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 ⑮/전남 담양 한빛高]텃밭가꾸기가 필수과목

  • 입력 1998년 4월 27일 07시 05분


전남 담양군 대전면 행성리 한빛고등학교.

세사람이 모인 형상, 또는 훌륭한 사람이 3명 나온다는 전설을 가진 삼인산을 병풍처럼 뒤로 한 채 자리잡고 있다.

1일 오후 5교시는 1학년 학생들의 특성화 활동시간이었다. 교과공부외에도 인성과 창의성을 기르는 것을 중요한 교육철학으로 삼고 있는 이 학교에서는 가장 인기있는 시간이다.

도자기공예 서예 회화 명상 등 10개 과정이 있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골라 매주 한차례 취미활동을 한다.

도자기반 학생 17명은 그동안 교실에서 배운 도자기 공예 이론을 바탕으로 이날 처음 실습을 해보는 날이었다.

실습장은 학교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가마터여서 승합차를 타고 이동했다. 도자기 실습강사 조수정씨(33·여)가 학생들을 데리고 작업대 앞에 섰다.

“오늘은 여러분이 직접 도자기를 만들어보는 시간이에요. 아름다운 작품이 나오려면 손재주도 있어야 하지만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고 작업에 집중하는 열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실습이 시작되기 전에는 학생들은 영화 ‘사랑과 영혼’의 남녀 주인공처럼 로맨틱하게 멋진 도자기를 만들겠다며 들떠있었다. 그러나 교사의 설명이 시작되자 학생들은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진지한 자세로 바뀌었다.

진흙을 전기반죽기에 넣어 차지게 만든 뒤 이를 잘라 작업을 하면 된다. 새끼를 꼬듯 진흙을 손으로 비벼 가늘게 만든 뒤 도자기 밑바탕부터 둥글게 쌓아가는 코일링작업이 기본과정.

코일링에서는 진흙에 공기구멍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구멍이 생기면 구워도 깨져버리기 때문이다. 물레를 천천히 돌리면서 그릇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소꿉놀이하듯 1시간 동안 정성을 다한 끝에 그릇이 만들어졌다. 삐뚤빼뚤 균형이 안맞고 모양도 제각각.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작품을 어루만지면서 스스로들 대견해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릇을 말려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 굽는 과정은 다음 주에 하기로 했다.

조은혜양(17)은 “중학교 때는 특활시간이 시간 때우기 식이어서 따분했는데 여기서는 무엇이든지 직접 해보기 때문에 재미있다”며 “솜씨는 없지만 예쁜 도자기 물컵을 만들어 아버님 생신 때 선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빛고는 기존의 주입식 교육방식에서 벗어나 창의성 있는 인성교육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올해 개교했다. 폐교가 된 옛 삼산초등학교 터 5천여평과 건물을 구입해 새롭게 단장했다.

시민모임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지금도 후원회원이 3백여명이나 된다. 한빛고는 ‘작은 학교’를 지향하기 때문에 학급당 25명으로 4개반을 편성했다. 전국에서 선발된 학생들은 전원 기숙사 생활이 원칙.

남녀 비율은 6대4. 이는 여학생이 많으면 남학생이 여성화할 우려가 있지만 남학생이 약간 많을 경우 경쟁심을 불러일으켜 학습효과도 높아지고 정서순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교육적 판단에서 정한 것이다.

교사는 24명인데 이중 박사 3명, 석사가 4명이나 될 정도로 교사들의 수준이 높다는 설명이다.

인문계이지만 다른 학교와는 달리 일반교과 70%, 특성화과정 30%를 가르친다. 수업은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3단계로 수준별 이동수업을 하고 있다. 학생들이 스스로 준비하고 발표하는 토론식 수업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참여도가 높다. 교사 학생 전체가 참여하는 학교회의를 통해 학교문제를 의논하고 있다.

이 학교의 특징은 특성화교육. 흙을 만지고 농작물을 가꾸면서 땀을 흘리다보면 자연스럽게 생명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1주일에 두시간인 특성화교과는 자연친화활동과 문화예술 체험으로 나뉜다. 텃밭가꾸기는 필수과목이고 꽃가꾸기 동물기르기 목공 가사 등을 자유로 선택할 수 있다.

또 예술사 문예창작 서예 회화 도자기공예 대나무공예 태껸 기공 가야금 애니메이션 과목도 있다. 전문강사를 초빙해 가르치기 때문에 교육내용과 수준이 알차다. 지역특색을 살린 대나무공예 시간에는 죽공예 기능보유자를 강사로 초빙하고 있다.

학교 뒤편의 1천여평의 밭을 반별로 나눠 텃밭 가꾸기를 하고 있다. 조별 개인별로 할당해 책임지고 가꾸도록 한다. 삽으로 밭이랑을 만들어 감자와 상추를 심었는데 무 배추 고구마 등 식생활에 필요한 채소는 대부분 심을 계획이다.

교사 배수홍씨(35)는 “처음에는 학생들이 밭일을 힘들어 했지만 이제는 자신이 정성을 쏟아 가꾼 채소가 쑥쑥 자라는 것을 신기해 한다”며 “공부도 중요하지만 땀을 흘려보는 노작(勞作)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0684―83―8360,8361

〈담양〓이인철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