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라이트]4부<1>시장경제에서 국가 역할

  • 입력 2005년 2월 16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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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본보가 연재한 ‘뉴 라이트(New Right)’ 시리즈를 계기로 점화된 뉴 라이트 운동이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 뉴 라이트의 이념을 표방하는 시민, 사회단체가 잇따라 결성되고 이들 단체 간의 연대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운동이 맹아기(萌芽期)를 지나 착근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뉴 라이트 운동의 이념적 좌표와 목표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여전히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본보는 정치 경제 사회 대북문제 등 각 분야의 뉴 라이트 운동의 핵심 쟁점에 관한 뉴 라이트 진영의 전문가와 이에 비판적인 전문가 간의 연쇄 대담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뉴 라이트 운동의 지향점이 좀 더 분명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뉴 라이트를 지향하는 시민, 사회단체들은 한결같이 시장경제를 경제 분야의 핵심적 이념으로 채택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 시스템은 이제 과거의 정부 주도에서 벗어나야 하며, 시장이 더 많은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특히 뉴 라이트 이념에 동조하는 학자들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자칫 ‘결과의 평등’을 중시하는 ‘좌(左)편향’의 경제정책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반면 진보·개혁적인 학자들은 한국사회에서 정부의 시장개입은 빈부격차 등 사회적 불평등의 해소를 위해 여전히 필요하다고 반박한다. 뉴 라이트 진영에 속한 김종석(金鍾奭) 홍익대 교수와 진보적 시각을 갖고 있는 이찬근(李贊根) 인천대 교수가 14일 본사 8층 회의실에서 시장경제에서의 국가와 정부의 바람직한 역할에 관해 대담을 가졌다.》

▼정부주도 경제의 득실▼

○ 시장경제에서의 정부의 역할

▽김종석 교수=정부 또는 국가의 기능을 얼마나 신뢰하느냐는 경제학적으로 좌우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자유’와 ‘형평’ 중 자유를 강조하는 쪽은 시장의 효율을 중시하는 우파로, 형평을 중시하는 쪽은 정부에 더 많은 역할을 기대하는 좌파로 분화했다. 뉴 라이트는 정부보다 시장에 더 많은 것을 맡겨야 한다는 쪽이다.

▽이찬근 교수=한국에서는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의 주류가 모두 시장을 인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의 보수는 개발독재 시대에 정부의 주도적 역할을 받아들였지만 1980년대 후반 이후 서구 모델에 따라 친시장적으로 변화했다. 진보 진영은 김대중(金大中) 정부 이후 제도권에 진입하면서 기득권 질서를 해체하는 방법론으로 친시장적 정책을 선택했다. 시장개방을 통한 금융산업 개편이 대표적인 예다. 이 때문에 국가와 시장으로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데 혼선이 빚어졌다.

○ 경제 발전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

▽김=1970, 80년대 한국경제 발전은 정부가 주도했다. 형평이 아니라 성장을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는 우파적이었고, 중화학공업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민간기업이 주도했다는 점에선 시장 친화적 방식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소수 엘리트에 의한 정부 주도형 발전 전략이 한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계속된 것이 문제였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비롯한 한국경제의 위기도 여기서 비롯됐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정부를 모든 경제, 사회적 문제에 개입하는 ‘유비쿼터스 핸드(Ubiquitous Hand)’라고 비판했을 정도로 현재 한국 정부의 시장 개입은 과도한 수준이다.

▽이=한국경제가 1차 도약을 하는 데 국가 주도적 특성은 큰 역할을 했다. 현재 한국경제의 문제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던 정부가 급격히 ‘졸속(拙速) 퇴진’하면서 지배구조의 공백이 생긴 데 있다. 2차 도약을 해야 하는데 세계 질서는 ‘국가의 퇴진’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갈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이 정부의 역할을 배제한 채 시장 기능만으로 도약이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다. 한국 사회에 맞는 수준의 시장을 조성하는 데도 국가는 여전히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


▼바람직한 정부개입은▼

○ 시장 실패 해결 위한 정부의 개입

▽이=빈부격차 등은 자본주의 경제의 체제적 결함인 만큼 국가가 일정수준 개입해야 한다. 특히 한국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글로벌 시장논리에 편입돼 이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극단적인 빈부의 양극화로 치달을 수 있다.

선진국들은 대부분 사회복지를 위해 한국에 비해 ‘큰 정부’를 갖고 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시장에 대한 정부의 직접 개입은 줄지만 사회복지 규모는 커지기 때문이다.

▽김=시장경제는 속성상 ‘결과의 평등’을 보장할 수 없으며, 취약 계층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해소해야 할 문제는 빈부의 양극화가 아니라 빈곤의 확산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정부의 역할도 격차의 해소가 아니라 빈곤의 해소가 돼야 한다.

또 부유세처럼 인위적으로 격차를 줄이기 위한 시스템을 도입하면 나눠주는 쪽은 의욕을 잃고 분배받는 계층은 의존성이 생겨 생산성의 악화를 피할 수 없다. 복지 정책은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것이 뉴 라이트의 논리다.

○ 일자리 창출과 노동문제

▽이=성장과 분배는 상충되는 개념이 아니며 이를 연결하는 것이 일자리다. 또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는 정부가 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선진국의 경우 사회복지 부문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 제조업 근로자 숫자를 넘어서기도 한다. 새로운 기술을 가르쳐 생산성 있는 인력을 만드는 것도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다. 시장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뉴 라이트의 이념은 이런 점에서 취약점을 안고 있다.

▽김=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것인 만큼 정부는 기업 활동을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또 일자리보다 일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일거리가 없는 상태에서 정부 예산을 들여 ‘사회적 일자리’만을 늘린다면 규모만 큰 비효율적 정부로 갈 수밖에 없다.

정리=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시장 vs 정부 논란의 역사▼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불리는 시장의 기능과 ‘보이는 손’인 정부의 기능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논의는 경제학의 역사만큼 오래됐다.

유럽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지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중상주의 시대’. 절대왕조는 상업을 통한 국부의 증대를 꾀하기 위해 무역 등에 대한 정부 개입을 강화했다.

18세기 중엽 산업혁명과 함께 자유주의 사상이 확산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애덤 스미스 등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최소한의 기능만 하고 나머지는 시장에 맡길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19세기 말 경제 불황 타개 방안으로 유럽 각국이 보호주의 정책을 취하면서 정부의 개입은 다시 커졌다. 특히 세계 경제가 ‘대공황’(1929∼1933년)에 빠져들고 곧이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정부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됐다.

2차대전 이후 동유럽과 아시아의 많은 국가에는 정부가 시장의 역할을 대신하는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섰다. 유럽에도 ‘복지 국가’의 개념이 등장하면서 정부의 역할이 비대해졌다. 그러나 ‘영국병’으로 상징되는 정부 개입의 부작용이 부각되면서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신(新)자유주의 물결’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영국의 마거릿 대처 행정부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작은 정부’와 시장경쟁을 지향하는 정책을 폈다.

1980년대 말부터 동유럽과 소련의 사회주의 정권이 잇달아 무너지면서 ‘정부의 실패’가 경제 효율성 상실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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