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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6월 25일 19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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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신(神)이 생명을 창조해낸 ‘언어’를 배우고 있다!”(빌 클린턴)
2000년 6월 26일. 국제공공컨소시엄인 ‘인간게놈프로젝트(HGP)’와 미국의 민간기업 ‘셀레나 제노믹스’가 유전자 염기 배열지도를 발표했다.
인간이라는 생명현상, 그 생물학적 정보의 총화인 ‘게놈(Genom)’. 그 인간의 설계도면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컴퓨터의 프로그래밍이 ‘0’과 ‘1’이라는 두 숫자의 조합을 통해 이루어지듯 게놈은 30억쌍에 이르는 4종류의 염기(A, C, G, T)배열을 통해 유전자의 명령을 수행한다.
30억개의 글자로 쓰인 ‘생명의 서(書)’라고나 할까. 사람의 생로병사에 관한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
“30억년의 진화 끝에 하나의 난자(卵子)를 어른으로 만들고, 무덤에까지 이르게 하는 비밀의 통로를 찾아냈다.”
그러나 30억쌍의 염기배열을 옮겨 적었을 뿐이다. 이제 이 암호문을 해석해야 한다. ‘포스트게놈’ 시대의 과제다.
HGP의 책임자인 프랜시스 콜린스는 “덤불에서 바늘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새겨진 ‘로제타 스톤(Rosetta Stone)’을 발견하고도 판독하지 못했던 ‘스핑크스의 침묵기’에 들어간 것이다. 유전자 판독은 5년에서 30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스핑크스가 침묵에서 깨어났을 때 그건 인류의 축복일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지 스스로의 ‘유전적 운명’에 개입(介入)하려 들 것이다.
그것은 단지 질병을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얼마든지 ‘맞춤아기’도 가능하고 ‘유전자 성형(成形)수술’도 가능하다.
‘유전자 차별’은 필연적이다. 부(富)와 함께 유전자도 세습될 것이니. 유전적 엘리트집단이 열등집단을 지배한다?
과연 인간의 자유의지는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유전적인 성향만 존재하는 것인가. 양심이나 영혼도 단지 유전자의 뜻일 뿐인가?
‘유전자 성형’ 없이 태어난 ‘신의 아이들’과 ‘유전자 성형’으로 태어난 ‘인간의 아이들’. 누가 더 완전한가. 더 인간적인가.
끝내 인간은 ‘생명(生命)의 몫’인 죽음마저 거부하려 들 것이다.
인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야 말았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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