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입시전쟁]"딸 성적오른다면 뭐든…"

입력 2000-02-07 19:57수정 2009-09-23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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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엄마’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고3 못지않게 힘들다. 새벽부터 도시락 싸고 자동차로 학교에 데려다주고 밤 늦게까지 잠 못 자고 기다리고 간식 차려주고….

요즘은 고3 1년을 자녀와 함께 전력질주하는 것도 모자라 좋은 학원이나 과외도 척척 대주어야 ‘능력있는 엄마’ 소리를 듣는다. 자녀교육이 엄마의 몫으로 떠넘겨져 있는 현실에서 자녀의 성적으로 엄마의 능력을 판단하려는 사회의 시선은 여전하니까.

▼날라리 고3엄마?▼

고3, 고2 딸을 둔 홍점순씨(43·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도시락은 딸들 반에서 소문날 정도다. 커다란 반찬그릇에 5군 영양소를 고루 갖춘 네댓가지 반찬을 담되 전날과 똑같은 것은 절대 피한다. 새벽에 일어나느라 모자라는 잠은 낮에 잠깐 누워 기운을 보충했다.

‘엄마 모임’에 참여해 정보도 얻고 담임교사도 몇 번 ‘모셨다’. 딸이 수학성적 걱정을 하자 친구의 이웃이 서울대에 직접 가서 뽑아왔다는 대학원생을 구해 주었다.

그래도 홍씨는 자신을 ‘날라리 고3엄마’라고 여긴다. 새벽부터 돗자리 깔고 줄서야 하는 유명 학원 등록을 대신 해달라는 딸의 요구를 홍씨는 거절했었다. “네 학원 등록을 왜 엄마가 하니? 딴 엄마들은 해준다고? 내가 정상이야. 엄마도 엄마의 인생이 있어.”

▼당연히 해야할 일?▼

“새벽에 일어나는 게 제일 힘들어요. 4시간씩 자느라 몸무게도 3㎏ 빠졌어요. 그래도 우리 딸이 더 고생했죠.”

임성숙씨(45·경기 부천시 오정구 오정동)는 지난해 여름 입원할 정도로 아팠지만 통원치료만 받았다. 고3인 딸이 학교 오가는 걸 엄마가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

몸이 나은 후에도 전에 다니던 볼링과 노래부르기 강습은 그만뒀다. 시간이야 있었지만 딸이 파김치가 되어 오는 걸 보면 가고 싶은 마음이 달아났다.

딸 나정아양은 “처음엔 엄마가 내 짜증을 다 받아주시고 보약이랑 간식을 챙겨주셔도 엄마는 당연히 이렇게 하나보다 생각했다”며 “엄마가 아프신 후에야 죄송한 맘이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엄마의 생존전략?▼

사회학박사 진수희씨(45·여의도연구소 연구위원)는 “고등교육을 받은 엄마들이 고3 뒷바라지에 더 열심인 것 같다”고 했다. 사회가 흡수할 수 없었던 엄마의 자아실현의 욕구를 자녀에게 쏟기 때문에 그만큼 기대수준도 높고 인풋(Input)도 많이 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딸이 고3이었던 진박사는 딸이기 때문에 더욱 신경쓰이는 점이 있다고 했다.

“아들은 별로 걱정 안해요.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프리미엄이 있으니까. 하지만 딸은 성차별을 겪지 않도록 아주 확실한 전문성이 있는 직업을 가져야죠. 공부야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했지만 딸아이의 적성이 건축학에 맞는 것 같아 자주 동기부여를 해줬어요.”

고3엄마도 나름의 위세를 부리기도 한다.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고3이고 그다음은 그 고3을 챙겨주는 엄마. 아빠를 포함한 다른 식구는 뒷전이어도 군말없다. 고3엄마라면 집안대소사에 빠지는 것도 충분히 면책사유가 된다.

이를 두고 한양대 심영희교수(사회학)는 “모성의 표현이긴 하지만 엄마자신도 뭔가 얻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토록 열심히 뒷바라지하는 것이 아닐까”라면서 “고3엄마의 보살핌은 가부장제하에서 자신의 자리를 증명받는 일종의 생존전략”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윤경은기자>ke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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