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러고도 상생정치하자고?

  • 입력 2000년 12월 31일 18시 12분


새해 덕담을 건네기가 민망할 정도로 정치가 비틀리고 있다. 민주당의원 3명이 자민련으로 적을 옮겨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케 한 것은 양당이 어떤 변명을 해도 ‘대국민 기만극’이란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새 정치의 희망을 얘기해야 할 새해 아침에 희망은커녕 먹구름만 가득하니 집권측은 도대체 이 정치를 어디로 몰고 가자는 것인가.

국회의원은 무슨 보릿자루처럼 꿔주거나 빌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특정정당의 이익을 위해 정파간에 주고받는 ‘공’일 수도 없다. 그들은 국민 대표이자 그 자신이 헌법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주당과 자민련은 이런 국회의원을 공처럼 가지고 놀며 국민을 우롱했다. 국민이 표로 위임한 대표성과 헌법기관으로서의 존엄성을 훼손했다.

국민이 내려준 결정을 집권 편의를 위해 멋대로 뒤집고 국민의 믿음을 정면으로 배신하는 이런 상황에서는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조차 사치다. 벌써 한나라당은 이번의 기만적인 자민련 교섭단체 만들기를 ‘정치적 친위 쿠데타’로 규정했다. 자민련을 민주당의 ‘임대 정당’이라며 법원에 ‘교섭단체 등록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피튀기는 싸움을 한 것도 모자라 새해 벽두부터 정치를 법정으로 끌어내야 하는 판이니 국민이 정치에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여당이 대화와 타협에 의한 시스템의 정치를 외면하고 하는 일마다 음모의 냄새만 풍기니 올해 정치가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뻔하다는 한탄이 나오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민주당과 자민련의 ‘말 같잖은’ 변명도 국민의 자조(自嘲)를 깊게 한다. “세 의원의 당적변경을 사전에 몰랐다”느니 “당과는 상관없는 자유의사”라고 둘러대는 모습은 가소롭다 못해 가증스럽다. 오히려 떳떳하게 “자민련 교섭단체 문제가 계속 정치의 발목을 잡아왔기 때문에 취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터놓았다면 이처럼 국민의 비웃음을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의 신년회담이 예고된 상황에서 돌출한 이번 파동은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김대통령은 신년사에서도 상생(相生)의 정치를 얘기했다. 그러나 현실은 뒤통수를 치는 상극(相剋)의 정치로 치닫고 있다. 이런 식의 신의 없는 정치, 술수정치로는 위기극복도, 경제회생도, 국민통합도, 지역화합도 될 리가 없다.

바르고 성숙한 정치에의 기대가 무산된 채 새해를 맞는 국민의 아픔에 대해 집권측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