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어제오늘]일산 백마역,80년대 젊은이 해방구

  • 입력 1997년 7월 12일 08시 05분


서울에서 21㎞쯤 떨어진 경기 고양시 일산구 백석동 90의1에 경의선 백마역이 있다. 지난 70년 정식 역무원도 없이 부근 주민이 차표를 파는 을종대매업소로 문을 연 백마역은 지난 80년대초 부근에 「화사랑」 「지하」 등 만남의 장소가 생기면서 활기를 띠었고 81년 6월에는 간이역으로 승격했다. 86년을 전후해 역 주변에 카페와 주점 30여개가 자리잡으면서 이른바 「백마 카페촌」이 생겼다. 백마카페촌은 숨막히던 군사정권 시절 젊은이들에게 「해방구」였다. 그곳에는 감시의 눈길이 없었고 젊은이들은 주말이면 기타를 메고 철길 자갈을 밟으며 삼삼오오 카페촌을 찾았다. 억누를 수 없는 울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를 불렀고 촛불 밝힌채 시도 읊었다. 작고한 문인 기형도 김소진 등도 자주 드나들었다. 이같은 젊음의 열기는 지난 91년 일산신도시가 개발될 때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이윽고 백마 카페촌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일산신도시 개발과정에서 하나둘씩 헐린 카페촌은 91년 화사랑을 끝으로 장흥 등지로 흩어졌다. 젊은이들의 발길도 끊겼다. 신도시 입주가 본격화된 93년 7월 백마역은 하루 이용객 2천여명의 보통역으로 커졌고 직원도 4명에서 8명으로 늘었다. 역주변의 논밭에는 고층아파트가 즐비하고 카페촌 자리에는 골프연습장이 들어섰다. 8년만에 백마역을 찾은 黃道顯(황도현·32·서울)씨는 『고향을 잃은 기분』이라며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 〈고양〓선대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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