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노트]고미석/버리고 싶은 「쌓는 재미」

  • 입력 1998년 11월 27일 19시 24분


“어, 벌써 내년 달력이 나왔네.”

엊그제 처음 받아본 99년도 달력. 한 해를 마무리할 때가 됐다는 생각에 마음이 울적했다. IMF시대를 맞아 힘들고 고단했던 98년. 유난히 하루가 더디 가는 것만 같더니 어느새 한 매듭 지을 시간이 다가왔다.

그래서 송년준비삼아 모처럼 이번 주말에는 미뤄왔던 숙제를 하기로 했다.

사무실 책상과 사물함, 그리고 집안 정리하기. 한데 먼지만 뒤집어쓴 채 여기저기 처박혀 있는 잡동사니와 살림살이를 떠올리니 갑자기 엄두가 나지 않는다.

참 이상하다. 어쩌다 마음이 끌려 인연을 맺은 물건도 오랜만에 정리정돈을 하거나 이사할 때 끄집어내 보면 왜 그리 허섭쓰레기같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지….

누가 공짜로 준다고 하면 내게 별소용 없는 것에 욕심을 부리고 백화점에서 사은품을 받으려고 엉뚱한 물건까지 사느라 돈을 낭비한 것이 후회막급이다.

서울 YMCA가 얼마전 수도권 가정의 ‘안쓰는 생활용품’ 실태를 조사한 결과 집집마다 평균 1백96개의 생활용품이 방치된 것으로 드러났다. 항목별로 보면 잡화류가 평균 28점, 의류가 16점, 음반류가 13개 등등. 이들 3개 중 1개는 선물로 받은 것이란다.

무슨무슨 캠페인도 많은 세상. 올 연말에는 선물 안주고받기 운동, 직장마다 동네마다 쓰지않는 물건은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행사라도 생겼으면 좋겠다.

연말연시라고 예전처럼 흥청망청할 여유도 없는 우리네 형편을 생각해서라도.

‘한밤중에 잠이 깨어/물끄러미 보이는 것들이/소용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언젠가는 저것들을/버릴 날이 있을 것인가/안버리고 못버리고/끄리고 지내다가/저것들이 마침내/나를 버릴 것만 같다’(정양의 시‘한밤중에’)

한 때는 쌓아가는 재미로 살았다면 이젠 달라지고 싶다.

<고미석기자>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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