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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10월 17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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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양성우는 장기 집권 체제에 들어간 1970년대의 박정희(朴正熙) 정권에 ‘겨울공화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조국 근대화’라는 구호 앞에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자유를 사실상 박탈당했던 어둡고 암울했던 시기, 그것은 모든 것이 움츠러드는 겨울일 수밖에 없었다.
‘겨울공화국’은 1972년 10월 17일 오후 7시 박 대통령이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른바 ‘10월 유신(維新)’ 체제의 등장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날 TV와 라디오를 통해 10분간 발표한 특별 선언에서 “나 개인은 조국 통일과 민족 중흥의 제단 위에 이미 모든 것을 바친 지 오래”라며 ‘평화 통일이라는 민족의 염원을 구현하기 위해’ 국회 해산과 정당 활동 중지, 헌법 기능의 비상국무회의 수행 등 비상조치를 단행했다.
그는 특히 민족(21번), 통일(19번), 평화(18번), 조국(14번) 등의 단어를 동원해 “국민 여러분이 헌법 개정안에 찬성치 않는다면 나는 이것을 남북대화를 원치 않는다는 국민의 의사 표시로 받아들이겠다”고까지 하면서 국민에게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을 강요했다.
그러나 중앙청과 국회의사당 앞에 탱크가 등장하고 언론은 사전검열을 받고 대학은 문을 닫은 ‘10월 유신’의 핵심은 대통령 종신제였다. 국민이 아닌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대통령이 간접 선출되고 그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지명하는 유신체제는 대의기관인 국회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그리고 대통령의 손에는 ‘긴급조치’라는 칼이 주어졌다. 즉 절대독재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무리한 욕망은 반드시 파멸을 불러오는 법. 1973년 유신헌법 개정 100만인 서명운동으로 시작된 민주세력의 반독재 투쟁은 1975년 민주회복국민회의 결성, 1976년 민주구국선언, 1979년 부마(釜馬)항쟁 등을 불러왔다. 이런 투쟁은 결국 권력 내부의 분열로 귀결돼 1979년 10월 26일 박 대통령이 시해(弑害)되면서 유신체제는 막을 내렸다.
독재체제는 항상 영원할 것 같아 보이지만 종언(終焉)은 한순간에 찾아온다는 역사의 진리는 유신체제에도 예외는 아니었던 셈이다.
김동철 정치전문기자 eastph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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