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아크'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인텔의 그래픽 카드 도전사

동아닷컴 입력 2021-09-10 17:15수정 2021-09-11 17:27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1998년, 마이크로프로세서(CPU) 사업에 전념해오던 인텔이 처음으로 외장형 그래픽 카드인 인텔740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원래 GE에어로스페이스에서 달 착륙을 위한 아폴로 프로젝트의 ‘시각적 도킹 시뮬레이터’를 구축할 때 사용한 장치의 일부인데, GE에어로스페이스가 록히드 마틴으로 분리된 이후 여러 차례 기술 이전 및 인수 합병을 거쳐 최종적으로 인텔이 출시하게 됐다. 비록 인텔740은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18개월 만에 빠르게 퇴장했지만, 이때 인텔이 받은 충격이 나비 효과를 일으켜 현존하는 모든 컴퓨터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

인텔의 새로운 고성능 그래픽 카드 브랜드 ‘아크’, 인텔740 이후 23년 만에 재도전하는 외장형 그래픽 카드다. 출처=인텔

시장 실패를 겪은 인텔은 GPU(Graphics Processing Unit, 그래픽 처리 장치)를 외부 장치로 분리하는 대신, 메인보드(마더보드)에 통합해서 판매하는 방식으로 전략으로 선회했다. 외장형 그래픽 카드보다 성능이 부족했지만, CPU와 메인보드만 사면 그래픽 카드가 따라오기 때문에 시장의 반응이 뜨거웠다. 자신감을 얻은 인텔은 본격적으로 ‘익스트림 그래픽스’라는 이름으로 데스크톱과 노트북에 그래픽 카드를 내장하기 시작했다.

그래픽 카드 업계의 숨은 강자, 인텔

인텔 메인보드에 노스브릿지 칩세트로 내장됐던 인텔 GMA 내장 그래픽 프로세서. 출처=인텔

2001년 인텔은 펜티엄 3 노트북용 모바일용 칩셋에 익스트림 그래픽스라는 내장 그래픽을 탑재하고, 2002년 후반에는 데스크톱용 펜티엄 4도 탑재했다. 특히, 펜티엄 4가 유래없는 대성공을 거두면서 인텔의 내장 그래픽 전략도 덩달아 성공했다. GPU 시장 점유율을 확보한 인텔은 2004년에 새로운 GMA(Graphics Media Accelerator, 그래픽 미디어 액셀러레이터) 시리즈 그래픽 모듈을 개발했고, 펜티엄 4에 이어 지금까지 세대를 거듭하고 있는 인텔 ‘코어’ 시리즈의 코어 듀오, 코어 2 듀오, 아톰 프로세서에 GMA를 탑재한다.

1세대 인텔 코어 프로세서부터 노스브릿지가 사라지고, CPU 안에 그래픽 처리 유닛이 내장되기 시작했다. 출처=인텔

이후 2008년, 인텔은 ‘네할렘 마이크로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코어 i 시리즈’ 브랜드를 선보였으며, GMA 대신 ‘HD 그래픽스’라는 새로운 내장 그래픽 유닛을 CPU에 내장하기 시작했다. 이 CPU가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코어 i 시리즈의 1세대 제품이며, 현재는 11세대까지 출시돼있다. 이후 HD 그래픽스는 데스크톱과 노트북 시장을 장악했다 할 정도로 대중화됐고, 2017년에 ‘UHD 그래픽스’로 이름을 한차례 바꿔서 11세대 프로세서까지 탑재되고 있다.

주요기사
CES 2020(소비자가전전시회)에서 노트북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출처=IT동아

인텔 740의 실패로 시작된 인텔의 내장 그래픽 전략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시장 조사 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가 2021년 2분기 집계한 PC 그래픽 프로세싱 유닛(GPU) 시장 점유율에 따르면, 인텔의 2021년 2분기 전 세계 GPU 점유율은 68.29%, AMD와 엔비디아의 점유율은 각각 16.48%, 15.23%다.AMD와 엔비디아가 고가의 게이밍 그래픽 카드로 확보한 점유율인 반면, 인텔은 사무용, 교육용, 일반 사용자용, 그리고 노트북 시장을 아우르는 모든 사용자를 위한 그래픽 카드로 이룬 점유율이다. 만약 인텔이 내장 그래픽 시장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시장은 값비싼 외장 그래픽 카드를 무조건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전열 가다듬은 인텔, 외장 GPU 시장에 재도전

인텔 아키텍처 2021에서 라자 코두리 부사장이 인텔 '아크' 브랜드를 공개했다. 출처=인텔

내장 그래픽 시장을 이끌고 있는 인텔이지만 외장 그래픽 카드에 대한 꿈을 완전히 접은 건 아니었다. 2009년, 인텔은 라라비(Larrabee)라는 외장형 GPU를 개발해 기업용 고성능 컴퓨터 시장에 진출하려 했으나 성능의 한계로 프로젝트를 접었고, 해당 기술을 기반으로 제온 파이(Xeon Phi)라는 슈퍼컴퓨터용 외장형 GPU를 개발한 전례가 있다. 그러던 중 2017년, 인텔은 AMD 외장 그래픽카드 부문 수석 부사장인 라자 코두리(Raja Koduri)를 영입했고, 2018년 6월에 공식적으로 외장 그래픽 카드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리하여 공개된 라인업이 ‘인텔 Xe 마이크로아키텍처’다. Xe는 인텔의 새로운 GPU 구조로, 저전력 제품군인 Xe-LP와 게이밍 제품군인 Xe-HPG, 기계 학습 및 개발용 버전인 Xe-HP, 슈퍼컴퓨터 및 서버용 버전인 Xe-HPC 네 가지 제품군으로 나뉘며, 현재까지 Xe-LP가 시장에 정식 출시된 상황이다.

인텔의 첫 외장 그래픽 카드인 인텔 아이리스 Xe 맥스, 노트북에 고정된 형태지만 엄연히 CPU 외부에 위치한 외장 그래픽 카드다. 출처=IT동아

가장 먼저 공개된 Xe-LP는 지난해 9월 공개된 11세대 인텔 코어 프로세서의 노트북 그래픽 카드로 등장했다. 당시 공개된 Xe-LP는 CPU에 탑재되는 ‘Xe 그래픽스’와 외장 그래픽용 ‘아이리스 Xe 맥스(Iris Xe MAX’ 두 종이다. Xe 그래픽스는 기존 CPU에 탑재되는 내장 그래픽 카드를 새롭게 업그레이드한 버전이고, 아이리스 Xe 맥스는 노트북에 장착된 그래픽 카드기는 해도 엄연히 외장으로 동작하는 그래픽 카드다. 이는 인텔740 이후 23년 만에 등장한 그래픽 카드며, 향후 인텔 외장 그래픽 카드의 출발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텔 아크 그래픽 카드 라인업, 알케미스트에 이어 배틀메이지, 셀레스티얼, 드루이드라는 이름으로 출시된다. 출처=인텔

이어서 지난 8월에는 Xe-HPG에 해당하는 Xe 마이크로아키텍처 기반의 고성능 그래픽 카드 브랜드 ‘아크(ARC)’도 선보였다. 인텔의 새로운 브랜드 ‘아크’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를 아우르는 브랜드로, 시장에서는 인텔의 새로운 외장 그래픽 카드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게 될 것이다. 인텔은 개발명 DG2를 ‘알케미스트(Alchemist)’라는 완제품 형태의 외장 그래픽 카드로 선보이며, 오는 2022년 1분기에 정식 출시될 예정이다.

현재까지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인텔의 새로운 외장형 그래픽 카드는 경쟁사인 엔비디아의 신형 그래픽 카드인 지포스 RTX 3050~3070 사이의 성능을 발휘할 것으로 추측된다. 기능 면에서는 하드웨어 기반의 실시간 광선 추적(레이 트레이싱)과 인공지능 기반의 화질 향상 기능인 슈퍼 샘플링 기능이 적용되며, 게임 프로그래밍 애플리케이션 집합체인 다이렉트 X 12 얼티밋 버전에 완전히 호환된다.

인텔의 외장 그래픽 카드 시장 진출은 이제 시작이다. 아직 알케미스트가 출시되지도 않았지만, 인텔은 인텔 아키텍처 데이 2021을 통해 Xe 마이크로아키텍처의 차세대 버전인 Xe2 마이크로아키텍처 개발을 시사한 상황이다. 알케미스트에 이어 Xe2 기반의 그래픽 카드가 배틀메이지(Battlemage)라는 이름으로 출시될 것이며, Xe3가 셀레스티얼(Celestial), 그 이후 세대가 드루이드(Druid)라는 이름으로 차례차례 등장할 예정이다.

인텔, 20년간 정체된 GPU 시장 흔든다

인텔 아크는 데스크톱 및 노트북용 그래픽 카드로 출시된다. 출처=인텔

인텔의 외장 그래픽 시장 진입은 가격, 그리고 성능 두 가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현재 외장 그래픽 카드 시장은 엔비디아와 AMD가 양분하고 있고, 노트북 외장 그래픽 카드는 엔비디아 독점에 가깝다. 이런 상태가 20여 년 가까이 이어지다 보니 두 기업 모두 경쟁을 택하기보다는 독자적인 노선에 집중하고 있고, 그만큼 소비자의 선택권이 줄어든 상황이다. 하지만 인텔이 이 시장에 진입하는 순간 두 기업 모두 점유율 방어를 위해 적극적인 전략을 펼칠 것이고, 시장 경쟁에 따른 가격 조정이 올 수 있다.

아울러 전반적인 성능 면에서도 변화가 올 수 있다. 현재 엔비디아와 AMD 모두 GPU의 전력 소모량은 계속 상승하고 있고, 제품의 크기도 커지는 상황이다. 매번 공정을 개선하면서 효율적으로 변하고 있지만, 획기적인 기술이 도입되지 않는 한 상승 추세를 꺾긴 어렵다.

하지만 인텔 아크가 조금이라도 전력 소모 대비 성능비가 높다면 소비자들이 인텔 쪽으로 몰릴 여지가 있다. 전력 소모 대비 성능비가 높으면 그만큼 그래픽 카드는 작고 가벼워지고, 배터리는 오래가며, 성능은 좋아진다. 엔비디아와 AMD 모두 소비자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획기적으로 성능을 개선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인텔740으로부터 시작한 인텔의 외장형 그래픽 카드의 역사가 23년 만에 다시 쓰여지고 있다. 인텔이 새롭게 도전하는 외장 그래픽 카드 ‘아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기대되는 이유다.

동아닷컴 IT전문 남시현 기자 (shnam@donga.com)



오늘의 핫이슈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