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살아보니]존 그리핀/보신탕은 전통음식, 혐오가 웬말

  • 입력 2001년 8월 14일 18시 25분


“오늘은 반드시 구멍이 뚫리지 않은 양말을 신어야 해요.”

복날 아침 출근을 준비하다 보면 반드시 아내에게 해야 하는 말이다. 신발을 벗고 한국식 온돌방에 앉아서 보신탕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혹시 구멍 난 양말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낭패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많은 나라를 다녀봤지만 구멍 난 양말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한국에서 처음이다.

나는 한국에 와서 개에 관해 두 차례의 놀라운 경험을 했다. 언젠가 토요일 오후 서울시내에 있는 경복궁 지하철역에서 친지들과 헤어지기 위해 작별인사를 하는데 한 장애인을 안내하던 개가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어 옛 친구라도 만난 듯 반갑게 핥아댔다. 개 주인의 설명에 따르면 그 개는 뉴질랜드에서 수입했는데 외국인만 보면 이 같은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개는 후각이 인간보다 100배나 발달해 각 도시에 있는 모든 냄새를 분간할 수 있다. 아마도 자신에게 익숙한 냄새를 이방인인 나에게서 맡았기 때문이리라.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한국에서 사귄 친구들과 함께 종로구 구기동에 있는 어느 보신탕집에 가게 되었다. 그 날은 중복날이었다. 나를 포함해 우리 일행은 보신탕을 모두 배부르게 먹었다. 코 큰 백인이 한국인 사이에 끼어 보신탕을 먹는데 대해 많은 손님들이 놀라워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많은 여자(20% 정도)들이 남자들과 보신탕을 먹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국 친구들은 보신탕이 정력에 효과가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보신탕을 먹고 나서 크게 다르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수육은 정말 맛이 있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개고기를 먹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이제 한국 친구들처럼 ‘그것은 식생활 문화일뿐’이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다. 이미 세 번이나 맛을 보았으니까. 외국인인 내가 보신탕 문화에 대해 항변하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사람 중에도 보신탕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동물을 도살하는 과정이 포함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호랑이나 곰처럼 사라져 가는 야생동물을 잡아먹는 것이다.

나는 개고기를 먹어봤고 이해하는 희한한 서양인이다. 개는 소나 닭, 돼지처럼 희귀동물이 아닌 가축이기에 얼마든지 식용으로 키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동물을 도축하는 잔인한 장면은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소고기는 괜찮고 개고기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위선적인 사고방식이라는 것이 개인적 소신이다.

음식은 민족이 살아온 역사가 담긴 문화일 뿐이기 때문이다.

존 그리핀은 미국 캘리포니아대(UCSC)에서 환경학을 전공했으며 미국 산림청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파나마에서 국제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했다. 대학시절 학교 대표 농구선수로 활약했으며 독일과 뉴질랜드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면서 농구선수 겸 코치로 활동했다. 1996년 한국에 왔으며 그 해 한국인 부인과 결혼했다.

존 그리핀(서울시립대 평생교육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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