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기요 팔고라도 ‘배민 DNA’ 살까…셈법 복잡해진 딜리버리히어로

  • 뉴스1
  • 입력 2020년 11월 17일 09시 49분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의장(왼쪽)과 김범준 대표 (우아한형제들 제공) © 뉴스1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의장(왼쪽)과 김범준 대표 (우아한형제들 제공) © 뉴스1
공정거래위원회가 독일계 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에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하려면 자회사 요기요를 매각하라는 조건부 승인 방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DH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아시아 시장으로 저변을 확대, 급변하는 배달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배민 인수’라는 결단을 내렸다는 DH가 요기요를 팔고라도 특유의 ‘B급 정서’로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낸 ‘배민 DNA’를 사들일지 주목된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DH의 우아한형제들 인수에 대해 요기요를 매각하라는 내용을 포함한 심사보고서를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DH의 100% 자회사인 요기요는 2012년 8월 DH가 직접 설립한 회사로, 현재 국내 배달앱 시장 2위다. 2015년 배달통을 최종 인수해 시장 2·3위를 손에 거머쥔 DH가 업계 1위인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하면 수수료 인상 등 독과점 폐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그동안 배달 노동자 및 소상공인 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돼왔다.

배민을 인수하려면 요기요를 팔라는 공정위의 결정에 대해 DH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DH는 “요기요 매각 제안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추후 열릴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공정위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기업결합의 시너지를 통해 한국 사용자들의 고객 경험을 향상하려는 DH의 기반이 취약해질 수 있고 음식점 사장님과 라이더, 소비자를 포함한 지역 사회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공정위가 최종적으로 요기요를 매각하라는 결정을 내린다면 이는 사실상 ‘불허’ 수준의 조건부 승인이라는 업계의 대체적 시각이다. 요기요 매각이라는 공정위의 조건이 최종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이번 ‘빅딜’의 성사는 결국 딜리버리 히어로의 결단에 달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DH는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하면서 ‘음식 배달 시장에서의 생존과 새로운 시장으로 진출’을 내세웠다. 니클라스 외스트버그 DH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8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DH는 음식 배달뿐만 아니라 식품·책·전자제품 등 더 큰 시장으로 진출하려고 한다. 네이버·쿠팡 같은 대형 IT기업이 경쟁자”라며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지원이 필요하다. 배달 시장 점유율이 90%가 넘는다는데, 변화가 심한 시장이다. 인수는 이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경쟁이 치열한 배달 시장에서 음식 배달을 넘어 더 큰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선 과도한 시장 점유율이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전제 조건이라는 의미다.

이는 반대로 DH 입장에서 요기요를 팔고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하는 건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다만 전체 매각이 아닌 일부 점유율 축소 차원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업계에선 2009년 오픈마켓 시장 1·2위였던 이베이(옥션)와 지마켓의 기업결합에서 공정위가 “3년간 판매 업체 수수료를 올릴 수 없다”는 조건을 걸고 허가한 것과 비교해 이번 방침이 과도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당시 이베이코리아는 국내 e커머스 시장 2위 옥션을 운영하는 미국계 기업이었고, 업계 1위 지마켓은 토종 e커머스 업체로 옥션과 치열한 점유율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DH의 우아한형제들 인수와 마찬가지로 토종인 업계 1위가 2위인 외국계에 먹히는 구도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 기업결합 심사에서 외국기업에 자회사를 매각하라고 한 결정은 본 적이 없다”며 “옥션과 지마켓 기업결합 심사 때도 두 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80%를 훌쩍 넘었으나 매각 결정은 없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DH가 우아한형제들 인수를 포기할 경우 공정위로서도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는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배민은 없던 기업이 생겨나서 세계적으로 경영 역량을 인정받은 사례”라며 “전세계적으로 푸드 딜러버리 시장이 막 열리는 단계에서 국내 스타트업이 주축이 된 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막는 건 공정위로서도 부담”이라고 했다. ‘토종 유니콘’의 성공 모델을 입증한 배민의 혁신을 공정위가 가로막는 구조가 향후 혁신 기업 발전에 발목을 잡는 선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앞서 DH가 지난해 말 우아한형제들 기업 가치를 4조7500억원으로 평가한 것을 두고 업계에선 ‘DH가 김봉진 우아한형제들의 창업자로의 10년 경영 노하우를 샀다’는 말이 나왔다.

배민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접근하기 쉬운 이용자경험(UI)·이용자환경(UX)이 꼽힌다. 여기에 10년 이상 디자이너로 산 김 창업자가 ‘키치’(본래 목적에서 벗어난 사이비 등을 뜻하는 미술용어), ‘패러디’를 브랜딩에 접목한 ‘B급감성’은 인터넷에 눈을 뜬 신세대를 사로잡았다.

양사는 인수합병 발표 당시 김 창업자가 향후 DH와 우아한형제들이 싱가포르에 세우는 합작회사(JV) ‘우아DH아시아’ 회장직을 맡아 아시아 11개국 배달 사업을 이끈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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