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인사이드]거리의 「전단 아줌마들」

  • 입력 1999년 3월 25일 19시 12분


대낮 서울 도심의 지하철역 주변에서 쉴 새 없이 손을 놀려대며 보행자들에게 명함 크기의 전단을 나눠주는 사람들. 속칭 ‘전단(찌라시) 아줌마들’이다.

더운 여름에도 이들은 장갑을 끼고 있다. 전단의 날카로운 종이 모서리에 손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신발은 운동화나 굽이 없는 단화. 장시간 서있으려면 무엇보다 발이 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근무시간에 따라 ‘반나절조’(오전10시∼오후2시)과 ‘한나절조’(오전8시∼오후4시)로 구분된다. 일당은 나눠준 전단의 수량이 아니라 근무한 시간에 따라 반나절에 1만5천원, 한나절엔 3만원이다.

전단은 대개 신용대출 카드대출 담보대출 등을 하는 사채업 사무실의 홍보물.

전단을 배포하는 장소는 지정된 곳으로 제한된다. 수시로 사무실에서 점검을 나오기 때문에 잠시도 쉴 수가 없다.

이들의 연령은 대개 50대. 60세를 넘으면 손이 느리다는 이유로 잘 써주질 않는다.

25일 서울 지하철 시청역 1번 출구 앞에서 전단을 나눠주던 권모씨(57·여)는 “이 일을 하는 여자들은 대부분 직접 돈을 벌지 않으면 가정을 꾸리기가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전단 아줌마들’이 가장 많은 곳은 강남구 지하철 강남역과 역삼역 출구 주변. 역주변마다 30여명씩이 몰려있다. 한 명이 한나절에 1천여장의 전단을 나눠주기도 한다.

거리에서 휴지통마저 찾아보기 힘든 요즘 대부분 쓰레기가 되고 말 전단을 극성스레 내미는 손길이 행인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전단 아줌마들’도 알고 있다.

“행인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고 전단을 뿌리쳐도 그러려니 해요. 하지만 자식같은 젊은 사람들이 ‘저리 치워’ ‘비켜’ 등 반말을 하며 밀칠 때는 정말 서운해요.”

‘전단 아줌마’ 권씨가 털어놓는 고충이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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