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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3월 23일 0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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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수업이 끝나면 부모가 직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아이들은 갈 곳이 없어요. 기껏해야 전자오락실이나 기웃거리다가 불량청소년들의 표적이 되곤 하지요. 그러다가 결국 뒷골목 문화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기 성남시 태평동 중앙시장 한 복판에 위치한 ‘여럿이 함께 만드는 학교’(원장 김종수). 대부분의 대안학교와는 달리 이 학교가 번잡한 시장통에 자리잡은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아이들을 돌볼 틈이 없는 일하는 부모들의 자녀를 위한 ‘방과후 교실’이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상근교사 6명이 초등학교 1, 2학년생 13명을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피고 있다.
오후 12시반. 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이 곳에 모여 교사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하루 수업일정을 시작한다. 식사도 엄연한 수업의 일부. 식사 때는 교사들이 모두 엄마 아빠가 된다.
“진태야, 똑바로 앉아서 먹어야지.” “반찬을 골고루 먹어야지, 편식하면 안돼요.”
식사를 마치고 수업에 들어가기 전 산만한 학습분위기를 가다듬는 것은 김종수원장의 몫. 아이들을 큰 방으로 불러모은 김원장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이 너도 나도 단상으로 올라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우스갯소리를 풀어냈다.
이어지는 수업은 선택학습시간. 피아노 미술 서예중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해 수업을 받는다. 때로는 자원봉사 교사에게 장구와 판소리 등 국악을 배우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제말을 잘 들어주지 않고 꾸중만 하는데 ‘여럿이 학교’에서는 언제나 자유롭게 말하고 마음껏 놀 수 있어서 좋아요. 집에서 혼자 놀지 않아도 되고요.”
지역공동체학교를 지향하는 ‘여럿이 학교’는 매주 수요일 ‘성남사랑교실’시간을 갖는다.
아이들은 배낭을 메고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성남지역의 자연환경과 문화유적을 찾아가 야외수업을 한다. 지난해에는 야탑천 분당천 등 이 지역 하천들의 환경오염 실태를 조사했다.
이번 학기에는 성남지역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남한산성 살리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아이들은 매주 수요일 이곳을 찾아가 방치된 문화유적을 찾아내 문화재 지도를 만들며 살아 숨쉬는 역사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성남은 별난 곳입니다. 주민들은 대부분 척박한 이 땅을 떠나려고 하지요. 우리는 성남을 아이들이 살고 싶어하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여럿이 학교’는 92년 성남시 상대원동 공단지역에 맞벌이 노동자 자녀를 위해 개설한 탁아선교원으로 출발했다. 그 뒤 94년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과후 교실’을 열었다.
96년 3월에는 태평동 중앙시장에 있는 건물 한 층(80여평)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3∼6학년과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부방도 열었다.
김원장과 부인 조진경씨(36)를 비롯한 교사들은 모두 한신대 기독교교육학과 동문들. 대학시절부터 간직했던 ‘열린 교육’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봉사와 희생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이다.
이들은 ‘여럿이 학교’를 정부가 인정하는 방과후 교실의 시범학교로 만든다는 꿈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열정만으로는 교사들이 넘어야 할 장벽이 너무 높기만 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경제적인 문제. 아이들이 내는 수업료는 학교 임대료에도 못 미칠 정도다.
“‘여럿이 학교’를 처음 열었을 때는 ‘방과후 교실’에 대한 개념조차 낯설었습니다. 보고 배울 이론과 모델이 없어서 직접 부닥치면서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배우며 학교를 ‘만들어’온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의 교육프로그램을 참고하겠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곳이 많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어요.”
‘여럿이 학교’연락처 0342―758―7782
〈성남〓홍성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