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병섭]행복국가로 가고 있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김병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김병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지난주 동아일보에 연재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기획 시리즈 ‘2020 행복원정대’는 행복이 한 개인의 정서적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정치적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우리도 그들처럼 정치의 궁극적 목표를 국민의 행복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행복국가 건설에 앞장서야 할 우리 정치는 그동안 무엇을 해왔나? 주지하다시피, 우리 정치는 그동안 경제성장에 주력하여 왔고 국민의 행복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경제성장이 반드시 국민의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이를 처음 선거공약으로 제시한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그는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핵심공약을 ‘국민행복 10대 공약’으로 제시하였고, 취임 후에도 4대 국정 기조 중의 하나로 ‘국민행복’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박근혜 정부가 행복국가론을 제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느끼는 행복은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2013년 유엔 세계행복 보고서에서 10점 만점에 6.27점의 행복지수로 조사 대상 156개 국가 중에서 41위에 머무는 초라한 상태에 있었으나, 2015년에는 행복지수 5.98점에 47위로 떨어져 더욱 나빠졌다. 갤럽이 금년에 공개한 2014년 웰빙지수에서도 우리나라는 117위로 2013년의 75위에 비해 무려 42계단이나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정부가 국민행복을 국정목표로 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 상태가 오히려 더 나빠질까? 그 이유는 아마도 정부가 헛다리를 짚었거나 아니면 행복을 추구하는 척만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먼저, 박근혜 정부가 국민행복 증진을 위해서 내세우는 핵심 사업이 무엇인지를 알기 어렵다. ‘국민행복 10대 공약’ 중 상당수는 ‘국민행복’ 전략과제로 분류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부흥’ 전략과제로 분류되고 있다. ‘국민행복’에 포함된 65개 과제도 국민행복기금, 국민행복제안센터 등 이전 정부가 추진하던 각종 정책과 제도에다 ‘국민행복’이라는 명칭을 추가한 것 이외에 기존의 그것들과 차별성을 찾기가 어렵다. 그저 정부가 하는 일이 모두 국민행복과 관련이 있으니, 매사에 열심히 하자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 이렇게 핵심적인 대통령 어젠다가 없어서 그런지 어떤 사업이 국민행복에 더 많은 기여를 하는지, 투입 예산 대비 국민행복의 기여 정도는 어떠한지 등등에 관한 점검과 평가가 없다. 국무조정실의 2015년 정부업무평가 시행계획 어디를 보더라도 행복이라는 단어를 찾기 어렵다. 규제 개혁, 비정상의 정상화에 대한 평가 항목은 있지만 정부의 어떤 활동이 국민행복을 어느 정도 증진시켰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이 없다. 정부의 활동에서 국민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인과경로의 복잡성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 경로를 진단하고 점검해야 하나 그러한 정부의 활동을 찾을 수가 없다.

그 다음, 국민행복이 핵심적인 대통령 어젠다라면 이를 추진 관리하는 기구가 있어야 할 텐데 그것을 알 수가 없다. 선거 과정에 있었던 국민행복위원회를 이어받는 기구가 있어야 할 텐데 그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니 국민행복을 선거 과정에서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공약화하기는 했지만 실제적인 관심은 창조경제를 앞세운 경제성장에 있었고 그래서 국민행복 수준이 저하된 것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행복을 국정목표로 삼고 이를 증진시키려면 정부의 모든 활동이 이와 관련 있다고 전제할 것이 아니라 정부 정책 및 서비스와 국민행복 간의 인과경로에 관한 보다 면밀한 분석과 점검을 해야 할 것이다.

김병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행복국가#정부#행복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