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한]대형병원 환자 쏠림과 해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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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 이후 큰 병원에서 진료나 수술 날짜를 당겨 달라는 환자들의 민원이 거의 사라졌다. 이제 큰 병원의 의사를 만나기가 예전보다 쉬울 것만 같다. 하지만 큰 병원의 담장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많은 환자들이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소위 ‘빅5’ 병원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빅5 병원은 3차 의료기관에 해당되는 상급종합병원이다. 상급종합병원은 주로 암환자나 중증환자, 희귀질환자, 의원(1차 의료기관)이나 중소병원(2차 의료기관)에서 치료받다가 합병증이 생긴 환자 등이 이용해야 하는 곳이다. 이러한 이유로 외래환자보다는 입원환자들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지만 실제로는 외래마저 이들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빅5 병원을 찾은 외래환자 수는 156만 명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빅5 병원 외래환자 수(200만 명)의 80% 가까이 차지한다. 더구나 지난해 동네 병·의원이 아닌 상급종합병원을 찾은 경증(가벼운) 당뇨병, 고혈압 환자 수는 23만여 명으로 2014년 22만여 명에 비해 1만여 명이 늘었다. 동네 병·의원 외래에서 치료받아야 할 환자들이 형식적인 진료의뢰서만 받아 큰 병원으로 직행하는 것이다.

 1, 2차 의료기관에서 걸러진 중환자가 3차 의료기관으로 가는 현행 의료전달 체계는 무너진 지 오래다. 이러한 상급종합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 때문에 1, 2차 의료기관들은 경영이 매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특히 중소병원은 간호사 부족, 저수가 등으로 병원 경영이 더욱 힘들어졌다.

 의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경증 당뇨병, 고혈압 환자들은 ‘3시간 대기, 3분 진료’를 받는 상급종합병원보다는 자신의 상태를 잘 아는 동네 병·의원 의사에게 수시로 진료를 받고 관리받는 것이 훨씬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을 찾는 이유가 뭘까.

 명의가 많기 때문에? 첨단시설 때문에? 질환 관리 시스템이 좋아서? 사실이다. 여기에 상급종합병원에서는 환자들에게 3∼6개월 장기 처방을 상대적으로 쉽게 해줄 수 있다는 중요한 이유가 추가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상급종합병원의 고혈압 환자 평균 처방일수는 97일로 의원(35일)보다 3배 가까이로 많았다. 또 상급종합병원에서 180일 이상 처방한 고혈압 환자 수도 3만 명이나 됐다. 의원(1만 명)보다 3배로 많은 셈이다. 즉 환자는 1년에 병원을 고작 2∼4번 정도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자의 경우 의사가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등 변화 여부를 수시로 체크해야 하는데 장기 처방은 환자 입장에선 오히려 불리하다. 더구나 장기 처방 기간에 환자가 약은 잘 복용하고 있는지, 새로운 부작용은 생기지 않았는지 확인할 길도 없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현행 의료전달 체계를 바로 세우는 것인데 서로 간의 노력이 필요하며 정부도 나서야 된다.

 상급종합병원에 찾아온 경증 고혈압, 당뇨병 환자를 해당 의사가 동네 병·의원으로 되돌려 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장기 처방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을 하거나 장기 처방 시 의사가 장기 처방 사유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하는 제도 마련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반대로 동네 병·의원에서는 합병증이 심한 만성질환자를 끝까지 붙들지 말고 3차 의료기관으로 바로 보내야 한다. 마침 정부도 1, 2, 3차 의료기관에 환자들을 제때 보내는 의사에게 환자당 1만∼4만 원 정도의 ‘회송 수가’를 줄 예정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경증 만성질환자들이 큰 병원의 명의를 찾기보다는 동네에서 성실하고 착실한 의사 또는 자신에게 맞는 의사를 찾아서 주치의로 삼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likeday@donga.com
#대형병원#환자#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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