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톤 생성-소멸 과정… 한일 연구팀, 자유자재로 조작 성공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7일 03시 00분


단일 분자서 초고속 관측-제어 성공
기존 현미경에 광자 검출 기능 추가
소멸 때 나오는 빛까지 실시간 관찰

테라헤르츠(THz) 빛을 조사하면 주사터널현미경(STM) 탐침(위)과 분자(X자 모양 물체) 사이에서 전하 이동이 유도된다. 이때 분자 내에서 준입자인 엑시톤이 형성되고 소멸하면서 빛이 나온다. RIKEN 제공
테라헤르츠(THz) 빛을 조사하면 주사터널현미경(STM) 탐침(위)과 분자(X자 모양 물체) 사이에서 전하 이동이 유도된다. 이때 분자 내에서 준입자인 엑시톤이 형성되고 소멸하면서 빛이 나온다. RIKEN 제공
한일 공동연구팀이 화학 반응에서 중간 단계로 나타나는 준입자인 ‘엑시톤(exciton)’을 분자 한 개 안에서 자유자재로 형성·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 결과는 차세대 에너지 소자 개발이나 다양한 화학 결합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고 새로운 양자물질을 탐색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유수 광주과학기술원(GIST) 화학과 교수(IBS 양자변환연구단장)팀은 이마다 히로시 교수,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등 일본 연구팀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단일 분자에서 발생하는 찰나의 화학적 변화를 초고속으로 관측·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 결과는 6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공개됐다.

엑시톤은 음전하(―)인 전자와 양전하(+)인 정공(hole)이 쌍을 이뤄 공존하는 준입자다. 준입자는 엄밀하게 입자는 아니지만 여러 입자가 상호작용해 나타내는 집합적인 움직임을 하나의 입자처럼 다루는 개념이다.

물질이 에너지를 흡수하면 물질 내부의 전자가 높은 에너지 준위로 올라가면서 원래의 에너지 준위에는 빈 공간인 정공이 생긴다. 이때 전자와 정공의 전기적 극성이 달라 서로 끌어당기지만 완전히 결합하지 않은 상태를 엑시톤이라고 한다.

엑시톤은 빛과 전기가 변환되는 교차점 역할을 한다. 빛 에너지로 엑시톤을 만든 후 전자와 정공이 분리돼 서로 반대 전극으로 흐르면 태양전지 등에서 쓰이는 광전변환 현상이 일어난다. 전기에너지로 엑시톤을 만든 후 전자와 정공이 재결합하면 전자와 정공의 에너지 차이만큼 빛이 발생한다. 디스플레이의 기본 원리다. 엑시톤을 만들고 전자를 빼내 반응에 사용하면 원하는 화학 반응을 정밀하게 제어하고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엑시톤은 최근 첨단 양자물질 연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양자물질 내 전자 등에 민감하게 상호작용하는 엑시톤을 쏜 뒤 일어나는 변화를 분석해 간접적으로 양자물질의 특성을 알아내는 방법이다.

엑시톤 관측에는 피코초(ps·1조분의 1초) 단위의 짧은 시간 영역을 구분할 수 있는 테라헤르츠(THz·1초에 1조 번 진동하는 주파수 단위) 빛과 주사터널현미경(STM)을 결합한 THz-STM이라는 방법이 사용됐다. STM은 끝부분이 원자 1개만큼 얇은 미세한 탐침을 사용해 물질의 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구조를 관측하는 장비다. 기존 THz-STM은 분자에 전하를 주입했을 때 일어나는 전류 변화만 측정하는 데 그쳐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STM에 광자 검출 기술을 추가한 THz-광학 STM 장치를 구현하고 팔라듐(Pd) 프탈로시아닌이라는 분자 1개를 분석했다. THz 빛의 파형을 제어해 분자에 전하를 연속적으로 주입하면서 원하는 순간에 엑시톤을 자유롭게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김 교수는 “피코초 시간 영역, 나노미터 크기에서 엑시톤이 소멸하며 내는 빛까지 실시간으로 관찰·제어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한국과 일본의 대학, 연구소, 기업이 서로의 강점을 유기적으로 총결집해 만들어낸 것으로, 연구 내용의 파급력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외교 차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김 교수는 “단일 분자의 광 제어 분야는 향후 양자 정보나 에너지 변환 분야 등으로 이어지는 핵심 원천 기술로 글로벌 경쟁이 매우 치열한 분야”라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의 선도 연구자, 기관들이 국경을 넘어 하나의 팀처럼 협력해 한발 앞서 나간 쾌거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엑시톤(exciton)

음전하(―)인 전자와 양전하(+)인 정공(hole)이 쌍을 이뤄 공존하는 준입자. 전기적 극성이 다른 전자와 정공이 서로 끌어당기지만 완전히 결합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빛과 전기가 변환되는 교차점 역할을 한다.
#엑시톤#생성#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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