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필름은 2025년 12월 15일, 2026 AI 미디어 서밋을 개최했다 / 출처=IT동아
2025년 12월 15일, 스톤필름은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서울 중구 소재)에서 2026 AI 미디어 서밋(2026 AI Media Summit)을 개최하고 인공지능(AI) 기술이 영상 제작 생태계에 미칠 영향과 산업 구조 재편 가능성을 논의했다. 스톤필름이 개발 중인 AI 영상 제작 플랫폼 스카퍼(SKAPER)도 함께 공개됐다.
현장에 공개된 스카퍼는 참석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여느 생성형 영상 플랫폼과 달리 작업자와 AI를 자동으로 연결하는 노드 기반 AI 영상 제작 워크스테이션의 면모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송준수 스톤필름 대표는 “생성형 영상 제작 플랫폼은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여러 작업을 거쳐야 한다. 반면, 스카퍼는 명령어 입력에 시간을 쏟을 필요가 없다. 오직 대본과 기획에만 집중하면 된다”고 말했다.
2026 AI 미디어 서밋에는 영상 제작, 미디어, 콘텐츠 분야의 관계자들이 참석하여 K-콘텐츠 산업이 ‘생성형 AI’라는 도구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벌였다. 이들은 비용 절감과 효율화라는 생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했다.
스톤필름은 AI 미디어 서밋을 매년 정기 개최할 방침이다. AI 미디어 서밋이 영상 분야의 AI 기술 발전상을 알리고 생태계를 확장하는 이벤트로 자리매김할 계획이다.
대본과 기획에 집중, 스카퍼가 제시하는 AI 영상 제작 혁신
스톤필름은 뮤직비디오, 광고, 브랜드 필름, 영화, 예능 프로그램 전문 제작 프로덕션이다. AI 기반 특수효과(VFX) 기술로 영상 제작의 영역을 확장해왔던 스톤필름은 2025년부터 생성형 AI 영상 제작 플랫폼 기업으로 방향을 전환, 스카퍼 개발에 집중했다.
스카퍼는 대형언어모델(LLM) 기반 영상 생성 플랫폼이다. 대부분 생성형 AI 영상 제작 도구들이 사용자에게 복잡한 프롬프트 작성을 요구하는 것과 달리, 스카퍼는 대본이나 시놉시스(전체 흐름 요약)를 입력하면 영상이 생성된다. 마치 전문 제작 인력이 파이프라인을 따라 작업하듯, AI가 각 단계를 자동으로 처리하는 구조라는 송준수 대표의 설명이다.
스톤필름은 노드 기반 영상 제작 플랫폼, 스카퍼(SKAPER)를 공개했다 / 출처=IT동아
스카퍼의 차별점은 직관성이다. 사용자가 제공한 대본, 시놉시스를 AI가 분석해 장면을 구성하고, 각 장면에 필요한 시각적 요소들을 생성한다. 대본 분석 단계에서는 스토리 구조와 캐릭터 관계를 파악한다. 소스 제작 단계에서는 배경, 캐릭터, 소품 등을 생성한다. 세부 제작 과정까지 거치면 720초 단위의 영상 클립이 만들어지며, 각 씬(장면)마다 최적의 카메라 워크와 구도가 자동 설정된다.
송준수 대표는 콘텐츠의 일관성 유지 능력도 언급했다. 일반적인 AI 영상 생성 도구는 장면마다 캐릭터나 배경이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구글(나노 바나나), 오픈AI(소라) 등이 최신 모델을 적용하면서 결과물의 일관성 유지 능력이 향상됐다. 스카퍼는 프로젝트 전체를 분석해 일관성을 유지한다. 캐릭터 외형, 배경의 색감과 분위기를 일관되게 유지하도록 설계했다.
스톤필름은 스카퍼를 2026년 상반기에 서비스할 예정이다. 현재 보유한 생성 기술을 일반 사용자가 활용하도록 고도화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송준수 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기업 간 협업이나 공동 제작 진행이 가능한 상황이다. 스카퍼를 전문 제작 기업이 활용할 경우, 기술 지원을 통해 AI 제작 환경을 구축해 준다.
김성모 작가의 작품을 스카퍼로 제작해 2027년 공개할 예정이다 / 출처=IT동아
요금제는 8만 원, 20만 원, 50만 원 등 세 가지로 나눴다. 기본이 될 8만 원 이상 요금제는 스카퍼의 핵심인 노드 시스템과 콘티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이와 별개로 사용한 만큼 비용을 지불하는 크레딧 차감 요금제도 제공한다. 송준수 대표는 “수정 작업이 빈번한 영상 제작 환경 특성상 안정적인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요금제를 설정했다. 기본 요금제 이상 서비스는 노드를 설계하고 렌더링(생성) 직전에 도달했을 때 설정 값에 따라 소모 크레딧이 계산되어 표기될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스카퍼는 영문만 지원한다. 향후 업데이트를 통해 한글 지원도 진행할 예정이다. 스카퍼를 활용한 영상도 공개된다. 2026년 1월 발송 예정인 웹 드라마 머더클럽에 스카퍼 AI 영상 기술이 적용된다. 김성모 작가의 웹툰 킬러 핵탄두를 2027년 영화화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AI 시대, 콘텐츠 권리보호와 시장 규범 재설계해야
손승우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은 ‘AI 콘텐츠 제작, 권리보호, 시장규범의 재설계’를 주제로 강연했다. 30년간 지식재산 분야에서 일해온 그는 AI가 콘텐츠 산업에 가져올 근본적 변화와 함께 제기되는 법적 이슈들을 짚었다. 대표적 사례가 작곡 AI 서비스 이봄이다.
광주과학기술원이 개발한 이봄은 6년간 30만 곡을 만들고 3만 곡을 판매해 6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가수 홍진영의 노래 ‘사랑은 24시간’을 작곡해 저작권자로 이름을 올렸지만,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2024년 7월부터 AI가 만든 곡에 대한 저작권료 지급을 중단했다.
손승우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 / 출처=IT동아
손승우 고문은 “현행 저작권법은 인간 중심의 권리 체계 중심이라 기계가 만든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게 전 세계 통설이다. 하지만 미국 저작권청은 AI가 그림을 그리고 인간이 전체 스토리와 구성을 담당한 만화에 대해 일부 저작권을 인정한 사례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영상 제작에서도 AI를 부분적으로 활용할 경우 인간의 기여 부분에 대해서는 저작권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AI 저작권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결하기 위한 손승우 고문이 언급한 것은 ‘데이터 라이선싱 시장’이다. 데이터를 판매해 수익을 내는 구조를 말한다. 예로 로이터는 메타 플랫폼에 저널리즘 콘텐츠를 제공하고, 셔터스톡은 오픈AI에 이미지와 영상을 제공한다. 뉴스 코퍼레이션은 5년간 2억 5000만 달러(약 3500억 원) 규모로 오픈AI와 콘텐츠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AI 기업들은 법적 위험을 줄이고, 콘텐츠 기업들은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하는 구조다.
국내에서도 변화가 시작됐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AI 음원 서비스 ‘랄라노트’와 협약을 체결했고, AI 음악 제작 플랫폼 ‘포자랩스’는 자체 데이터로 학습한 AI로 음원 수백 곡을 제작한다. 손승우 고문은 “이제 합성 데이터 기술이 발달해 정제된 원본 데이터만으로도 고품질 콘텐츠를 생성이 가능하다. MIT 연구에 따르면 잘 정제된 합성 데이터가 실제 데이터보다 성능이 더 좋다는 결과도 나왔다”고 말했다.
변수는 국내 규제다. 손승우 고문은 우리나라에 2025년 1월 시행 예정인 ‘AI 기본법’을 언급했다. 이 법안은 AI로 만든 콘텐츠인 경우 사전 고지를 해야 하고, 시각적 워터마크 또는 비가시적 워터마크를 삽입해야 한다. 딥페이크를 규제하는 게 목적이다. 손승우 고문은 “미국과 일본은 AI 규제가 거의 없어 벤처들이 일본을 선호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규제와 육성의 균형을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도 이제 레거시 미디어, 지식재산(IP) 주권 찾아야
노가영 작가는 ‘AI 시대의 콘텐츠 산업 지형도’를 주제로 강연하며 콘텐츠 소비 패턴의 급격한 변화와 이에 따른 산업 구조 재편 필요성을 역설했다. CGV·CJ·KT·SK텔레콤 등에서 20년간 콘텐츠 전략 업무를 담당한 노가영 작가는 기술 진화에 따른 미디어 플랫폼의 변천사를 몸소 겪어온 인물이다.
노가영 작가가 제시한 핵심 키워드는 ‘커뮤니티’다. “2016년 넷플릭스가 한국에 상륙했을 때 충격을 받았던 것은 콘텐츠 장르를 8만 개로 쪼개고 소비자 취향을 2천 개로 세분화한다는 점이었다. 이미 20년 전부터 완전한 개인화 시대가 시작된 것”이라고 회상했다. 노가영 작가는 소비자들이 커뮤니티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광고를 하면 사람들이 움직였으나 현재는 소비자가 활동하는 커뮤니티에서 추천을 받아야 움직인다는 이야기다.
미디어 소비 환경도 크게 바뀌었다. 미국에서는 하루에 1만 4000 가구가 유료 방송을 해지하고 있으며, 한국도 2025년 상반기에만 케이블TV·위성TV 가입자가 18만 명 감소했다. 반면, 유튜브는 한국에서 월간 활성 사용자(MAU) 4700만 명을 기록하며 정체됐지만, 1인당 체류 시간은 증가했다.
노가영 작가 / 출처=IT동아
노가영 작가는 OTT 서비스의 레거시화(기성화)에 주목했다. 넷플릭스가 과거 방송사의 편성 기법을 그대로 쓴다는 게 이유다. 매주 금요일 오후 3시, 매주 목요일 오후 5시 등 특정 시간에 따라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게 예다. 재생시간(러닝타임)도 짧아졌으며, 광고 비즈니스 모델도 도입했다. 노가영 작가는 텔레비전을 대체하기 위한 시도라고 분석했다.
한국 콘텐츠 산업의 구조적 문제도 지적했다. 노가영 작가는 K-팝(K-POP), 게임, 웹툰은 글로벌 시장에서 B2C(소비자 직접 판매) 비즈니스를 하지만, 드라마와 영화는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에 납품하는 B2B(기업 간 거래) 구조에 갇혔다고 주장했다.
노가영 작가는 새로운 투자 유통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중 STO(증권형 토큰) 법제화에 주목했다. 예로 태국 드라마 러브 데스티니는 디지털 자산으로 개봉 전 112억 원을 투자 받고, 극장 수익 160억 원을 벌어들였다. 노가영 작가는 “디지털 증권이 제도권 위로 올라가면, 크라우드 펀딩으로 일반 대중이 특정 지식재산(IP) 지분 보유가 가능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처럼 KT와 A스토리가 각각 100억 원씩 투자해 IP를 확보한 사례도 있지만, 중소 제작사는 불가능하다. 안정적인 제작 및 수익 확보가 이뤄지려면 새로운 투자 유통 구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