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리며’ 힐링 “번잡한 세상은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홍은심 기자 입력 2021-09-29 03:00수정 2021-09-29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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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유행에 피로감 더해져
눈앞의 대상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불멍’ ‘물멍’… 힐링 방법 인기몰이
실제로 마음 가라앉혀 명상효과
심장박동수 안정되고 뇌에 휴식
통영 연화도 고재열 여행감독 제공
TV 속 끊이지 않는 사건·사고와 불편한 정치·사회 뉴스, 자극적인 유튜브 콘텐츠까지. 보고 듣는 것들이 피곤하다. 여기에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까지 피로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퇴근 후 어항 속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바라보는 ‘물멍’, 향초를 피우고 불꽃을 가만히 보는 ‘불멍’을 한다는 사람들이 늘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소위 ‘멍 때리기’로 심신을 안정시킨다는 것이다.

정지화면 같은 고요함… 딱 10분 멍 때리는 방송

모닥불을 바라보는 불멍, 물을 바라보는 물멍, 숲을 바라보는 숲멍으로 아무 생각 없이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면 편안함을 느낀다. 요즘 같은 때엔 폭신한 흙 길을 걸으며 적당한 햇살을 품은 바람에 몸을 맡겨보는 ‘바람멍’도 좋겠다.

최근 조용하게 시청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밤 12시를 넘긴 시간에 방송하는 ‘가만히 10분 멍TV’라는 프로그램이다. 내용은 단순하다. 달팽이 한 마리가 10분 동안 움직인다. 보고 있다 보면 정지 화면인가 싶기도 하다. 바닷가의 파도가 부서지는 장면을 10분 동안 내보내기도 한다. 거친 파도와 함께 하얀 거품이 끝없이 부서진다. 고등어를 굽는 장면도 있다. 그냥 아무 설명 없이 고등어 한 마리만 계속 굽는다. 한참을 보다가 시계를 보면 10분 동안 반복되는 화면 앞에서 멍을 때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방송 초기에는 시청자들에게 방송사고가 아니냐는 항의 전화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꽤 많은 사람들이 이 늦은 시간대에 프로그램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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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도 일상 소음을 담아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자율감각쾌락반응(ASMR) 영상을 업로드한다. 머리 감기, 빗질하기, 귀 파주기, 마사지, 목욕하기, 화장품 바르기, 장난감 가지고 놀기 등 영상 종류도 다양하다. 이런 영상들은 수백만의 조회수를 기록한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생각도 할 필요 없이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면 된다. 밋밋할 정도의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다.


뇌도 휴식 필요… 잠깐 멈춤으로 명상 효과


30∼50대의 바쁜 현대인을 위한 여행을 기획하는 고재열 여행감독은 이런 현상을 “피로사회, 강박사회로부터 잠시나마 탈출하고 싶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고 여행감독은 “목적 없음을 목적으로 하는 멍 때리기는 일종의 말줄임표”라며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말줄임표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멍 때리기가 마음을 가라앉히는 명상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멍 때리기로 심장 박동 수가 안정되고 뇌에도 휴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력과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 하루 15분 정도 뇌를 쉬게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우리는 공부를 하면서 끊임없이 뇌를 사용한다. 그런데 뇌가 쉴 틈 없이 정보를 받기만 하면 스트레스가 쌓여 신체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잡념, 후회 등 부정적인 생각을 오랜 시간 떠올리는 것도 좋지 않다. 뇌는 움직일 때와 쉴 때 활성화되는 부위가 다르다. 각 영역이 적절히 움직여야 효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특히 멍을 때리면 ‘DMN(Default Mode Network)’이라는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된다. 뇌가 초기화되고 더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런 잠깐의 휴식이 기억력, 학습력, 창의력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 코넬대 연구팀은 유명인과 비유명인의 얼굴 사진을 차례대로 보여준 후 이전에 본 사진의 인물과 같은지 맞히는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아무 활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던 참가자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문제를 맞혔다.

하지만 멍 때리며 휴식을 취한다고 직면한 문제가 사라지진 않는 만큼 이를 도피처로 삼지 말고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과 멍 때리는 시간의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 또 멍 때리기를 너무 자주 하면 오히려 뇌세포 노화가 촉진된다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뇌는 하루에 1∼2번, 한 번에 15분 정도 휴식을 취하는 게 좋다.

이 가을, ‘멍 때리기’ 딱 좋은 곳
고재열 여행감독 추천 명소
안면도 백리포 불멍. 양현모씨 제공
멍 때리기 좋은 곳의 조건이 있다. 우선 비워낼 수 있어야 한다. 공간을 꽉 채우는 풍경에서 하나씩 걷어낸다. 공간을 하늘에 내주고 바다에 내줘야 한다. 두 번째는 단절이다. 도시의 시끄러운 소리로부터 단절돼야 한다. 사람의 소리도 단절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 주변에 사람이 없을수록 좋다. 혼자면 가장 좋다. 휴대폰 같은 사람과의 연결고리는 잠시 꺼두자.

‘섬멍’ 하기 좋은 곳


섬은 단절감과 고립감을 두루 맛볼 수 있다. 게다가 바다 맛과 하늘 맛까지 두루 누릴 수 있어서 좋다.

신안의 섬들은 아득하다. 마음을 고요하게 해준다. 신안의 섬에 비해 통영의 섬들은 오똑하다.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 군산의 섬은 석양에 멍 때리기 좋다. 마음을 황홀하게 해준다.

‘숲멍’ 하기 좋은 곳


제주의 숲이 숲멍을 하기에 가장 좋다. 다양한 숲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머체왓숲은 험하지 않으면서도 다채로운 숲길을 걸을 수 있어서 멍 때리기에 좋다. 숲 중간에 데크 시설이 돼 있어서 편안하게 멍을 즐길 수 있다. 용눈이오름은 숲 아닌 숲이다. 어머니의 젖가슴을 닮은 오름을 오르면 바람이 볼을 두들겨줘 조용히 멍을 즐길 수 있다. 불의 숲도 있다. 제주 세계유산축제에 맞춰 개방하는데 숲을 가로지르는 용암 계곡을 따라 걸을 수 있다. U자형 협곡이 주는 고립감이 아늑하다.


‘불멍’ 하기 좋은 곳


캠핑의 화롯불은 우리 DNA 안에 있는 원시인의 안식을 일깨워준다. 불멍에서는 특히 나눠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먹을 것을 나눠야 한다. 따뜻함과 배부름을 나누는 사이는 좋은 사이다. 고민을 나눠야 한다.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의 곁을 열어주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정적을 나눠야 한다. 불멍을 할 때는 이야기가 편한 사람보다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편한 사람이 제일이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헬스동아#건강#의학#멍때리기#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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