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엽교수 이미지로 보는 세상]누구에게나 봄날은 간다

  • 입력 2001년 10월 23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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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변한다. 만나면 헤어지고, 태어나면 늙고 병들어 죽는다. 허망하다. 이 허망한 세상의 변화와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첫번째 방식은 변화를 물리적으로 막아보려는 것이다. 불로초를 구해 세월의 주름을 막으려고도 하고, 병든 몸을 냉동시켜 미래의 건강한 부활을 기약하기도 한다. 그러나 삼라만상의 변화를 어찌 풀 한 포기와 얼음 한 조각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두번째 방식은 변화의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을 찾으려는 시도다. 현상의 변화를 벗어나 있는 ‘본질’이나 육신의 변화를 벗어나 있는 ‘영혼’ 등이 변하지 않는 그 무엇으로 거론되곤 한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남자 주인공인 상우 또한 급속한 변화의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고 믿는 인물이다. 그 무엇은 상우에게 사랑으로 상징된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믿음은 무덤 속에서도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속삭이는 여자 주인공 은수와의 만남을 통해 더욱 강화된다. 그러나, 상우에 대한 은수의 사랑은 변해 버리고, 상우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물으며 허망해한다.

여기에서 세상의 변화와 마주하는 세 번째 방식이 등장할 수 있다. 구태여 변화를 막으려 하지도 않고, 애써 변하지 않는 무엇을 찾으려 하지도 않고, 세상은 변한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런데, 순순히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변화를 마지못해 받아들이기 쉽다. 영화 ‘봄날은 간다’로 되돌아가 보자. 상우는 실연의 아픔을 택시 운전을 하는 자신의 친구에게 토로한다. 친구는 위로한다. 어차피 세상은 변한다. 언제인가 은수도 나이가 들어 쭈글쭈글해지고 병들고 죽는다. 그 때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지금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픔이 덜하다. 친구의 이런 조언에는 지금의 변화가 아프기는 하지만 미래의 더 큰 변화로 인한 아픔을 생각하면 받아들이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체념적이면서도 인위적인 계산이 여리게 깔려있다.

그러나, 친구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상우의 아픔은 가시지 않는다. 괴로워하는 상우를 잠자코 보고 있던 할머니는 문득 상우에게 버스와 여자는 떠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할머니도 떠난다. 오랫동안 할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할머니도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죽음이라는 변화에 몸을 싣는다. 이제 변화는 막거나 뒤집거나 측량해야할 삶의 무게가 아니라 연분홍 치마를 봄바람에 휘날리며 기꺼이 맞아야할 자연의 일부이다. 마침내, 상우 또한 보리밭에 자신을 의탁하고 평안을 찾는다.

누구에게나 봄날은 오고, 또 누구에게나 봄날은 간다. 누구나 봄날이 다가오면 마음 설레어 하고, 또 누구나 봄날이 떠나가면 가슴 저미어 한다. 이 설레면서도 저민 봄날을 어찌할까?

김진엽(홍익대 예술학과 교수)jinyupk@wow.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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