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 의약]저성장 중병 앓는 한국… 제약·바이오가 ‘특효약’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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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조 원 글로벌 시장 잡기’ R&D 투자 활발

“새 정부가 대통령 직속 제약·바이오 혁신위원회를 설치하길 제안합니다.”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63)은 16일 서울 서초구 효령로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약·바이오산업을 전체적으로 조율하는 기구를 만들어달라고 정치권에 공개적으로 요청한 것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국내 200여개 제약사가 가입한 최대 제약단체다. 이날부터 한국제약협회에서 한국제약바이오협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원 회장은 “정부의 산업 정책 집행부서가 산재돼 있고 컨트롤 타워의 부재로 장기적인 관점의 정책 수립과 실행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의약품은 건강보험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보건복지부가 관장을 하고 있지만, 산업적인 측면으로 볼 때 주로 규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약 산업의 경제적 기능과 공적, 사회적 기능을 조율하면서 어떻게 하면 산업도 살리고 사회적 기능을 함께 조율할지 대통령 직속을 해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 회장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정부에 목소리를 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전통적 주력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글로벌 경제가 저성장 늪에 빠진 지금, 제약 산업이 국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커지는 제약 시장

전 세계 의약품 시장은 자동차산업(700조 원)과 반도체 산업(500조 원)의 규모를 합친 것과 맞먹는 1200조 원 규모에 달한다. 국가가 나서 산업으로 키우는 사례로는 나라 전체 연구개발투자 총액의 40%를 제약 산업에 과감히 투자한 벨기에, 민관협력기구를 구성해 차세대 백신과 혁신적 치료제 개발을 추진 중인 유럽연합(EU) 등이 있다. 고령화 시대에는 제약 산업에 대한 기본적인 수요가 있다. 이 국가들은 제약산업을 사회적 경제적 기능을 동시에 지닌 산업으로 바라보며 미래 먹을거리로 키우고 있는 것이다.

국내 제약 시장은 글로벌 시장에 비해 작은 규모다. 하지만 해마다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국내 상장 제약사들의 총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비중은 2006년 5.9%에서 2015년 9.1%로 크게 늘었다. 특히 혁신형 제약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2015년 기준 14%에 달한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올해엔 전년 대비 20% 이상 증가한 1조2000억 원대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내 제약사의 해외 기술 수출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 제약사들이 해외에 수출한 기술은 총 7건. 해외 기술 수출 규모는 총액 기준 약 2조5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9월 한미약품은 미국 제넨텍과 경구용 표적 항암제 ‘HM95573’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우선 계약금 8000만 달러(약 879억 원)를 받고 이후 임상 개발, 허가, 상업화에 따라 단계별로 8억3000만 달러(약 9122억 원)를 받을 수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동아ST가 미국 애브비 바이오테크놀로지와 면역항암제 ‘MerTK’ 저해제 개발에 관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계약금 4000만 달러(약 484억 원)를 포함해 총 5억2500만 달러(약 6351억 원)에 이른다.

한미약품의 기술 수출 계약 파기를 비롯해 신약 개발이 중단되는 악재도 있었다. 하지만 제약 업계에서는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그만큼 신약 개발이 어렵다는 교훈을 준 것이다. 다시 내실을 다져 산업을 이끌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겼다”고 말했다.

한국산 복제약(제너릭)도 수출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중남미, 동남아시아 등 의료비 상승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지역에서 한국산 복제약(제너릭)은 품질과 가격 면에서 경쟁력이 있는 편이다. 제약 수출은 전체 제약사 매출의 17%까지 오른 상태다. 글로벌 제약기업들의 수출은 총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여전히 도전할 여지가 많다.


정책 지원과 자정 작용은 필수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해 다양한 정책 제안을 내놓았다. △제약·바이오산업 R&D 지원 △합리적인 보험약가제도 운영 △일자리 창출을 위한 지원 △국민 건강증진을 위한 의약품 개발 등이다. 대통령 직속의 제약바이오 혁신위원회 설치 요구가 다소 선언적인 메시지라면, 이 제안들은 실질적인 요구인 셈이다.

정부 R&D 투자 지원 규모도 늘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민간 투자의 8% 수준에서 선진국의 최소 투자 수준인 20%대로 R&D 투자 지원을 늘려 달라는 것이 골자다. 개량신약과 바이오시밀러(바이오복제약)의 임상연구와 국내외 임상시험 대행기관 지출비용을 국가 신성장동력기술에 포함해 세제혜택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내 제약사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인 보험약가제도에 대해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사용량 연동 약가 인하와 사용 범위 확대, 약가 인하 등 다양한 약가 인하 기전으로 인해 연평균 4∼5%의 약가 인하가 발생하고 있는데, 여기에 추가적 약가 인하를 겨냥한 정책이 도입되면 기업들의 R&D 투자개발 여력은 물론 의지도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조건 가격을 내릴 것만이 아니라 재투자가 가능하도록 합리적 약가제도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제약 산업 특성상 석·박사급의 고학력자 채용이 많은 만큼 세액 공제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일자리 창출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청년고용세액공제 대상이 되는 연령 제한을 현행 29세에서 35세로 늘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정책 제안과 함께 제약업계 스스로도 국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리베이트 근절이 대표적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2014년 7월 기업윤리헌장 선포와 강도 높은 자정 활동 등으로 불법 리베이트 관행이 많이 개선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문제가 있는 회원사에 대한 자격 정지 처분 등을 내리기도 했다. 리베이트 관행을 뿌리 뽑지 않으면 국민 산업으로 도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은서 기자 clue@donga.com
#제약#바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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