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사람들]환경정의 시민연대 태영은 간사

  • 입력 2001년 2월 2일 19시 40분


나이 많은 사람을 만나면 인생을 배울 수 있어 좋고, 나이 적은 사람을 만나면 어린 나이의 기특한 생각이 부럽다. 그러나 또래를 만날 때는 문제가 다르다. 얄궂은 경쟁심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환경정의시민연대 태영은 간사. 만나기 전부터 같은 학번이란 얘길 듣고 내심 긴장이 됐다. 게다가 시민단체에 있는 간사들은 첫째, 박식하지 않으면 둘째, 경력이 화려하다. 물론 둘 다일 경우도 많다. 긴장감이 드는 게 당연했다.

대망의 인터뷰 날. 예정보다 10분 정도 일찍 사무실에 찾아갔을 때 그녀는 내가 앉을 의자를 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의자가 마련되었다며 자리를 내어주는 그녀의 발을 보자 저절로 웃음이 났다. '팬더곰 실내화'. 이제까지의 모든 경계심이 눈녹듯 사라졌다. 낯선 사람을 맞이하는 그녀만의 방법인 걸까.

자리가 불편하지 않나, 차를 마시지 않겠나, 계속해서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녀를 보며 어른들 말씀으로 '참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내어준 녹차는 참 따뜻했다.

시민운동 입문 계기를 묻자 대답이 의외로 간단하다.

"뭔가 사회에 도움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요…"

진실한 것은 늘 간결한 법.

"4학년 때 진로를 고민하면서 막연하게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고 인터넷 채용 사이트에 취직을 했죠. 업데이트 하면서 사이트 운영하는 거였는데 만족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이라는 단체의 채용 공고를 보게 됐죠."

공채에 붙은 그녀는 작년 4월 이 단체에서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내셔널트러스트'란 보전할 가치가 있는 토지나 문화재 등을 시민이 자발적으로 매입, 공동소유함으로써 영구하게 관리하는 운동. "동강을 아예 사들여 보존하자"는 동강 트러스트 운동이 그 대표적인 예다.

사단법인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말 그대로 이러한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하는 단체로 환경연대 산하에 있다 지금은 별도 법인으로 독립했다.

작년말 사무실이 이사를 하면서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에 있던 태영은 간사는 환경연대로 소속을 옮겼고, 지금은 시민사업팀에서 환경연대 홈페이지(http://ecojustice.or.kr)를 관리하고 있다. 12월말 지금의 업무를 맡아 보름만에 페이지 개편을 해냈다.

"대단하다"는 칭찬에 "저 별로 잘 못해요"하며 호호 웃는 그. 하지만 "환경연대랑 내셔널트러스트 홈페이지(http://nationaltrust.or.kr)가 제가 만든 거예요"하며 은근한 자랑도 곁들인다.

'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고 나올 때 어머니는 "회사같지도 않은 데를 다니냐"고 힐난하셔도 본인은 별로 후회하지 않았다는데.

"지금은 오히려 뿌듯해요.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한다지만 사실 돈을 많이 받고 덜 받고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녀의 대학생활은 어땠을까.

"학교 다닐 땐 전공에 별로 흥미가 없었는데 그 때 배웠던 게 종종 도움이 돼요. 요즘엔 학교 때도 안 읽던 책 막 찾아 읽고…"

쑥스럽게 웃는 그녀의 전공은 건축.

"토지운동은 도시계획이나 건축학적 지식이랑 많이 관련이 있어요. 요즘엔 특히 전통건축을 보전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무언가 떠올랐는지 잠시 생각에 잠긴 그녀가 말을 잇는다.

"웹 콘테스트를 했었어요. 내셔널트러스트 후보지를 인터넷에서 신청받는 거였죠. 후보 신청이 1000건이나 들어와서 기대를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실제 작품이 80개 밖에 안들어 온거예요. 그 중에서도 괜찮다 싶은 건 50개 정도. 좀 실망했었죠."

지금까지 했던 것 중 가장 큰 일이었다는 웹 콘테스트. 그녀의 감회는 남다르다.

"네티즌들이 가볍다 가볍다 했는데 정말 그런가 싶더라구요. 연예나 스포츠 사이트엔 클릭수가 넘쳐나고 NGO 같은 주제는 별로 관심이 없나 싶기도 하고…"

그러나 실망만 했던 건 아니었다.

"내셔널트러스트가 보통 분들에겐 좀 생소하잖아요. 그런데도 호응은 엄청 높았죠. 온라인 투표는 1000명 2000명씩이나 참가했고 이메일도 많이 받았거든요. 처음 시도했다는 것, 내셔널트러스트를 많은 사람에게 알렸다는 것에 자부심이 생겨요."

그녀의 계획은 무엇일까.

"우선 봄부턴 정크메일 없애기 캠페인을 벌일 거예요. 우편으로 오는 청구서는 한 번 보고 그냥 버리잖아요. 이런걸 이메일로 받자는 운동을 하려구요. 카드사나 통신업체와 함께 해볼 생각이예요."

그녀의 계획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내년 내후년에는 토지운동쪽 일을 해보고 싶어요. 지역에서 직접 주민들을 만나서 설득하고 땅을 매입하고 그래서 그걸 지켜나가고… 토지운동은 현장성이 생명이거든요."

토지운동을 한마디로 정의해달라는 말에 그녀의 대답이 재밌다.

"집에서 학교까지 갈 때 밟는 흙을 늘리는 일이라고 해야되나요?"

소위 말하는 운동권 출신도, 환경운동에 대해 공부한 적도 없는 그. 오직 '사회에 도움되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응한 간사 공채에 뽑혀 지금에 이르렀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시민운동에 뛰어들기를 주저하는 사람에게 따가운 일침이 된다.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거라고 생각 안해요. 일반 시민들이 생활에서 하나씩 변화시켜 나가는 것, 그 과정이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세린/동아닷컴기자 oh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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