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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글로벌 환율전쟁]<1> 직격탄 맞은 중소기업

입력 2013-03-20 03:00업데이트 2013-03-2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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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 1000원 벌어 570원 환차손… 환율에 눈뜨고 당한다
《 일본이 막대한 돈을 풀어 자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아베노믹스’를 본격화하고 있다. 유럽과 중국은 불편한 심경을 공공연히 내비치면서 대응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글로벌 환율전쟁의 전운이 감돌고 있는 것. 환율전쟁은 한쪽이 이익을 얻으면 한쪽은 손실을 보는 ‘제로섬’ 게임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환율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실제 엔화 약세 정책인 ‘아베노믹스’ 탓에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기업의 위협을 받고 있다. 환율은 기업의 경쟁력은 물론이고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무차별적인 영향을 끼친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유럽발 재정위기도 본질적으로는 환율에서 비롯된 문제들이다. 동아일보는 환율에 대해 A부터 Z까지 알아보는 장기 시리즈를 연재한다. 》

#1. 울산에서 농기계 부품 수출업체를 운영하는 주모 사장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으로 부품을 수출하는 이 기업은 지난해 12월 주문을 받고 생산하는 동안 엔화 가치가 19%나 폭락하는 바람에 2000만 원 가까이 손해를 봤다. 규모가 작아 1년 영업이익이 2억 원에 불과한데 환율 때문에 순식간에 연간 이익의 10%가 사라진 것이다. 그는 “우리 같은 영세 기업은 선물환 계약도 하기 힘들다”며 “환변동보험이라도 들어 놓을 걸 후회된다”고 말했다.

#2.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에서 중장비 제조업체를 하는 김모 사장도 고민이 많다. 이 기업은 달러당 원화 환율이 1150원 이상이면 정상 이익에다 환율에 따른 추가 이득까지 얻을 수 있지만 환율이 떨어지면 채산성이 급격히 악화된다. 올해 1월 환율이 1050원대까지 떨어지자 수익성이 나빠지면서 적자 위험이 커졌다. 지금은 1100원대를 회복했지만 환율이 다시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최근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환율전쟁 속에서 가장 고통 받는 곳은 한국의 중소기업이다. 같은 양의 물건을 수출하고도 환율 때문에 앉아서 돈을 까먹는 곳이 많다. 원화 가치 급등에 대비 못한 한국의 중소기업은 기존 거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수출을 계속하며 환차손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 1000원 벌면 환 손실로 570원 날려

동아일보와 IBK경제연구소가 지난 20년간 한국 수출기업의 외환 손익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은 환위험에 더욱 노출돼 있다. 환위험이란 환율 변화가 단기적으로 기업 실적과 재무 구조에 영향을 주고 중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에도 변화를 불러올 개연성을 말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눠 매출액 대비 외환 관련 손실률을 분석해 보니 2008년∼2012년 1분기(1∼3월) 수출 대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5.35%, 외환 관련 손익률은 ―0.62%로 나타났다. 영업이익의 11.6%가량이 외환 관련 손실로 사라진 셈이다.

같은 기간 수출 중소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3.40%, 외환 관련 손익률은 ―1.93%로 이익의 56.8%나 됐다. 영업으로 1000원을 벌었지만 환율로 570원을 잃어버린 것이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수출 중소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환율 하락에 따른 피해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92.7%가 원-달러 환율 하락(원화 가치 상승)으로 피해를 봤다고 답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같은 조사 당시 ‘피해가 있다’(53.1%)는 답변보다 39.6%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환율 하락에 따른 주요 피해 유형은 ‘이미 성사된 수출계약 물량에 대한 환율 차 손해 발생’(67.6%), ‘원화 환산 수출액 감소로 인한 채산성 악화 및 운전자금 부족’(27.7%), ‘수출 단가 상승으로 가격경쟁력이 약화돼 수출 물량 감소’(21.6%) 순이었다.

원-달러 환율 하락에 수출 중소기업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은 키코(KIKO)에 의한 피해로 환헤지 상품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커짐에 따라 환헤지 상품을 회피하는 중소기업이 늘어서다. 지난해 환변동보험 가입액은 1조1000억 원으로 2008년(14조5000억 원)의 10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또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동안 이어진 1100원대 환율에 익숙해진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환헤지에 나서지 않은 것도 이유로 꼽힌다.

대한상공회의소 환율피해대책반 손영기 팀장은 “환헤지를 잘못하면 오히려 손해라고 생각하는 기업인이 생각보다 많다”며 “그동안 환헤지를 하지 않아 추가 이득을 본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해 환위험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 1000원대 환율에서는 ‘적자 수출’

IBK경제연구소가 최근 중소기업 15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손익분기점 환율은 1068.2원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중소기업 중에서도 수출입 규모가 작을수록 손익분기점 환율이 더 높다는 것이다. 수출입 규모가 1000만 달러 이하인 중소기업의 손익분기점 환율은 1104.1원이다. 올해 1000원대 후반의 환율이 고착화되면 상당수 수출 기업이 장사를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적자 수출’을 하게 된다는 얘기다.

동아일보와 IBK경제연구소의 조사 결과, 지난 20년간 24개 산업 분야 중 16개 산업의 외환 관련 손익률이 마이너스였다. 특히 금속가공 업종의 외환 관련 손실률은 2.17%로 영업이익률(4.76%)의 절반가량(45.6%)이 환손실로 사라졌다. 이 외에도 가죽, 가방 및 신발(―2.81%), 고무 및 플라스틱 제품(―1.26%), 기타 기계 및 장비(―1.34%) 등의 환손실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환율 전쟁에 대비하려면 한국 중소기업은 체질 개선에 앞서 환위험 관리를 통한 안정적인 영업이익 확보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조업 해서 5% 남기기도 어렵지만 환차손으로 10% 까먹기는 쉽다는 걸 중소기업 사장들이 빨리 인식해야 한다”며 “혹시나 환율이 올라가면 이익을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버리고, 환율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더욱 큰 문제는 지난해 5월 이후 9개월째 지속되는 원-달러 환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 대부분이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 하락에 따른 대비책이 있는지 묻자 응답 기업 10곳 중 3곳이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답했다. 대책이 있다는 기업도 원가 절감(58.3%)을 통해 버티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이 자력으로 환헤지를 하기 어렵다면 정부 차원에서 중소기업의 환헤지를 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정부가 중소기업을 모아 이들을 위한 ‘공동 상품’을 만들어 환율 변동에 대비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선물환 계약 ::

미래의 환율을 미리 확정해 놓는 계약. 기업이 ‘1개월 후 달러당 1000원’으로 은행과 계약을 맺어 놓았는데, 현재 1000원인 달러당 원화 환율이 한 달 만에 900원으로 떨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환율 변동으로 기업 소유의 1달러가 1000원에서 900원으로 줄겠지만 선물환 계약 덕분에 1000원을 유지할 수 있다.

:: 환변동보험 ::


기업이 환율 변동으로 손해를 입는 경우를 대비해 미리 보험료를 내고 손실을 보전하는 상품.

신수정·한우신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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