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 내세운 실검 순위 왜곡… 외국선 볼수없는 한국만의 현상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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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지지자들 순위 올리기 논란


“‘법대로조국임명’ 운동 효과가 꽤 좋은 듯합니다.”

2일 친문(친문재인) 성향 이용자들이 주로 드나드는 온라인 커뮤니티 클리앙에는 승리를 자축하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지난달 27일부터 7일째 이어지고 있는 네이버 다음 등 주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급상승검색어(실검) ‘운동’에 대한 상황 공유였다. 이날 오전 네이버 실검 순위에는 ‘법대로조국임명’이 5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양대 포털 순위 상황을 중계하며 “네이버에 집중합시다”라고 주문하는 이용자도 나왔다.

○ 실검 밀어올리기가 온라인 시민운동?

연일 이뤄지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관련한 실검 장악 운동에 포털들과 이들이 모여 만든 자율 심의기구인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등이 당황하고 있다. 실검 장악을 주도하는 측에선 스스로의 행위를 ‘온라인 시민운동’이라 칭하는 이들도 등장했다.

클리앙 등 온라인 커뮤니티를 주축으로 시작된 실검 장악 운동은 △8월 27일 ‘조국힘내세요’ △8월 28일 ‘가짜뉴스아웃’ △8월 29일 ‘한국언론사망’ △8월 30일, 9월 2일 ‘법대로임명’ 등의 검색어로 이어지고 있다. ‘띄어쓰기 마라’ ‘로그인부터 하라’에 이어 ‘검색 결과 중·상위 글을 클릭하라’ 등 지령도 정교해졌다. 7일째인 2일엔 새로운 검색어를 어떤 것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온라인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실검 순위를 의도적으로 올리려는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실검이 여론전에 이용될 가능성은 2013년 11월 일부 누리꾼이 네이버에서 ‘박근혜부정선거인정’ 검색어 순위를 의도적으로 급상승시키면서 처음 불거졌다. 당시 KISO 산하 검색어검증위원회는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를 이용한 여론 환기 등의 ‘운동’은 상업적 어뷰징(abusing)과는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상업적 어뷰징은 특정 제품이나 회사의 광고 단어를 실검에 올리는 걸 뜻한다.

KISO 관계자는 “드루킹 사례처럼 아이디를 여러 개 사서 매크로(자동 반복 프로그램)로 조작한 게 아니라 현재처럼 다수의 개인이 입력하면 노출을 제외할 수 없다”고 했다. 조 후보자 실검 논란에 대해서는 “아직 관련 논의는 없었다”고도 했다.

○ 한국만의 현상


한국은 정보통신기술(ICT) 접근성이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특히 포털 실검 민감도가 크다. 정치 여론 지형도가 몇몇 포털 위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루킹 댓글조작에 이어 이번처럼 실검 순위 조작이 반복되면 온라인 여론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해외의 경우 실검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적다. 영미 유럽권이 주로 사용하는 구글은 메인 화면에 검색창만을 띄우고 있다. 2007년 5월 ‘100대 급상승 검색어’ 서비스를 시도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 접었다. 일본 대표 포털인 야후저팬은 자체 실검 순위 대신 트위터의 실검 순위 데이터를 제공받아 5위까지 노출하고 있다. 야후저팬 관계자는 “포털 자체의 검색 순위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 편이다. 향후에도 자체 검색 순위는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포털인 바이두는 구글과 마찬가지로 첫 화면은 검색창만 보여준다. 검색어를 입력하면 결과 화면 우측에 급상승 검색어가 10위까지 뜬다. 다만 이들 검색어가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지는 의문인 상황이다. 이날 오전 실검 순위에 올라온 홍콩 시위 관련 검색어는 ‘조슈아 웡(홍콩 시위 학생 지도부) 체포’가 유일했다. 한 중국인은 “중국은 온라인 검열이 심해 바이두의 실검 순위에 대한 신뢰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한국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실검 여론전은 단순히 실검 경쟁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온라인 여론을 장악하기 위해 일부 커뮤니티는 게시글마다 특정 머리말 설정, 특정 기사 추천, 특정 댓글 등을 유도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쓰고 있다. 포털이 국민 전체의 여론을 대변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최근 실검 관련 논란은 국내에서 특정 포털이 정보 유통을 독점하고 있는 구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며 “이를 계기로 플랫폼 자체를 틀어막아서는 안 되겠지만, 더 이상 실검이 여론의 지표는 아니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 도쿄=김범석 / 베이징=권오혁 특파원
#온라인 시민운동#실시간 검색어#여론전#법대로조국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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