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의 함정]<4>금리정책으론 안된다

  • 입력 2003년 4월 16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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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발연구원(KDI)은 10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3%에서 4.2%로 낮추면서 경기하강과 시중자금난을 완화하기 위해 금리정책을 신축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현은 완곡하지만 금리를 낮출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금리인하를 반겨야 할 기업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지금 투자를 안 하는 것은 금리부담 때문이 아닌데 왜 엉뚱한 처방을 내리느냐는 것. 물가안정을 중시하는 한국은행은 기본적으로 금리인하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경제정책 운용을 책임지고 있는 재정경제부 안에서도 “투자가 늘기는 어렵겠지만 심리적 효과를 기대해 보자는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기업 현장의 목소리〓저투자와 그에 따른 저금리가 경기변동의 결과라면 다행이다. 경기란 변동하기 마련이고 경기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면 된다. 경기부양이라는 거시정책도 도움이 된다. 이것이 기업경쟁력이라는 미시적 원인 때문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중견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인 A사장은 “자금시장이 정작 필요한 곳에는 돈을 공급하지 못하는 동맥경화증에 걸려 있다”면서 “금리만 낮춰서는 이를 개선하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기업 구조조정본부 B상무는 수익이 예상되더라도 투자원금을 회수하는데 걸리는 기간이 길어지면 흑자도산을 할 가능성이 있다”며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보고 돌발상황에 대비해 현금을 움켜쥐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형 유동성 함정’〓일본은 1990년대 초반 시작된 부동산거품 붕괴와 경기불황이 장기화하자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을 시도한다. 이에 따라 1995년 7월에는 금리가 0%대로 떨어진다.

제로금리 시대가 열리자 경기는 약간 상승세로 돌아섰지만 폭도 작았고 지속기간도 2년에 불과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기간을 경기상승기로 봐야할지 여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을 정도.

동남아 외환위기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은 일본은 99년 ‘제로금리정책’을 공식화한다. 그러나 금리를 낮출수록 저축만 늘어나고, 경기가 회복될 기미는 아직까지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으면서 기업이 금융기관에 저축하고 가계가 빌려다 쓰는 현상이 구조화하고 있다.

▽전문가 의견〓LG경제연구원 송태정(宋泰政) 책임연구원은 “금리인하로 추가적인 경기하락을 막을 수는 있겠지만 투자 활성화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주장했다. 금리인하로 가계부문의 자금수요가 늘어 일본형 ‘유동성 함정’에 빠질 가능성은 적지만 돈이 기업으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것. 그는 “한국 기업들이 이제는 선진기업과 마찬가지로 신산업을 찾아나서야 하는데 아직 적응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임병준(林秉俊) 수석연구원은 “지금도 금리가 너무 낮아 한계기업의 퇴출이 지연되고 있다”면서 “금리가 더 떨어져 소비를 자극한다 해도 가계대출의 급증과 부실화라는 더 큰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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