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장 그래픽 처리장치(eGPU)는 PC 시장의 아픈 손가락 중 하나다. 개념은 완벽했다. 얇고 가벼운 울트라북을 들고 다니며 업무를 보다가 집에 돌아와 케이블 하나만 꽂으면 고성능 게이밍 데스크톱으로 변신한다는 상상은 모든 하드웨어 마니아들의 로망이었기 때문이다.
현실은 냉혹했다. eGPU 개발 당시 적용된 썬더볼트(Thunderbolt) 3·4 기술의 40Gbps 대역폭이 발목을 잡았다. 데이터 전송 속도가 부족해 eGPU 성능이 데스크톱 대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크기도 문제다. 데스크톱 그래픽카드를 꽂아야 하는 eGPU 장비는 웬만한 소형 데스크톱 본체만큼 크고 무거웠다. 휴대성은 사라지고 성능은 타협해야 했던 계륵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노트북 PC 사용 방법의 변화로 다시 eGPU가 주목받았다. 재택과 사무실 업무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워크가 일상화되면서 집에서는 고성능, 밖에서는 휴대성이라는 수요가 발생했다. 게임기처럼 휴대하며 PC 게임을 즐기는 게이밍 UMPC(Ultra Mobile PC)의 등장도 eGPU의 필요성을 증명했다. 게이밍 UMPC는 휴대성은 좋지만 내장 그래픽만으로 AAA급 게임을 즐기기엔 부족했기 때문이다.
에이수스 ROG XG 모바일 GC34R-034는 기존 eGPU의 고질적 문제인 휴대성과 기능성을 해결하는 데 집중한 제품이다. 노트북용 지포스 RTX 5070 Ti 그래픽카드를 활용해 휴대성과 성능을 챙겼고, 멀티포트 기능을 추가해 기능성을 확보했다.
소설책 크기로 작아진 RTX 5070 Ti 그래픽카드
에이수스 ROG XG 모바일 GC34R-034를 처음 마주했을 때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크기다. 길이 208mm, 높이 155mm, 두께 29.6mm 정도로 일반적인 하드커버 소설책 정도다. 두께가 3cm를 채 넘지 않아 휴대가 용이하다. 무게는 950g으로 고성능 그래픽카드가 탑재된 제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가벼운 편에 속한다. 출장이나 외부 작업이 잦은 소비자라면 이동성 측면에서 장점으로 다가온다.
에이수스 ROG XG 모바일 GC34R-034 / 출처=IT동아
본체는 블랙 컬러를 기본으로 하되, 케이스를 반투명 소재로 처리해 내부 회로 기판과 전원 모듈을 노출시켰다. 반투명 패널 너머로 보이는 메인보드와 전원 공급 유닛의 배치는 깔끔하다. RGB 조명을 통해 빛을 발하는 ROG 로고는 시각적 포인트를 만든다.
에이수스 ROG XG 모바일 GC34R-034는 중간 크기 이상의 백팩에 들어갈 정도로 소형화된 점이 특징이다 / 출처=IT동아
하단에는 기기를 비스듬히 세우는 힌지 스탠드가 제공된다. 이전 세대보다 얇은 형태로 책상 위 공간을 덜 차지하도록 설계됐다. 수평으로 놓는 것도 가능하지만, 수직으로 세워두면 공기 흐름이 개선돼 냉각에 유리하다.
외부 확장 기능을 추가하면서 기기 활용도를 높였다 / 출처=IT동아
기능적 요소도 충실하다. 상단에는 썬더볼트(Thunderbolt) 5 단자(USB-C형)가 제공된다. 외부 장치 전용 연결단자로 노트북 혹은 호환 PC에 연결하면 된다. 이 외에 추가 Thunderbolt 5 단자, 디스플레이 포트(DisplayPort), HDMI 등 영상 출력단자도 갖췄다.
실내 및 외부에서 기기를 활용하기 위한 단자도 충실하다. 네트워크(RJ-45) 단자, A형 USB 3.2 Gen2 단자 2개, SD 카드 리더기도 제공된다. 모든 단자들이 적절한 위치에 있어 케이블 관리가 용이하다. 다만 일부 포트는 대역폭을 공유하는 구조다. 5Gb LAN, SD 카드 리더기, A형 USB 단자가 총 10Gb 대역을 쓴다. 모든 단자를 동시에 연결하면 각 포트가 최대 속도를 내기 어렵다. 가령 A형 USB 단자는 각각 2.5Gb까지만 쓸 수 있다고 보면 된다. 환산하면 단자당 약 312.5MB(메가바이트)다.
소형화와 고성능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
에이수스 ROG XG 모바일 GC34R-034에는 엔비디아 지포스 RTX 5070 Ti 노트북용 그래픽 처리장치(Laptop GPU)가 탑재됐다. 이 GPU는 블랙웰(Blackwell) 설계 기반의 GB205 칩을 사용하며, 쿠다코어(CUDA Core) 5888개를 제공한다. 작동속도는 상황에 따라 847MHz에서 1995MHz 사이를 오간다.
메모리는 12GB GDDR7 사양이다. 192비트 인터페이스로 데이터를 주고받는다. 메모리 대역폭은 초당 672GB에 달한다. 여유로운 메모리 전송대역은 복잡한 3D 데이터 및 인공지능 관련 계산을 처리하는 데 필수다. 메모리 용량과 인터페이스 수치가 높을수록 고해상도 처리에 유리하다.
TGP(Total Graphics Power)는 최대 115W다. 노트북용 GPU 중에서 높은 수치지만, 데스크톱 GPU만큼은 아니다. 물론, AAA급 게임을 QHD(2560 x 1440) 수준 해상도에서 쾌적하게 구동 가능한 성능이다. 물론, 빛을 실시간 처리하는 레이트레이싱(광선추적)을 설정하면 프레임이 떨어지지만 인공지능 가속 기술인 DLSS로 일부 해결 가능하다.
에이수스 ROG XG 모바일 GC34R-034를 같은 제조사 제품에 연결하면 아머리 크레이트에서 자동 인식 후 관리한다 / 출처=IT동아
에이수스 ROG 엑스박스 엘라이(Xbox Ally) X에 에이수스 ROG XG 모바일 GC34R-034를 연결해봤다. 호환되는 에이수스 PC 제품은 별도의 설정 없이 자체 관리 소프트웨어인 아머리 크레이트에서 자동 감지된다. 지포스 그래픽카드 드라이버까지 알아서 설치해 준다. 다만, 최신 드라이버가 아니므로 필요에 따라 추가 설치는 필요하다.
지포스 RTX 5070 Ti 기반이므로 게임 내 DLSS 관련 설정(지원 게임 한정)이 가능하다 / 출처=IT동아
기기가 연결되면 그래픽 가속은 에이수스 ROG XG 모바일 GC34R-034로만 진행된다. 지포스 RTX 5070 Ti가 연결된 PC라고 생각하면 된다. 게임 내 그래픽 효과를 높여도 되고, 게임을 부드럽게 표현하는 프레임 생성(MFG - Multi Frame Generator) 기술 적용도 가능하다. 에이수스 ROG 엑스박스 엘라이 X로 아이온2를 실행하니 그래픽 옵션에 엔비디아 관련 기능이 출력됐다. 기본 상태에서는 적용하지 못했던 기능들이다. 에이수스 ROG 엑스박스 엘라이 X에는 AMD 그래픽 처리장치만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포스 RTX 5070 Ti의 성능 덕분에 아이온2가 쾌적하게 실행된다 / 출처=IT동아
게임 실행도 쾌적하다. 에이수스 ROG 엑스박스 엘라이 X에 적용된 내장 그래픽 처리장치와 지포스 RTX 5070 Ti와는 성능 자체가 차원이 다르다. 기본 상태에서는 아이온2의 그래픽 효과를 모두 낮춰도 부드러운 움직임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에이수스 ROG XG 모바일 GC34R-034를 연결하면 모든 그래픽 효과를 활성화해도 끊김이 없다. 더 부드러운 움직임을 원한다면 프레임 생성 기술을 적용하면 된다.
클레르 옵스퀴르 : 33 원정대를 실행한 모습. 좌측이 내장, 우측이 지포스 RTX 5070 Ti로 실행한 화면이다. 각각 기기 기본 설정으로 인물 묘사나 그림자 표현 등 그래픽 품질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 출처=IT동아
그래픽 효과의 차이는 몰입에도 영향을 준다. 일반적으로 내장 그래픽은 전력소모와 반도체 크기 때문에 고성능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는 게임 그래픽에도 반영된다. 일부 표현 품질이 낮아지거나 뭉개지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최근 인공지능 가속 기술로 표현력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나 하드웨어의 한계를 극복하는 건 어렵다.
클레르 옵스퀴르 : 33 원정대의 예로 그래픽 효과의 차이를 비교했다. 먼저 에이수스 ROG 엑스박스 엘라이 X의 성능을 최대로 설정한 뒤 게임을 실행하면, 자동으로 가장 낮은 그래픽 옵션이 설정된다. 여기에 AMD의 인공지능 가속 기술인 FSR(Fidelity Super Resolution)을 적용하면 원거리 표현은 무난하지만, 인물 묘사 품질은 떨어진다. 그림자를 겹치면 품질저하가 두드러진다.
반면, 에이수스 ROG XG 모바일 GC34R-034를 연결하면 그래픽 옵션을 최대한 높이는 게 가능하다. 이때 인물과 그림자 사이의 표현이 크게 개선된다. 얼굴 묘사도 자연스럽고, 의류의 주름이나 배경의 선명도 또한 개선된다. 같은 화면이라도 더 나은 그래픽으로 부드럽게 게임을 즐기는 것이 몰입에 도움이 된다. 에이수스 ROG XG 모바일 GC34R-034의 역할이 부각되는 부분이다.
에이수스 ROG 엑스박스 엘라이 X(위)와 ROG XG 모바일 GC34R-034(아래)의 3D마크 파이어 스트라이크 테스트 결과 / 출처=IT동아
성능 차이도 두드러진다. 먼저 성능 측정 소프트웨어인 3D마크 파이어 스트라이크를 실행했다. 풀HD 해상도의 일반 그래픽 처리를 테스트한다. 테스트 결과, 에이수스 ROG 엑스박스 엘라이 X의 내장 그래픽 점수는 8970이다. 이어 테스트한 에이수스 ROG XG 모바일 GC34R-034의 그래픽 점수는 3만 1491이다. 약 3배 가까운 차이다.
에이수스 ROG 엑스박스 엘라이 X(위)와 ROG XG 모바일 GC34R-034(아래)의 3D마크 타임 스파이 테스트 결과 / 출처=IT동아
광원, 반사 처리 등 최신 그래픽 효과를 적용한 환경에서는 차이가 더 벌어진다. 3D마크 타임 스파이 테스트에서 에이수스 ROG 엑스박스 엘라이 X의 그래픽 점수는 3266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에이수스 ROG XG 모바일 GC34R-034의 그래픽 점수는 1만 4651점에 달한다. 증가폭은 약 350% 수준이다. 같은 환경에서 그래픽 가속 장치만 바뀌어도 게임 경험 자체가 달라지는 셈이다.
어디서든 고성능, 새로운 경험을 위한 도구
에이수스 ROG XG 모바일 GC34R-034의 차별점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휴대성과 성능의 균형이다. 대부분의 외장 GPU는 데스크톱용 그래픽카드를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크고 무거운 형태로 제공된다. 하지만 에이수스 ROG XG 모바일 GC34R-034는 처음부터 들고 다니는 그래픽 가속기를 목표로 했다. 노트북용 GPU를 사용해 게이밍, 인공지능, 영상편집 가속 등 다양한 작업이 가능하다.
두 번째는 썬더볼트 도킹 스테이션과의 통합이다. 일반적인 외장 GPU는 그래픽 가속만 제공하지만, 에이수스 ROG XG 모바일 GC34R-034는 네트워크, USB 허브, 디스플레이 출력 기능을 모두 담았다. 하나의 Thunderbolt 케이블로 노트북을 연결하면 즉시 완전한 데스크톱 환경이 구축된다. 별도의 도킹 스테이션을 살 필요가 없어지니 비용과 공간 모두 절약된다.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200만 원 이상 고가라는 점이다. 에이수스 ROG XG 모바일 GC34R-034는 온라인에서 219만 원~229만 원대에 판매 중이다. 데스크톱용 지포스 RTX 5070 Ti가 120만 원~150만 원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가격이다. 성능을 포기하면 같은 비용으로 초슬림 노트북 구매가 가능할 정도다.
에이수스 ROG XG 모바일 GC34R-034 / 출처=IT동아
하지만 이 제품은 특정 소비자에게는 기존 선택지들이 제공하지 못했던 특별한 가치를 지녔다. 평소 가벼운 울트라북으로 이동해 업무를 보다가 집이나 사무실에서는 하나의 케이블로 고성능 워크스테이션 구축이 가능하다. 카페에서 가벼운 작업을 하다가 숙소로 돌아와 4K 영상 렌더링을 진행하거나, 출장 중에도 AAA 게임을 최고 옵션으로 즐길 수 있다.
데스크톱 PC를 주로 쓰거나, 노트북 내장 GPU만을 쓰는 소비자에게는 과한 투자다. 하지만 이동성과 성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 싶다면 에이수스 ROG XG 모바일 GC34R-034는 진지하게 고려해볼 만한 선택지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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