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이 중국인?” 중국 게임의 도 넘은 역사 갈취[조영준의 게임 인더스트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3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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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에 대한 중국의 동북공정(중국 정부 주도로 동북방의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규정하려는 역사 왜곡) 시도가 도를 넘고 있습니다.

한국의 김치나 삼겹살을 자신들의 고유 음식이라고 우기는 경우도 있었고, 한복을 자국의 전통 복장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EPL 득점왕 축구선수 손흥민도 ‘손오공의 후예’라며 중국인의 후손이라고 우기는 황당한 중국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중국의 문화 도둑질 시도는 게임 분야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의 전통 콘텐츠가 중국 게임에 등장하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과거의 유명한 한국의 위인들까지 중국 게임에 등장시키며 자신들의 고유문화로 소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순신을 중국 문명 장수로 표현한 중국 게임사 4399 출처: 4399 홈페이지
이순신을 중국 문명 장수로 표현한 중국 게임사 4399 출처: 4399 홈페이지
일례로 지난해 7월에 중국에서 개발된 게임 ‘문명 정복: Era of Conquest’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중국 문명 속 장수로 표현되었습니다.

중국 개발사 ‘4399’의 한국 법인인 ‘4399 코리아’가 지난해 7월 15일 전 세계에 서비스를 시작한 이 게임은 각 8개국 문명의 충돌을 다룬 게임으로, 페이스북 등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순신 장군을 중국 문명 속 장수로 표현한 광고를 내보내 한국 이용자들에게 거센 반발을 받았습니다.

결국 4399 코리아는 해당 광고를 삭제하고 “이미지 제작 작업 중 편집 실수가 발생했고 별도 검수를 받지 않은 상태로 광고에 사용된 것”이라고 해명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한국 이용자들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습니다.

아이유의 모습과 복장을 거의 그대로 등장시킨 중국 게임 홍보 이미지 출처: ‘황제라 칭하라’ 홈페이지
아이유의 모습과 복장을 거의 그대로 등장시킨 중국 게임 홍보 이미지 출처: ‘황제라 칭하라’ 홈페이지
중국 모바일 게임에서는 가수 아이유와 비슷한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 서비스되고 국내에도 출시된 중국 모바일 게임 ‘황제라 칭하라’에서는 아이유와 흡사한 캐릭터가 등장했고, 이 복장이 지난 2016년에 종영한 SBS 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에서 아이유가 입었던 한복과 매우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당시에 아이유는 드라마 포스터 촬영 때 하늘색과 노란색이 섞인 한복을 입었는데, 이 모바일 게임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 하나가 아이유의 의상 색상과 비슷한 옷을 입었고, 심지어 아이유와 똑같이 꽃을 들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갓과 흡사한 아이템을 낸 중국 게임사 댓게임컴패니 출처: 댓게임컴패니 홈페이지
한국의 갓과 흡사한 아이템을 낸 중국 게임사 댓게임컴패니 출처: 댓게임컴패니 홈페이지
나아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이 글로벌 인기몰이를 하고, 한국의 갓이 전 세계 지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중국 게임에도 갓 모양의 아이템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게임사 ‘댓게임컴패니’는 자사가 개발한 게임 ‘저니’와 ‘스카이: 빛의 아이들’에 이러한 갓 모양의 아이템을 등장시켰습니다. 이에 대한 지적이 일자 이 게임사는 ‘중국 명나라 모자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것’이라는 뻔뻔한 문화 도둑질의 행태를 보여주었습니다.

한복을 중국 전통 의상을 모방한 것이라 주장한 ‘샤이닝니키’ 개발사 출처: 페이퍼게임즈 홈페이지
한복을 중국 전통 의상을 모방한 것이라 주장한 ‘샤이닝니키’ 개발사 출처: 페이퍼게임즈 홈페이지
2015년에는 중국 게임 ‘샤이닝니키’에 한복 아이템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국내에서 이 한복 아이템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샤이닝니키 개발사 ‘페이퍼게임즈’는 공지를 통해 “중국 기업으로서 우리의 입장은 항상 조국과 일치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라는 입장과 함께, 한복은 중국의 전통 의상을 모방한 것이라는 의견이 담긴 공산주의 청년 연맹 중앙위원회의 글을 공지사항에 담으며 한국 서비스를 종료했습니다. 이렇게 서비스를 종료하면서도 제대로 된 환불이나 보상도 진행하지 않아 ‘먹튀’ 논란까지 일으켰습니다.

이러한 중국 게임사의 행태를 보면 한국 시장의 수익보다 동북공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 게임사가 어떤 의도로 사업에 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중국 게임들의 연이은 동북공정 시도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게임이 한순간에 전 세계 시장으로 확산될 수 있는 콘텐츠인데다, 상대적으로 저연령층 이용자가 많아 잘못된 정보를 무분별하게 습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윤장원 동명대 미디어공학부 교수는 “중국 게임사들이 게임의 확산력을 통해 문화 도둑질을 부채질하고 있는 만큼 한국 게임 이용자들이 감시의 시선을 좀 더 강화하고 적극적으로 바로잡아야 합니다.”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한편, 이렇게 게임 내 동북공정 행위가 기승을 부리자 국회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021년 중순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중국의 동북공정을 막을 수 있도록 하는 게임산업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게임 심의를 담당하는 게임물관리위원회 심의위원으로 역사 전문가를 추가하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또 비슷한 시기에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역사왜곡 게임물 방지법’, ‘동북공정 방지법’이라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등급 분류에서 과도한 반국가적 행동, 역사왜곡, 미풍양속 저해, 범죄·폭력·음란 등의 내용을 담은 게임물인지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는 여야 의원 모두 중국 게임 속 역사 왜곡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방증한 것이지만, 국내 서비스에 한해 수정 조치하는 것에 그치고 있어, 중국 게임사들의 글로벌 동북공정 행위를 원천적으로 막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조영준 게임동아 기자 june@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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