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향 전자담배’의 달콤한 유혹… 청소년들이 빠져든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담배 이제는 OUT!]〈3〉급속도로 퍼지는 가향담배

게티이미지코리아
게티이미지코리아
“전자담배는 장난감 같아요. 맛있는 걸 찾다가 전자담배를 피우게 됐는데 사는 게 어렵지도 않고 냄새도 좋아요.”

전혜숙 이화여대 사회복지연구소 교수가 올해 초 발표한 청소년 전자담배 특성 실태조사에서 한 고교생이 전한 말이다. 이 학생이 말하는 ‘전자담배’는 전자담배 중에서도 향기가 나는 물질을 첨가한 ‘가향(加香) 전자담배’를 뜻한다. 청소년들은 통상 액상 형태로 된 가향 전자담배를 많이 피운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전 교수는 “청소년들이 함께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친구와의 만남이나 교제를 위해 전자담배를 사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담배들이 청소년들을 파고드는 핵심 요인은 ‘달콤하고 맛이 좋다’는 점이다.

○ “오히려 좋은 향기 나면 흡연 의심”
예전에는 학교나 가정에서 청소년 흡연을 검사할 때 학생들의 손가락 냄새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 특유의 담배 냄새가 손가락에 배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좋은 냄새가 나면 청소년 흡연 가능성이 높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자녀에게 좋은 향기가 난다면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의심해 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가향 전자담배는 기존 담배의 특징인 역한 향이나 흡연 시 목 따가움 등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처음 담배를 피우는 청소년들도 거부감이 덜하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담배를 향수처럼 활용하는 문화도 생겼다. 시중에는 멘톨, 샤인머스캣, 자두, 레모네이드, 녹차, 팝콘, 바나나우유, 풍선껌 등 다양한 맛과 향을 흉내 낸 전자담배가 출시돼 있다. 청소년들이 가향 전자담배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온라인에서 15∼30일 동안 피울 수 있는 가향 니코틴 액상 30mL 한 통 가격은 1만 원대다. 결제 전에 성인 인증을 한 번만 거치면 된다.

이런 특징 때문에 청소년들의 가향 전자담배 흡연 비율은 계속 오르고 있다. 질병관리청이 4월 발표한 청소년 건강 행태 조사에 따르면 조사 이전 한 달 동안에 하루 이상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한 청소년 비율이 지난해 2.9%로 집계됐다. 2020년 조사 때 1.9%에서 1년 만에 1%포인트 오른 것이다. 특히 여학생의 액상형 전자담배 흡연율이 1.9%로 역대 가장 높았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대부분 향이 들어 있다.

○ 담배 판매 10갑 중 4갑이 가향담배

국내 가향담배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궐련과 궐련형 전자담배 판매량 중 가향담배가 차지한 비중은 2011년 6.1%에서 2020년 38.4%로 급증했다. 전체 담배 판매가 매년 줄고 있지만, 가향담배만은 판매량이 반대로 늘어나는 것이다. 이 수치엔 청소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량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실제 가향담배 판매 증가율은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가향담배의 위해성 연구는 아직 진행 중이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설탕과 바닐린 등 가향 물질은 연소되면서 아세트알데히드 등의 발암물질을 만든다. 가향담배 흡연자가 유독물질을 더 많이 흡수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한국 흡연자가 궐련 한 개비를 피울 때 연기 흡입량은 1441mL로 국제 표준(455mL)의 3배 이상이다. 이 센터장은 “멘톨 등 가향물질의 효과로 흡연 시 목 넘김이 좋아 연기 흡입량이 많아진다”며 “가향담배 유행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에 여러 나라가 전자담배에 향을 더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세계 흡연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9개 국가가 전자담배 가향에 제한을 뒀다. 그중 핀란드, 헝가리, 몬테네그로는 일체의 향을 첨가하는 걸 금지했다. 에티오피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인도, 태국, 이란, 싱가포르 등 32개 국가는 전자담배 판매 자체를 금지한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금연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담배에 가향물질을 첨가하는 걸 단계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또 담배회사가 담배와 담배 배출물 성분을 의무적으로 정부에 제출하도록 하고, 이를 공개하겠다고도 발표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법안 8건이 국회에 계류된 채 아직 적용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가향 전자담배#달콤한 유혹#청소년 흡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