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공천 新풍속도]떠도는 정치신인들…이黨 저黨 기웃

  • 입력 2004년 1월 12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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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의 의중에 따라 ‘공천=당선’이라는 등식이 적용됐던 ‘3김 정치’가 해체되면서 정치지형에 일대 변화가 일고 있다.

특히 ‘계보 공천’ ‘낙하산식 공천’이라는 구질서는 해체됐지만 새 질서의 ‘교본’은 아직 형성되지 않아 정치 진입을 꿈꾸는 신진들은 어느 곳에 줄을 서야 할지 몰라 한겨울 ‘빙어떼’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형국이다. 17대 총선 공천의 새 풍속도를 시리즈로 점검해본다.》

‘386 세대’ 전문직 종사자인 A씨가 공천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신세가 된 것은 지난해 6월부터다.

처음에 고등학교 선배인 민주당 L의원의 권유로 서울 지역구 중 한 곳에 뛰어들어 공을 들이기 시작한 그는 3개월 후 민주당이 분당되자 얼떨결에 선배를 따라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했다. A씨는 신당 내 연줄을 총동원해 지도부에 줄을 댔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열린우리당 내에는 ‘386 전문직’이 넘쳐났고 희소가치가 적었다. A씨는 결국 지난해 12월 한나라당 문을 두드린 끝에 지난주 공천 신청을 마쳤다.

“여야 선배 의원들이 그러더군요. 어느 당에 입당하느냐보다 좋은 지역에 공천받아 당선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요.”

그는 6개월 동안 ‘정치 견습비용’으로 5000여만원을 날렸다.

민주당 당직자 이모씨는 9일 김혁규(金爀珪) 전 경남도지사의 열린우리당 입당 장면을 TV로 지켜보다 깜짝 놀랐다. 며칠 전 민주당에 공천신청을 냈던 L씨가 김 전 지사와 함께 만세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

“어, 저 사람, 왜 저기 가 있지.”

이씨는 순간 김 전 지사가 민주당에 입당한 것으로 착각했다고 한다.

4당구도로 치러질 4·15 총선의 전망이 ‘시계 제로’의 짙은 안개에 가려져 있는 것과 비례해 공천과 표를 찾아 빙어떼처럼 몰려다니는 후보자들의 부유(浮遊)현상이 어느 때보다 극심하다.

후보자들의 ‘공천 유전(流轉)’ 현상을 더욱 부추기는 것은 지역주의가 완벽하게 지배했던 시절과 달리 ‘대안 정당’이 설 자리가 생겼다는 점이다. “이 당이 유리하지만, 저 당이라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자연히 선거구 선택에서도 ‘눈치 보기’가 극심하다. 한나라당 당직자인 B씨는 서울 강남권에서 출마를 결심했다가 거물 인사들이 앞 다퉈 공천을 신청할 기미를 보이자 지난해 말 서울 강북으로 지역을 바꿨다. 그러나 그마저 여의치 않자 얼마 전 수도권 신도시 지역구에 공천신청을 했다.

호남출신인 민주당 C씨. 그는 고향 현역 중진의원이 이번에 ‘물갈이’될 것으로 예상, 지난해 1월부터 일찌감치 표밭갈이에 나섰다. 그동안 ARS 여론조사를 두 차례 실시하느라 1200만원이 들었고, 사무실 임대료 1000만원, 조직가동비 1300만원 등 총 3500만원을 썼다. 그러나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으로 호남민심이 민주당 쪽으로 쏠리면서 이 중진의원의 입지가 오히려 탄탄해지자 그동안의 투자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됐다. 지난해 11월 손을 털고 고향을 떠난 그는 호남인구가 많은 수도권의 한 지역에서 새 출발을 시작했다.

‘3김’이 주도해온 ‘낙점식 공천’에 익숙해 있던 정치권 인사들이 이처럼 이리저리 헤매고 있지만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 한 가지 철칙은 있다. 빙어떼가 최종적으로 원하는 먹이, 그것은 바로 ‘금배지’라는 것이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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