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 누리온으로 신소재 비밀 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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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서 가동되고 있는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 오른쪽 사진은 최희윤 KISTI 원장이 ‘2019 한국 슈퍼컴퓨팅 콘퍼런스 및 국가과학기술연구망 워크숍’에서 누리온의 성과를 발표하는 모습. KISTI 제공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서 가동되고 있는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 오른쪽 사진은 최희윤 KISTI 원장이 ‘2019 한국 슈퍼컴퓨팅 콘퍼런스 및 국가과학기술연구망 워크숍’에서 누리온의 성과를 발표하는 모습. KISTI 제공
지난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은 차세대 전자 소재로 주목받는 그래핀 두 장을 약 1.1도 비스듬히 돌려 겹치기만 해도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현상을 발견해 학계에 보고했다. 전 세계 물리학계를 뒤흔든 발견이었다. ‘마법각도 그래핀’이란 별칭이 붙은 이 연구에 최형준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도 뛰어들었다. 최 교수의 연구 배경에는 세계 15위 계산 성능의 슈퍼컴퓨터가 있다.

최 교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탄소 원자 1만1164개로 구성된 그래핀 두 장의 모형을 만들고, 탄소 원자 속 전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일일이 계산하고 있다. 33 경(1만 조) 회에 이르는 막대한 계산량이다. 최 교수는 “계산량이 너무 커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지난해 도입된 한국의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 덕분에 대규모 계산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누리온의 연산 속도는 25.7PF(페타플롭스)다. 1PF는 1초에 1000조 번 연산할 수 있는 속도다. 사람 70억 명이 420년 동안 계산해야 하는 양을 1시간 만에 할 수 있다. 슈퍼컴 4호기 보다 80배 빨라진 누리온은 올해 6월 ‘슈퍼컴퓨팅 콘퍼런스’가 발표한 세계 슈퍼컴 순위 ‘톱500’에서 15위를 차지했다. 최 교수는 “누리온 도입으로 외국의 PF 기반 소프트웨어를 들여올 수 있게 돼 실제 계산 속도는 수백 배 빨라졌다”고 말했다.

누리온 도입 이후 국내 과학계의 성과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로 관심을 받고 있는 첨단 소재 개발도 그중 하나다. 이달 5, 6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2019 한국 슈퍼컴퓨팅 콘퍼런스 및 국가과학기술연구망 워크숍’에서는 누리온을 활용한 연구 결과가 다수 발표됐다. 최 교수도 철 기반 초전도체의 일종인 ‘철셀레늄’의 원리를 소개했다. 박철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새로운 정보 저장용 소재로 주목받는 2차원 자성물질인 삼황화린니켈 소재를, 김용훈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차세대 태양광 소재인 페로브스카이트를 전자소자로 응용할 가능성을 찾았다. 염민선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슈퍼컴퓨팅응용센터장은 “슈퍼컴퓨터는 기초원천 연구개발(R&D)에서 산학연 생태계를 구축하는 핵심 도구”라며 “첨단 소재·부품·장비 개발에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슈퍼컴 4호기 이후 9년 만에 누리온이 도입되면서 숨통이 트였지만 과학기술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다음 슈퍼컴 준비에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전 세계는 과학기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더욱 빠른 슈퍼컴을 도입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첫 공개 당시 세계 11위를 차지한 누리온도 불과 1년 만에 4계단이 떨어졌다. 슈퍼컴 양대 강국인 미국과 중국은 2∼3년 내로 1000PF급 슈퍼컴을 개발해 도입하는 계획을 내놨다. 누리온의 6배 성능을 가진 세계 최고 슈퍼컴인 미국의 ‘서미트’(148PF)보다 7∼8배 빠른 속도다. 최 교수는 “미국과 중국은 슈퍼컴 경쟁력 유지 문제를 단순히 과학기술계 경쟁을 넘어 국가 안보의 문제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희윤 KISTI 원장은 “슈퍼컴퓨터는 과학의 지속적 발전과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수”라며 “융합연구와 인공지능, 빅데이터 분석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분야 지원에 5호기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슈퍼컴퓨터#누리온#그래핀#신소재#kis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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