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탄핵, 憲裁에 맡길 때다

  • 입력 2004년 4월 5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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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철회하기 위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의 양자회담을 제안한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한 해법이 아니라고 본다. 정 의장은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지 서로간의 상처와 앙금, 국론 분열, 국가적 에너지의 낭비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제안의 적실성을 떠나 그런 가능성을 우려하는 국민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실기(失機)했다.

벌써 헌재의 재판 절차가 상당히 진전됐다. 1, 2차에 이어 3차 공개변론 날짜까지 잡혔고, 국회 소추위원측은 노 대통령의 측근을 포함해 29명에 대한 증인신청도 마쳤다. 관심은 이제 노 대통령이 공개변론에 출석할 것인지에 쏠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철회를 거론하는 것은 새로운 논란거리만 만들어 낼 가능성이 더 높다.

철회를 원했다면 좀더 서둘렀어야 했다. 탄핵 역풍이 불면서 지지율이 급등했을 때 한발 물러서서 탄핵안 판결 이후를 걱정했어야 했다. 탄핵안 국회통과 후 총선구도를 ‘탄핵 찬성 대 반대’로 몰아가 놓고 이제 와서 철회하자고 한다면 누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겠는가. 정 의장의 제안에 대해 한나라당이 “‘노인 폄훼’ 발언에 따른 반발을 무마하고 탄핵 불씨를 다시 살리기 위한 고도의 정략”으로 보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지금으로선 차분하게 헌재의 판결을 기다리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다. 그렇지 않아도 총선이 인물과 정책대결은 사라지고 탄풍(彈風) 노풍(老風) 박풍(朴風) 등 온갖 바람에 휩쓸리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탄핵문제만이라도 탈(脫)정치화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헌재 판결 이후의 혼란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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