가 야콥 아감의 작품④는 ‘렉탱귤러(rectangular) 미러 시스템’의 효과다. 사각기둥 안쪽 두 면에 거울을 단 만화경은 저렇게 좌우로 이어지는 기다란 띠 모습을 하게 된다.

놀이에 열중한 아이에게 일상의 시간은 멈춘다. 놀이 속을 흐르는 것은 또 다른 시간대. 만화경도 마찬가지다. 만화경의 구멍은 우리를 일상에서 빼내 새로운 시간대에 살게 한다. 만화경의 요소들은 유한하나, 그것들의 조합이 만드는 ‘사태’는 무한하다. 고요한 거울의 방을 흐르는 것은 또 다른 시간, 유한의 조합으로 무한의 사태를 생성하는 영겁회귀의 시간이다.

진중권 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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